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파장? 파장!] 외형을 포장하려는 데에만 골몰하는 국가인권위원회

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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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먹는 보리를 슬쩍 빼돌려서 팔아먹는 마부가 있었습니다. 대신 마부는 하루 종일 말의 털을 정성스레 손질해주었습니다. 말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마침내 말은 마부에게 울부짖었습니다. “진정 내가 윤이 자르르 흐르는 멋진 말이 되길 원한다면 빗질은 그만하고 먹을 걸 더 많이 달라구요!”

이솝우화에 나오는 말과 마부의 이야기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잘못으로 제대로 먹지 못해 말은 속이 곯아가고 있는데 그걸 숨기고자 털 손질에만 매달리는 이솝우화 속 마부의 모습이 생각난다.

2014년 3월과 10월, 그리고 2015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승인소위에서 세 차례 연속 등급 보류 결정을 받았다. ICC 등급심사 역사상 유례없는 일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가인권기구의 하나로 칭송받던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성과 투명성, 효과성 모두에서 국제사회의 질타를 받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더 나아가 내년 3월로 예정되어 있는 네 번째 등급심사 때까지 국제사회의 우려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말레이시아, 태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B등급으로 강등되는 망신을 당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사실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제는 2008년 A등급 재승인 받을 때 이미 제기된 바 있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실 직속으로 두려는 등 위원회의 독립성과 효과성을 침해하는 여러 재정적, 행정적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에 ICC 승인소위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독립성, 기능적 자율성, 시민사회 참여, 투명한 임명과정 등 개선을 권고했다. 예컨대 2008년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는 ‘조건부’ A등급을 받은 것이었음에도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로부터 5년 후인 2014년 정기 재심사를 받기 전까지 ICC 승인소위 권고 이행을 위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2014년과 2015년 2008년에 지적된 사안과 동일한 이유로 세 차례에 걸쳐 등급이 보류되는 과정에서도 ICC 승인소위 권고는 법 개정에 관한 문제여서 국가인권위원회 자체의 역량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등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심지어 ICC 승인소위가 한국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지 못해 국가인권위원회의 노력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는 등 ICC 승인소위를 비난하는 듯 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2014년 3월과 10월, 2015년 3월에 이르기까지 네 번의 ICC 승인소위 권고의 핵심이 시민사회의 참여가 폭넓게 보장되는 투명하고 공정한 인권위원 선출 절차와 다양성 보장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문제의 뿌리를 치료하려 노력하기보다는 그럴 듯하게 외형을 포장하려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부분이 이른바 ‘시민사회 협력’이다. ICC 승인소위는 수차례에 걸쳐서 국가인권위원회에 다양한 시민사회와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권고했고, 2014년 10월 등급 심사 이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시민사회 협력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과 인권위원 선출 가이드라인에서 ‘시민사회’와 ‘국민’의 차이가 뭔지 모르겠다는 황당한 주장과 함께 ‘시민사회’라는 표현을 모두 삭제하기까지 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ICC 승인소위 등급 보류의 원인이 유난히 극성인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문제제기 때문이라며 시민사회 탓을 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러한 내부적 인식을 개선하고 실질적으로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최, 추진한 행사와 프로그램들을 수십 페이지에 걸쳐서 열거한 ‘인권시민단체와의 협력실적현황 자료집’을 ICC 승인소위에 제출하는 것으로 문제를 감추려 했다. 이 자료집에 열거된 ‘인권시민단체’들이 실질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방향과 기조에 동의하고 협치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행적을 보고 있으면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소속 단체를 비롯하여 수많은 인권, 시민단체들이 왜 국가인권위원회가 추진하는 활동들에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더 나아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야기하는 ‘인권시민단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권시민단체’와 다른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기까지 한다. 2014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및 인권위원 선출·지명 가이드라인 공청회에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소속 단체들은 연락을 받지 못했다. 2015년 2월 ICC 승인소위에 보낸 추가 답변서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상임위원 임기 만료 예정과 관련 의견 제출을 받는다는 이메일을 인권전문가, 인권관련 시민단체 등 무려 ‘4,600여 곳’에 공지하였다고 보고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소속 단체들은 이러한 이메일을 받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일상적 시민사회 협력 사례로 제시하는 ‘배움터’ 대관은 지난 3월 동성애를 반대하는 내용의 포럼에 장소를 제공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성소수자 인권 보장 업무를 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반동성애적인 인권침해 단체의 행사가 개최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독립성, 투명성, 효과성 상실로 시민사회의 신뢰를 잃었음에도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기보다는 외부에 좋은 모습, 그럴 듯한 모습으로 포장하기에 급급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모습은 지난 5월 18일과 19일에 진행된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의장 초청 행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인권경영 확산을 대표적인 사업으로 국내외에 선전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는 5월 18일 마이클 K. 아도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의장 특별강연 행사를 열었고 19일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까지 참석하는 유엔 글로벌 콤팩트 한국 회의를 공동 주관했다. 특별강연 등에서 마이클 K. 아도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의장은 “국가와 기업, 국가 인권기구, 시민사회 등 모든 참여자의 대화를 통해서만 당면한 기업과 인권의 도전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며 시민사회의 참여를 역설했다. 그러나 한국 시민사회는 두 행사 모두 초청받지 못했다. 심지어 이러한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조차 사전에 시민사회에 널리 공지되지 않았다. 정부 부처, 공기업, 사기업만 초청된 행사에서 아도 의장이 시민사회 참석 여부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묻자 국가인권위원회는 ‘몇몇 시민단체’를 초청해 참여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 용역사업으로 해외 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상황 실태조사를 진행한 단체들도, 2015년 현재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가행동계획 수립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는 단체도 이 자리에 초청받지 못했다.

안에서는 “인권위가 왜 자꾸 노동(문제)에 끼어드느냐”면서 비정규직 종합대책 ‘장그래법’ 의견 표명을 꺼리면서 밖으로는 유엔 사무총장과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의장을 초청해 대규모 국제행사를 벌여 ‘인권경영’을 선전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안에서는 인권시민단체 때문에 ICC 등급 보류가 된 거라고 비난하면서 밖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숫자와 통계로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과시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지난해 4월의 세월호 참사로 인한 우울증에서 채 헤어 나오지도 못했는데 다시 3주 넘게 이어지고 있는 메르스 사태로 한국 사회는 또 한 번 집단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 자신의 안전을 지킬 권리는 세계인권선언에도 보장되어 있는 인류 보편의 권리임에도 오늘 우리 국민들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줄 국가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고통 받고 있다. 그리고 국가가 인권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가장 앞장 서서 인권 보호 역할을 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는 속으로 곪아 죽어가고 있는 말의 털 손질에만 급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강은지 님은 국제민주연대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43 호 [기사입력] 2015년 06월 19일 11: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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