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4.16 인권선언, 긴 기억과 행동의 시작

나위
print

[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 당일에 벌어진 일을 복기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4.16연대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추진하며 인권으로 4.16을 기억해보자고 제안한다. 기억은 행동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에 매주 공동 게재되는 연재기사가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1주기를 앞두고 찾아온 세월호의 기억과 인권

이 글을 쓰는 오늘(4월 15일), 나는 법원으로부터 세월호 추모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니까 일주일 전, 나는 처음으로 '법정'이라는 곳에 섰다. 그전에도 그들이 말하는 '도로교통 방해', '업무 방해' 등의 이유로 약식기소되어 벌금형을 받은 적은 있지만, 정식기소로 재판장에 선 것은 처음이었던 셈이다. 처음 재판을 받던 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좁고 밀폐된 법정, 법정의 수직적인 자리 배치, 눈높이 등 온 구조로 판사의 권위를 드러내는 풍경에 나는 조금 움츠러들었다.

판사가 나에게 마지막 변론 시간을 주었을 때, 나는 몇 마디 하지 못했다.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세월호 이후 내가 목격한 참혹한 광경들과 그것을 보고만은 있을 수 없어 추모 시위에 함께했다는 말을 몇 마디 문장으로 짧게 말했다. 판사는 "시위 참가는 자유지만, 도로를 점거하는 건 불법입니다"라는 건조한 조언을 하며 선고일을 알려주었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고, 판사는 내가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주동자는 아니지만, 법을 어긴 점은 확인되었으므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하겠다고 했다.

세월호, 적어도 나에게 이 세 글자는 1년 전이 아닌 두어 달 전, 그러니까 아주 많은 이들이 세월호를 잊기 시작한 시간을 넘어 이제 '세월호'를 하루에 한 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이 땅에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지던 즈음 가슴 속에 들어왔다. 세월호 사고 직후, 나는 그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하거나 입 밖으로 살아 돌아와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SNS 프로필을 노란 리본으로 바꿀 때 난 그 리본을 달지 않았다. 그렇게 기도하고 바라는 개인들의 행동으로 그들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3일이 지나고, 5일이 지나고, 매일같이 새로운 뉴스가 들려왔다. 가족들이 영정을 들고 서울에 오고 있다, 안산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는 등의 이야기들. 그리고 이어진 단식농성, 대규모 도심 집회 등에 참여하며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 이윤보다 안전을 위한 사회 건설 등의 요구를 함께 외쳤다.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 소식, 그 이후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러던 내가 지난 1월 세월호 피해자 인권 실태조사단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은 4.16 인권선언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내가 너무 빨리 세월호를 잊은 건 아닐까,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즈음이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딸을 기다리는 은화 어머님을 인터뷰한 날, 나는 4.16 이후 처음으로 세월호에 관한 꿈을 꾸었다. 나와 내 친구들이 세월호에 갇혀있었다. 꿈에서 우린 누가 살아나갈지 이야기하고 있었고, 난 내심 어떻게든 생존자 틈에 끼고 싶었다. 꿈을 깨고 나서 옆에 친구를 버리고서라도 살아나가고 싶었던 내가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화문에서 삭발을 하던 날, 아주 오랜만에 인터넷 포털사이트 댓글들을 본 그 날도 꿈을 꾸었다. 세월호 피해자들을 혐오하는 무리의 사람들과 내가 싸우고 있었다. 난 어떻게든 우리가 정당하다고,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아 속으로 분통이 터지고 있었다.


4.16 인권선언, 긴 기억과 행동의 시작

4.16 인권선언은 이런 기억들을 개인의 기억이 아닌 집단의 기억으로, 그리고 기억을 넘어 집단의 행동으로 이어가는 시작이다. 세월호를 이윤 중심만을 위해 작동하는 이 체제의 필연적인 참사로 규정하는 건 어떻게 보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 참사를 어떻게 되풀이되지 않게 할 것인지,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어떻게 이 싸움을 이어나갈 것인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광화문 농성장이 하나의 풍경이 되고 많은 이들이 세월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도, 이 사회가 그대로라는 것도 알지만, 선뜻 무언가를 하지 못하고 있던 즈음, 4.16 인권선언 운동이 시작되었다.

인권선언, 사실 나부터도 처음 들었을 때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행동일지 의구심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는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까지를 모두 들춰낸 과정이었고, 때문에 이 참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어마어마한 기획과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들었을 때 마냥 추상적인 '인권'이라는 단어와 그 행위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 같은 '선언'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들게 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인권선언을 제안받으면 하게 될 고민일 것이다.

'인권'과 '선언'을 통해 4.16을 기억하고 하나의 '운동'을 만들어가겠다고 하는 4.16 인권선언은 형식으로만 놓고 보면 많은 사람들과 하나의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이다. 2015년 4월 인권선언 추진단 구성, 5월 선언 발의문 제안, 발의문에 기반한 최소 304회의 풀뿌리 토론, 이를 통해 모아진 의견을 반영한 선언문 채택, 이후 서명운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린 뒤 2016년 4월 16일에 인권선언을 발표하는 일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4년 4.16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시작된 인권선언 운동이지만, 단지 세월호 참사에만 국한된 권리 목록과 피해 범위, 재발방지 대책 등만을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왜 인권의 문제인지, 잘못된 국가구조 속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밝히고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참사를 막기 위해, 그리고 이와 같은 참사가 벌어졌을 때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한 고민들을 담을 예정이다. 즉, 세월호 참사를 하나의 '사건'이 아닌 지금과 같은 이윤 중심의 구조 속에서는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는 참사임을 선언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그리고 참사가 일어났을 때 인간의 존엄을 보장받기 위한 우리 모두의 권리를 선언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이 선언은 단순히 지난 사건에 대한 기억일 수 없다. 이 선언문을 작성하고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세월호 참사를 인권과 구조의 문제로 다시 기억해내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참사를, 이 땅에서 침몰해가고 있는 인권과 안전,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다시 서게 하는 과정이다.

물론 '인권선언'이라고 하면 그저 좋은 단어, 문장들을 모아놓은 글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세월호 이전의 나에게도 인권, 존엄, 가치 등의 단어들은 너무도 추상적인 단어들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보장받아야 하는 어떤 것, 모두가 보편적 가치라고 인정해야만 하는 무엇,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이 사회의 기본, 이 정도의 개념들이었다. 그러나 4.16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를 보면서 그 단어들이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삭제되는지를 눈앞에서 똑똑히 지켜보았다. (사실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했지만 없었던 것이었다는 걸 드러내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1년간 당연한 것, 주어져야만 하는 것, 모두가 존중해야만 하는 것, 인간이라면 지켜줘야만 하는 것 등의 당위는 온데간데 없었다. 세월호 참사는 그런 추상들을 구체적인 현실로 보여주었고 그 현실 앞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분노를 개인의 분노와 기억이 아닌 집단의 분노와 기억으로, 집단의 행동으로 발전시켜 사회를 조금이라도 움직이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로 인권선언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나위 님은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4.16 인권선언 추진위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34 호 [기사입력] 2015년 04월 15일 18:41:15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