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가치의 공동체를 이뤄가는 큰 발걸음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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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 당일에 벌어진 일을 복기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4.16연대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추진하며 인권으로 4.16을 기억해보자고 제안한다. 기억은 행동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에 매주 공동 게재되는 연재기사가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비웃고 적대하는 이들의 내면이 궁금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들의 죽음에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단지 인간성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섬뜩한 현실을 보며 도대체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질문을 던졌다.

“사람이 그렇게 착할 리가 없어”
위 사진:2014년 7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가족들의 단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특별법 제정 반대 기자회견을 하겠다며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난입한 엄마부대 봉사단 (출처: 민중의 소리)

지난해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유가족을 비난하는 어머니 봉사단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어머니 봉사단은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대학특례 입학 등을 원하는 유가족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건너가서 유가족이 낸 특별법안을 직접 보여주며 “유가족들은 돈이 아니라 진실만을 원한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그때 어머니 봉사단원 한 명이 “사람이 그렇게 착할 리가 없어”라고 단언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들도 유가족의 특별법에는 특례입학이나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조항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라고 믿는 그들은, 그러한 조항이 있든 없든 유가족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돈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 싸우는 이들을 상상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람은 ‘이기적인 마음’과 ‘함께하고픈 마음’ 둘 다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사회가 무엇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발전시키는가에 따라서 이기적으로 행동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기’를 택하기도 한다. 이 사회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경쟁을 극대화한다. 남이 잘되면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이기적인 행동을 ‘능력’이라고 부르며 칭송한다.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은 나약한 자들의 태도일 뿐이라고 가르친다. 그런 사회를 신봉하는 이들은 ‘다른 가치가 있다’고 믿기 어렵다. 그 자리에 나와서 유가족들을 욕하던 어머니 봉사단의 사람들은 그래서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는 종북”이라는 논리

그런데 설령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믿는다 하더라도 거리와 인터넷에서 직접 유가족들을 모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머니 봉사단이 그런 행동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정부가 ‘진영논리’로 그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봉사단만이 아니라 보수적인 일부 기독교인과 새누리당 등 보수정치인들, 그리고 조중동 언론은 그런 모욕에 직접 가담해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세월호는 단순 교통사고=진실 주장은 현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것=종북 좌파의 논리”라는 단순한 도식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모든 비판은 종북’이라고 단정하는 그들의 논리 속에서 “왜 자식들이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유가족들의 절규는 ‘진심’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지금의 정부는 그렇게 종북인가 아닌가로 시민들을 갈라치기 하는 ‘진영논리’로만 유지된다.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를 묻는데 그것은 ‘정부에 대한 공격’이라고 답하고, 진실을 알고 싶다고 거리로 나오면 ‘사회혼란세력’이라고 답한다. 그래야 진실을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순수하지 못한 유가족’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기에 바쁘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나 정보 고위 관료들의 모욕적 발언들은 어쩌다 실수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런 진영논리를 만들기 위한 사전포석에 가깝다. 정부가 만들어낸 진영논리는 어머니 봉사단이나 서북청년단 재건위 등의 세력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여 그들이 거리로 나올 수 있게 만든다.

공감의 부재와 인정욕구

위 사진:2014년 9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폭식 투쟁을 하겠다고 나선 일베 회원들 (출처: 오마이뉴스)
여기에 일베 유저들이 편승했다. 경쟁에 격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는다. 막연한 불만과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갖는다. 그런데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다른 형태로라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인정욕구를 기반으로 하는 일베에서는 자극적이고 잔인한 글이 더 많은 추천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인정받고 싶은 것이지 탄압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권력자들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대신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분노를 터뜨릴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영논리’에 의해 유가족에 대한 모욕이 단호한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일베 유저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공감 능력이 없다고 한다. 마치 게임에서 만만한 대상을 고르듯이 약자를 향해 분노를 쏟아 부을 뿐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그런 이들을 향해 ‘안산 합동분향소에 꼭 가보라’고 이야기한 것은 그런 점에서 현명한 것이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 가보는 순간, 자신들이 욕했던 그들이 실체 없는 무언가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었고 울고 웃고 미래를 꿈꾸던 아름다운 이들이었다는 것을 구체적인 실체로 마주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곳을 찾은 일베 유저가 반성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희망은 세월호 참사 가족들, 그리고 연대하는 이들

위 사진:2015년 5월 1-2일 진실 인양을 위해 쓰레기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철야행동을 마치고 광화문에 돌아와 서로를 꼭 안아주는 가족과 시민.
우리 사회에는 생명보다 돈을 중요하게 여기고, 진실보다 편 가르기에 익숙하며, 사회에 대한 분노를 약자에게 쏟아내는 이들이 많다. 기업과 정부가 결탁하여 위험사회를 만들고, 안전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만들며,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을 억압하는 기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와 기업과 언론은 이런 현실을 계속 부추기고 유지하려고 한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이렇게 왜곡된 마음들을 되살리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사람답고자 한다면 문제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 퍼붓기보다 원인이 무엇인지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답고자 한다면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인권으로 바라본다 함은 그런 인식의 객관성, 가치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통해서 희망을 보게 된다. 평범했던 분들이 가족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겪으며 ‘진실’을 찾으려 하고, ‘모두의 안전’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이 참사를 낳은 사회의 모순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하며, 그동안 고통받으며 싸워왔던 다른 이들에게로 연대의 폭을 넓히고, 이 사회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더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 싸움에 연대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우리 모두는 참으로 힘든 날들을 보냈지만, 그러나 그날들은 우리의 미래를 인권적이고 공동체적으로 만드는 힘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지금 그 길을 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혜진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이며 416연대 운영위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37 호 [기사입력] 2015년 05월 07일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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