[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

위험사회를 안전한 사회로 전환하려면

박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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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 당일에 벌어진 일을 복기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4.16연대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추진하며 인권으로 4.16을 기억해보자고 제안한다. 기억은 행동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에 매주 공동 게재되는 연재기사가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하인리히 법칙, 대형사고는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1930년대 미국의 한 보험사에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한다. 중상자 1명이 나오는 사고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이고 부상당할 뻔한 사람이 300명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1:29:300이라는 사고 발생 비율을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부른다. 하인리히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대형사고는 어느 순간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여러 번의 경미한 사고가 징후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사고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에서도 하인리히 법칙과 비슷하게 사고를 분류한다. 아차사고(near miss)는 인적․물적인 피해가 없는, 사건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있지만 그러지 않은 실수를 가리킨다. 경미사고(incident)는 경미한 인적 상해나 물적 손실을 초래하며, 보통 단일한 사건으로 벌어진 사고를 가리킨다. 중대사고(accident)는 상해와 손실 정도가 대단히 큰 경우로, 사고가 벌어지기까지 다수의 사건이 연쇄적으로 누적되고 결합하면서 발생한다. 그리고 재난(disaster)은 그 규모에 있어 가장 크며, 시스템의 붕괴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학자들이 이렇게 사고를 분류한 이유는,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처럼 덜 심각한 사고와 더 심각한 사고, 혹은 덜한 피해자와 더한 피해자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중대사고나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보통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아차사고나 경미사고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 단계에서 잘못을 시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위 사진:(위)세월호와 (아래)서해 훼리호 참사 (출처: 레디앙)

또 다른 참사의 가능성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사고를 겪은 우리 사회가 또 다른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주위에 어떤 징후가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이러한 징후는 속속 드러났다. ‘복원력이 약해서 짐을 내릴 때 균형을 맞추느라 힘들었다’는 하역회사 직원의 증언, ‘배가 기울었다가 잘 서지 않아 불안해서 일을 관뒀다’는 전 기관사의 증언이 있었다. 또한 세월호는 2013년 11월 29일에도 파도의 영향으로 좌현으로 기울어 화물이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경고와 경미사고를 청해진 해운은 그대로 지나쳤다. 과적을 멈추지 않았고, 이를 숨기기 위해 평형수를 빼 복원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그런데 참사를 보며 우리는 이러한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사고 징후를 잡아내지 못했던 것만을 반성한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일상 속에 잠복한 또 다른 참사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들을 다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된 훈련 한번 받지 못한 비정규직 선원들의 모습은 비정규직인 인천공항 소방대가 유리창을 깰 권한도 없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코레일은 간접고용하고 있는 KTX 승무원들에게 서류상으로만 안전교육을 시켰다. 비상시에 안전인력이 되어 승객을, 시민을 대피시킬 거라 믿었던 노동자들이 그럴 수 있는 권한이 없거나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월호의 펼쳐지지 않은 구명정은 매장이 입점해있어 내려질 수 없는 대형마트의 방화셔터와 겹쳐졌다. 위험시에 우리를 도울 시설과 장비 역시 엉망진창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세월호에서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당시에는 ‘곧 출발할 테니 기다려달라’는 방송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 인천의 한 여고에서는 화재로 인한 연기가 올라오는데도 ‘교실 밖으로 나오지 말고 제자리에 있으라’는 방송으로 울려 퍼졌다. 누구도 제대로 된 대피를 지도할 수도, 대피방법을 훈련받지도 못한 상황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반복되었다. 사건을 이렇게 겹쳐보면, 대구 지하철 화재 당시 당황한 기관사의 잘못된 초동대처와 방송을 세월호 참사의 징후로 볼 수도 있다.

안전사회를 위한 역할을 축소하고 방해하는 정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한 정부는 특별법 시행령에서 세월호 특별위원회에서는 해양사고만을 다루도록 하면서 안전사회소위원회의 역할을 대폭 축소했다. 이들이 보기에 해양사고, 철도사고, 항공기사고, 화재사고, 건물붕괴사고, 화학물질누출사고는 서로 떨어져 있는 영역이며 각각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배도 타고 기차도 타고 비행기도 탄다! 지금도 방화셔터가 제대로 내려올 수 없는 대형마트에 가고 있을지 모르고, 대피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고층건물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집과 가까이 있는 공장과 발전소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온 국민의 머릿속에는 생활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안전 문제들이 동시에 떠올랐는데, 세월호 참사는 해양사고이니 해양사고에 대한 대책만을 내겠다고 한다면 다른 영역에서 새로운 사고가 발생해야만 그 분야의 안전대책을 점검하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기다릴 필요도 없이,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미 그 수많은 영역의 사고를 모두 겪었다.

지금까지 수없이 참사를 겪었지만, 안전대책의 결정권은 정부와 일부 전문가에게만 맡겨지고, 시민들에게는 통보되기만 했다. 정부는 집중적으로 지적된 부분에 대한 해결책 한두 가지에, 사고 발생과 관계없이 이미 논의되고 있었던 정책들을 더했을 뿐이다. 안전정책이라고 포장되었지만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안전산업 육성과 같은 정책을 버무려 이것이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책이라고 선포했다. 잠깐 바뀌는 것 같았던 몇몇 정책은 사고가 잊혀지면서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어떤 정책은 아예 시행되지도 않았지만, 기업의 이윤을 위한 정책은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참사는 또 다시 반복되었다. 바다에서, 그 다음엔 땅 위에서, 그 다음엔 지하에서, 그 다음엔 다시 바다에서.

세월호 특별위원회는 이렇게 정부부처와 일부 전문가에게만 맡겨졌던 안전대책의 결정을 처음으로 피해자와 시민들에게 열었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특별법 시행령이 이대로 통과되면 해양사고 외의 모든 안전정책의 결정권은 다시 우리 손을 떠나게 된다. 또한 민간 조사위원들이 공무원들의 영향력 하에 있게 되므로 해양사고에 대한 대책도 제대로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뉴욕 공장조사위원회와 세월호 특별위원회

위 사진:(출처: 위키백과)
1911년 미국 트라이앵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14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대부분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트라이앵글 화재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기록되어 있지만, 한편으로 화재 이후의 제도 변화를 통해 미국 노동법과 산업안전법을 현대화하고, 세계 각국이 도입한 산업재해보상법과 사회보장법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여기에는 ‘뉴욕 공장조사위원회’라는 위원회의 역할이 막대했는데, 트라이앵글 화재사고는 ‘의류공장’ 사고였지만, 위원회의 조사범위는 아주 넓어 제과점부터 화학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 분야, 총 3,385개의 작업장을 조사했다. 또한 사후대책으로 화재예방을 위한 조치뿐 아니라, 기본적인 노동조건과 아동노동 규제, 야간작업 금지 및 최저임금 제도의 도입까지 이뤄냈다. 위원회의 임기는 본래 1년이었지만 3년으로 연기되었으며, 공장조사위원회의 임기가 끝난 후에도 안전과 건강에 대한 규칙을 다루는 행정위원회가 설치되어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를 통해 트라이앵글 사고의 희생자들은 100년 넘게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더 높은 건물을 쌓고, 더 많은 사람을 태우고, 더 깊은 지하공간까지 활용하면서 현대사회의 위험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트라이앵글 화재 이후 현대화된 산업안전법이 만들어졌듯이 위험사회를 안전한 사회로 전환할 세계적인 교훈을,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가 세계에 발신할 수는 없는 것일까? 공장조사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세월호 특별위원회가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의 슬픔과 분노, 반성과 성찰이 100년 전 미국에 비해 부족하지는 않다고 본다. 정부가 이 기회를 닫아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박상은 님은 사회진보연대 활동가이며, '존엄과 안전위원회' 안전대안팀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433 호 [기사입력] 2015년 04월 07일 15: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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