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맹의 인권이야기] 한국에도 탈영병을 위한 기념비를 만들 수 있을까?

독일 탈영병 기념비에 얽힌 사연

날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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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평화운동단체인 ‘커넥션’의 초대를 받아 지난 4월 한 달간 독일과 핀란드를 돌며 한국의 병역거부 운동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돌아왔다. 1993년에 만들어진 ‘커넥션’은 전쟁과 징병제 그리고 군대에 저항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특히 분쟁지역의 병역거부자(탈영병)들과 연대해온 단체이다. 최근에는 이라크에 파병됐다가 탈영하고 난민 신청을 한 미군,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의 와중에 병역을 거부하고 독일로 망명신청을 한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 단체 활동가 중에는 80년대 남아공에서 인종분리정책에 저항했던 “징병제 폐지 운동(End Conscription Campaign)"에 연대하며 남아공의 탈영병들을 지원했던 이도 있었다.

곳곳에 남아있는 전쟁의 흔적과 기억의 방식

독일에서 강연을 위해 돌아다닌 곳이 대략 10군데 정도였는데 어느 곳을 가든 2차 대전 때 폭격을 당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만여 명이 사는 조그만 마을이든 200만이 사는 대도시이든 상관없이 그런 전쟁의 흔적에 관한 집단기억이 존재했다. 그 기억을 소환하는 방식은 다시는 그런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에도 ‘평화’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한국전쟁을 언급하며 강한 군대와 안보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더 인상에 남았다.

위 사진:독일 그로스기라우에서 본 쉬톨페르쉬타인(Stolperstein)의 모습. 2014년 기준 유럽 전역에 걸쳐 4만8천개 정도가 있다고.

그렇게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독일 사회의 구체적인 노력 중 하나가 ‘쉬톨페르쉬타인네’(Stolperstein)이다. 뜻풀이를 하면 길을 가다 걸려 넘어지는 돌부리(Stumbling Stone)라고 한다. 나치 시절 수용소로 끌려간 유태인이 살던 집 앞 인도에 조그만 정사각형 모양으로 박혀 있는 것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를 강연자로 초대한 지역의 담당자이자 80년대에 병역거부로 대체복무를 하기도 한 울프강 아저씨 본인이 이 ‘돌부리’ 사업에 관여하고 있기도 해서 설명을 더 들을 수 있었다. 이름에 ‘넘어진다’는 뜻을 넣은 이유가 길 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번 멈춰 서서 과거의 역사와 전쟁을 떠올려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란다. 금속상자처럼 생긴 돌부리 윗면에는 그곳에 살던 유태인 이름, 생년월일, 추방연도, 죽은 날짜가 적혀있었다.

나치의 군대를 탈영한 이들이 60년간 싸워온 이유

나치즘에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전쟁으로 죽은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데에도 적극적인 독일 사회에서 나치의 군대에 복무하는 것을 거부했던 병역거부자들은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역사가들에 따르면 나치 시절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탈영병 숫자는 3만 명에 이른다. 이 중 2만 명이 실제로 처형을 당했다. 1942년, 프랑스에 파병되어 있던 중 탈영을 했다가 붙잡힌 뒤 수용소로 끌려갔던 바우만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이 제노사이드에 동조하는 것이란 걸 깨닫고 나자 더 이상 히틀러의 전쟁을 위해 복무하고 싶지 않았다.” 수용소에서 가까스로 탈출하여 살아남은 이 할아버지는 종전 이후 90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평화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만난 토마스는 90년대 초반에 병역거부를 했고, 지금은 ‘독일 전쟁저항자-평화연대(DFG-VK)’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다. 주방장으로 돈을 벌고 있고, 슈투트가르트 지역에서 탈영병을 위한 기념비(Deserteursdenkmal) 건립을 위한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덕분에 현재 독일에 있다는 30여 개의 기념비 중 하나가 있는 곳에 함께 가볼 수 있었다. 토마스의 할아버지는 2차 대전 와중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탈영을 했고, 처형을 당했단다. 나중에서야 할아버지 목에 걸린 군번 줄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위 사진:슈투트가르트에 있는 탈영병 기념비
토마스의 할아버지를 비롯한 탈영병들에 대해 나치는 ‘동료를 배신한 비겁자’란 낙인을 찍었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 사회가 과거를 반성하는데 주력했음에도 탈영병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그대로 이어졌다. 탈영병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것은 다른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종전 60년에 가까워지던 2002년, 독일 의회가 나치 시절 탈영병들에 대한 처형이 부당한 것이었다는 결론에 가까스로 합의하면서 이들의 명예는 공식적으로 회복될 수 있었다.
나치에 반대한 것은 동일한데 군인 신분으로 나치에 맞서 싸운 병사는 ‘용감한 영웅’으로 추앙받은 반면, 더 이상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아 총 드는 걸 거부한 이들은 ‘겁쟁이’ 취급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군복을 입고 있는 이는 언제든 자신들의 명령에 복종하리라 예측할 수 있지만,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인간성을 지키고자 저항하는 이들은 언제든 자신들에게 반기를 들 수 있다는, 따라서 체제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는 걸 알기에 ‘탈영병’의 존재를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부당한’ 과거(나치)의 역사는 청산하는 만큼 ‘정당한’ 현재 자신들의 권력엔 사람들이 복종하길 바라는 건 제1세계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독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어느 곳이나 지배계급의 사고방식은 동일하다. 한국에서 ‘민주화’를 국가의 기억으로 전유한 뒤, 거리의 시위대를 향해 “‘민주화’ 시대에 데모를 하는 종북세력”이라 비난하는 이들에게 ‘탈영병’의 존재는 체제를 위협하는 잠재적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 탈영병을 위한 기념비 건립 운동을 하는 이들은 그래서 더 이 기념비가 양차 대전 때 탈영한 독일 군인 뿐 아니라 모든 전쟁의 탈영병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평화의 의미 중 하나가 ‘전쟁 없는 세상’이라고 했을 때 그 전쟁을 막는 가장 쉽고 단순하지만 보통 잘 상상하기 어렵기도 한 방법은 군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때의 전쟁은 미사일이 오고 가는 사전적 의미의 전쟁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사회구조(“삶은 전쟁”)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탈영병’이란 이름 안에는 군복을 벗은 이들 뿐 아니라 부당한 체제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이 포함될 것이다.

병역기피자 대신 탈영병이라 부른다면

이번에 독일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병역거부자를 지칭할 때 ‘양심적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에 직접 대응하는 독일어 대신 '전쟁저항자'로 번역되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탈영병이란 단어 역시 한국에서 낙인처럼 쓰이는 ‘병역기피’의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더 이상 군인이기를 거부한, 결과적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까지도 포괄하여 쓰고 있었다. 그렇기에 탈영병을 위한 기념비가 기억하고자 하는 존재의 차원에서 '용감한' 병역거부자와 '비겁한' 병역기피자라는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군대와 전쟁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관계, 문화, 구조로부터 도망친 혹은 저항한 모든 이들이 바로 탈영병인 것이다.
병역거부자와 병역기피자란 구별 대신 탈영병이란 표현을 쓰자고 제안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들릴까? 아마도 ‘탈영’의 급진적 의미가 온전히 수용되기보다는 오히려 그동안 쌓아온 ‘착한 병역거부자’의 이미지마저 ‘비겁한 겁쟁이’로 ‘전락’하는 결과를 부를지 모른다. 하지만 ‘탈영병’의 의미를 확장하고 재구성하는 데에는 그렇게 거부와 기피의 구분이 모호해진 장소가 오히려 나을 수 있다. 군대 없는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할 새로운 언어들을 계속 고민해보는 것이다.
‘군인 됨’을 거부한다는 것은 내가 죽임을 당할 가능성만큼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자각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각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정당한 두려움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는 대부분의 남성이 징집되어 살상훈련과 상명하복의 문화를 배우는 사회보다 훨씬 더 ‘평화’로운 사회일 것이다. 아직은 없지만, 한국에서도 탈영병을 위한 기념비를 만든다면 이는 그런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쟁과 군대에 대한 새로운 집단기억을 만들어나가는 운동이기도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날맹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이며, '전쟁없는세상' 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39 호 [기사입력] 2015년 05월 21일 10: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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