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세월호 이후의 ‘다른 교육’, 누구와 무엇을 외칠 것인가

난다
print

[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 당일에 벌어진 일을 복기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4.16연대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추진하며 인권으로 4.16을 기억해보자고 제안한다. 기억은 행동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에 매주 공동 게재되는 연재기사가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세월호 참사와 교육권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만들어갈 인권선언에서 교육권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까? 세월호 참사 이후로 이를 '교육'과 연관 지어서 말하는 사람들은 참 많다. 목숨을 잃은 희생자 중 다수가 고등학생이기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세월호 참사라는 장면에서 교육 문제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여러 병폐들을 투영해보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교육권을 함께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수학여행 금지'였다.
4.16인권선언 추진단에서 인권선언을 만들기 위한 풀뿌리토론을 하며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던 것”을 이야기해보자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생각났던 게 세월호 참사 이후 내려진 수학여행 금지 방침이었다.
나승일 당시 교육부 차관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전국 초·중·고등학교 1학기 수학여행 및 체험학습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했다. 이 방침은 곧 전국의 시도교육청으로 전달되었고, 각 학교와 학급에서는 이미 예정되어있던 수학여행을 2학기로 미루거나 취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에서는 ‘배’를 타고 가는 수학여행은 중단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학생들도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엄청나게 분노하고, 세월호 선장을 욕하는데, 학교에 안전대책 강화 지침이 내려오고 나서부터 분노의 맥락이 바뀌었다. 작년 세월호 사건 일주일 후 아이들의 심경에 대해서 묻는 내 질문에 우리 반 아이들이 즉각적으로 내뱉게 된 말은 “왜 우리가 세월호 때문에 현장학습을 못 가요?”이다. 세월호 진상조사를 위해 시민들이 시위하듯이, 자신들을 현장학습을 가기 위해서 시위를 하겠다는 것이 학생들의 심정이었다.
- 세월호 이후의 교육, ‘가만히 있으라’ 외치는 자 누구인가 / 김환희 / 「오늘의 교육」 2015년 3・4월호, 62쪽


자유를 제한 하는 것이 대책?

추모와 애도의 시간을 위해 예정되었던 학교 단위의 수학여행을 취소하거나 미루는 것과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체험학습 등을) 멀리 가지 말아야 하며 수학여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결과적으로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엄청나게 다른 이야기이다. 또한 이러한 방침이 시행되기까지 당사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설득하고 결정을 해나가야 할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당사자들(특히 학생들)은 그저 주어진 동의서에 동그라미를 써내야 했을 뿐이다.
세월호 참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해병대 캠프 참사가 발생했을 때, "가짜/사설 업체라서 문제"라며 청소년활동을 가능케 하는 기준을 엄격하게 바꾸었고,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 이후에는 학생회 단독 행사/오리엔테이션의 폐지를 검토했고, 세월호 참사 이후엔 수학여행을 금지했다.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것들은 이처럼 활동을 축소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손쉬운' 발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정부는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정부의 책임은 없다는 듯 ‘할 일’을 다른 기관에 떠맡기며 알맹이 없는 대책을 만드는 바람에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특히 교육활동에 관한 것들은 더했다. 수학여행을 금지하고, 안전교육을 강화하라. 이것이 정부가 내놓은 참사에 대처하는 답변이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에 대한 담론이나 교육의 방식과 내용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이루어지고 자주 접할 수 있었지만, 교육에 대한 권리, 즉 교육권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교육권이라고 하면 ‘교육을 받을 권리’ 정도로 인식하는 데 그치는 듯하다. 하지만 교육권을 교육을 받을 권리로만 한정 짓는다면 지금처럼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인성교육을 추가하는 식의 땜질처방만 이루어질 뿐이다.
그렇다면 인성교육이나 안전교육이 아닌 다른 교육이면 되는 걸까? 4.16 이후 ‘다른 교육’을 상상하자고, 권위에 대한 순종을 가르치고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을 중단하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미안함과 죄책감을 표현하는 어른들의 아픈 반성도 돌아왔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이 교육의 문제를 청소년들과 함께 생각하고 논의하려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교육을 바꾸자는 흐름 속에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학생・청소년들은 늘 교육을 받는 대상이었지 교육의 주체인 적이 없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현실은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인 동의서에 무조건 동그라미를 그려야 하는 상황과도 닮아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학생・청소년들이 마주하는 하루하루는 세월호 이전이나 이후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부터 출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의 내용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고, 무엇을 빼고 더하는 것을 논의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교육과정과 내용에 대해 참여하고 결정할 권리,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교육을 받을 권리 등 교육권을 보다 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좋은 내용의 교육을 준비하더라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일방적이고 강제성을 지닌다면 교육권은 제대로 실현된다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서는 안전교육 강화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 한해 ‘생존수영강습’을 추진한다는 정책이 등장했다. 물론 지자체 차원에서 학생들이 그동안 배우지 못했던 수영강습을 받을 수 있다면 좋을 수도 있겠지만, 꼭 필요한 활동이고 필수 과제라 하더라도 그 강습에 강제로 참여하지 않도록 해야 원래의 취지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육의 내용과 방식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지금 현실에서는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일상생활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현실에서는 성적순으로 반장 부반장을 뽑고, 학생・청소년들이 정치나 사회에 참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면서 교과서에서만 ‘민주시민의 자질’과 ‘사회참여의 의미’를 배운다면 그것이 의미있는 배움으로 와닿을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 참사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거나 대처해야 할지,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또 해결과정에서는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고 어떤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할지를 알 수 있는 교육. 실제 현실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밀착하여 다룰 수 있는 교육. 문제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과정으로서의 교육. 여러 맥락에서 교육권의 보장을 꿈꾼다면 누구와 무엇을 외칠 것인지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 ‘다른 교육’의 시작일 것이다. 그리고 학생・청소년들에게 노란 리본을 다는 것이 교육적이니 꼭 달고 다니라고 말하는 것이나 노란 리본을 다는 것은 정치적인 행동이니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난다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55 호 [기사입력] 2015년 09월 17일 16:21:10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