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국가인권위원회 5년 평가와 과제 ③] 인권옹호자로서 국가인권위, 멀지만 가야할 길

권고를 통한 도덕적 기준 제시를 넘어

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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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아래 국가인권위)의 등장은 한국 사회의 인권현실과 인권운동에 있어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두 번에 걸쳐 노상 단식을 감행한 인권활동가들의 투쟁과 열정, 인권보장을 열망하는 국민의 관심이 모여 2001년 11월 국가인권위가 탄생했다. 국가인권위 설립 5년이 지난 지금, 인권활동가에게 국가인권위는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이다.

국가인권위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만을 전담하는 설립목적에 따라 인권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기관과 보수언론의 견제에 순응하여 애매한 조정자의 역할을 하거나 자신의 권고를 실현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기 시작한다면 인권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국가인권위 출범 이후의 5년은 그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권고 발표 이후 “나몰라”

지난 11월 30일 국회는 본회의에서 비정규직법안을 직권상정해 통과시켰다. 2005년 4월 국가인권위가 사용사유 제한을 주 골자로 하는 비정규직법안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으나 결국 국회는 노동자들의 반대와 국가인권위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켰다. 지난 11월 17일 국가인권위는 대추리에서 경찰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출입통제와 불심검문이 인권침해라며 중단할 것을 경기경찰청에 권고했다. 당시 국가인권위 결정이 있던 저녁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추리로 가던 인권활동가들은 국가인권위 결정문을 쥐고 경찰을 향해 불심검문 및 통행금지를 중단하도록 요구했으나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날 인권침해적인 불심검문에 저항한 인권활동가들은 대추리로 들어갈 수 없었다.

국가인권위는 인권에 관한 법령과 제도, 정책, 관행에 대해 조사와 연구, 권고를 실시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의 인권침해 시정 기능으로서의 ‘권고’는 위의 사례에서 보듯 법적인 강제력이 없다. 하지만 인권에 관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인권을 개선시킬 수 있는 규범을 마련하고 그 규범에 대해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즉 위의 사례에서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국회와 경기경찰청은 자신들의 인권침해를 스스로 인정해버린 도덕적 오점을 남기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권고’의 현실적 한계, 그래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렇지만 국가인권위가 제시한 도덕적 인권 기준까지 무시하며 인권침해를 강행하는 국가기관이 있다면? 이 상황에서도 여전히 국가인권위는 ‘고작’ 도덕적 ‘비난’ 이상의 것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의 한계적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권고’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권고 이후에도 이것이 사회적으로 소통될 수 있도록 여론을 형성하는 등 적극적인 ‘대화’를 펼쳐가야 한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국가인권위가 ‘권고’ 이후 실질적인 인권개선을 위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묻고 싶다. 국가보안법 폐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인정에 따른 대체복무제 도입 등 이러한 권고들은 ‘결정례집’에서 잠을 자고 있을 뿐이다. 또다른 한편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과 차별금지법 권고 이후 보수언론과 단체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대응하지 않는 무신경은 국가인권위 스스로 방어능력이 없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새사회연대 이창수 대표는 이러한 태도를 가리켜 “국가인권위는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해 폐지론이 등장하는가 하면 인권을 이상론이라고 하거나 가진 자의 특권을 인권이라고 왜곡시키는 경향이 일반화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권고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지난 5년간의 공과를 양적인 권고 수용률 97.6%로 자랑하기보다는, 질적인 수용을 높이기 위한 모니터링 등의 후속작업이 필요하다. 의견표명과 권고 이후에도 사안의 중요도에 따라 재결정이나 의장 성명, 조사결과 발표와 같은 공표 능력을 활성화시키고, 관련 기관과 정책협의과정을 지속적으로 밟아나가야 한다. 이행되지 못한 굵직한 ‘권고’들이 쌓여간다면 인권운동으로부터 국가인권위 무용론이 나오지 않을 법도 없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의 개발과 이행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가 국가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실행할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는 자문과 긴밀한 협력, 견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의 경우도, 국무총리에게 ‘권고’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쟁점을 형성해 논의를 활성화하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

국가인권위가 스스로 기본권 제한?

지난 12월 4일 한미FTA범국민운동본부는 3차 민중총궐기에 경찰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금지한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집회금지통고철회를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이것만 보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집회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 이유에서 “진정인과 피진정인(경찰)이 평화적 집회 개최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거나 또는 기자회견을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하여 집회의 평화적 개최·진행을 보장하는 것을 조건으로”와 같은 단서를 첨부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곧장 성명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을 옹호한다는 자신의 목적과 존립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정”이라고 규정했다. 전면적인 집회금지통보와 전국 1,252곳에서 검문검색, 심지어 가택연금, 무조건적인 체포 등의 인권침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이를 중단시켜 달라는 요청을 국가인권위는 동문서답으로 응대한 것이다. 집회금지통보, 가택연금, 무조건적인 체포 등 명백하고 과도한 인권침해에 대해서 국가인권위는 모른 체 하고, 경찰과 양해각서의 체결, 공동 기자회견과 같은 ‘부적절한 방법’을 주문했다. 12월 6일 3차 민중총궐기 때 경찰로부터 연행된 활동가가 법원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는 재판에서 검사는 국가인권위의 권고 사항 중 양해각서 체결이나 공동기자회견을 한미FTA범국본이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연행자들의 도덕성을 문제 삼았다.

이번 경우, 국가인권위가 첨예하고 긴급성을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 전례 없이(?) 빠른 결정을 내린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인권의 기준을 후퇴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정사안이 아님에도 경찰청과 한미FTA범국본 간에 조정을 시도하다 이들로부터 거절당해 결과적으로 국가인권위의 위상을 실추시켰고,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보장되는 방식에 조건을 첨부해 국가인권위가 스스로 기본권을 제한한 꼴이 되고 말았다. 대화와 약속의 전제는 상호신뢰이다. 2005년 2006년 농민과 노동자가 생존권을 요구하는 집회 도중에 경찰의 방패로 죽어간 상황에서 ‘국가공권력’이 보여준 태도는 신뢰보다는 불신에 가까웠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국가인권위가 법원의 재판관처럼 사안을 심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맥락에서 인권을 이해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맥락과 상황에 따른 이해 없이, 양해각서 체결과 같은 방식은 결과적으로 인권이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권보장의 증진 의무를 이행할 ‘양해각서’가 필요한 쪽은 국가인권위와 대표적인 인권침해기구인 경찰, 검찰, 법무부 등과 같은 쌍방이다.

국가인권위는 2006년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주요한 인권현안인 ‘평택미군기지 확장에 따른 인권침해’에 대해 “이는 국방·외교 사안”이라며 의견을 내놓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당장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인권침해를 겪고 있는 문제제기자로부터 귀 기울이지 않은 채 ‘국방과 외교’를 들먹이는 것은 국가인권위가 정치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평택 사안뿐만이 아니라 정부가 올해 추진해온 노사관계로드맵이나 한미FTA협상 등 중요 현안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못하고 있어 이러한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현장으로부터 도출되는 정책과제는 인권침해를 밝혀내는 역동적인 도구가 되지만, 현장성 없는 의제개발은 뒷북치기나 수용가능한 연성 의제만을 우선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은 현안에 대한 대응력의 부재보다는 정치적 판단에 우선성을 부여했다는 지적이 적절할 것이다.

인권옹호자로서 거는 기대

국가인권위는 국가기구로서 인권담론을 사회 안에서 소통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권담론 투쟁에서 인권이 지배의 언어로 남을지 해방의 언어로 새롭게 탄생할 지는 다양한 인권행위자들의 각축 속에서 남겨지는 문제이다. 분명한 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가운데 국가인권위가 위치지어 있다는 것이다. 인권을 옹호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말잔치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권을 실천한다는 것은 때로는 희생을 필요로 하고, 고난을 자처해야할 때도 있다. 국가인권위가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와 같은 앙상한 심판기구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인권옹호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현실의 권력질서에 보다 깊숙이 개입해 인권의 기준과 감수성으로 인권의 상상력을 키워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견제와 협력의 대상으로서 인권단체와의 연대는 필수적이다. △ 현장과 밀착해 몸을 낮추어 인권피해자들과 눈을 맞추는 것, △ 국가기구이지만 제도와 법의 한계를 넘는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인권기준을 제시하는 것, △ 국가인권위의 논의과정을 지금보다 개방하는 것, △ 국회나 사법부를 향해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것, △ 더욱 철저히 국가공권력을 감시하는 것 등 이러한 조치들은 국가인권위가 인권옹호기구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인권옹호 국가기구로서 국민들의 지지와 인권운동과의 연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인권오름 제 34 호 [기사입력] 2006년 12월 20일 13: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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