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파장? 파장!] 인권위는 권고나 결정만 하는 곳이다?

나쁜 관행에 빠져 기아차 고공농성자의 인권을 외면하다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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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를 보면 탈피를 못해 죽어가는 가재나 새우 같은 갑각류가 떠오른다. 새우의 경우 일생에 12번의 탈피를 한다고 한다. 갑각류는 몸의 성장에 따라 새 껍질로 갈아입는 환골탈피의 과정을 밟는다. 새 껍질로 헌 껍질(갑각)을 벗지 못해 죽거나 헌 껍질에 끼여 죽는 경우도 있다. 인권위는 지금 헌 껍질에 갇혀 죽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권위의 생명줄은 인권인데 인권을 놓고 있으니 탈피 못 하고 굳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 한규협이 시청 근처에 있던 인권위 건물 옥상에 있는 광고판에서 고공농성을 벌인지 4개월이 넘었다. 물론 현재는 인권위가 명동으로 이사했으니 인권위 건물이 아니다. 그런데 인권위는 이사를 갔으니 고공농성자들에게 음식과 물을 전달하던 일을 중단하겠다고 간부회의에서 결정하고 농성을 지원하는 노조에 통보했다. 사전에 협의를 거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농성이 중단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밥과 물은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걸 중단하면 농성자들은 어떻게 살라고 그러는 것인지. 그래서 인권위가 기아차 농성자 음식전달을 중단하기로 한 조치에 대해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농성중인 최정명, 한규협 씨의 부인과 종교인들과 함께 인권위의 담당자들을 면담했다.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면담 내내 답답했다. 아무리 국가기구라지만 ‘인권’을 다루는 사람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인권위는 권고와 결정으로 활동하는 곳이다?

면담을 시작하자마자 왜 인권위가 농성자들에게 음식 전달하는 것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그동안 인권위는 음식전달 등 사실행위에 개입한 적이 없다. 기아차 고공 농성자들에게 음식을 전달한 것은 이례적이다. 인권위는 권고나 결정을 통해 인권 현안에 함께 했다. 게다가 인권위가 건물을 옮겨 거리 때문에 전달이 용이하지 않다”고 했다.

그동안 해오던 인권위의 역할을 축소하는 발언을 듣고 놀라웠다. 그래서 우리는 반문했다. “음식전달이 무슨 사실행위 개입인가. 인권위가 강정이나 밀양에서 또는 촛불집회에서 인권지킴이 활동을 하며 경찰이 음식을 통제하면 음식을 전달하거나 통행을 하도록 조치하게 한 것들과 뭐가 다른가. 그러면 그것도 사실행위 개입인가. 지난 2010년 장애인들이 국가인권위 건물 농성을 할 때 전기와 난방이 중단된 사태와 관련해 2014년 유엔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도 농성자들의 생존을 위한 생명권, 건강권 보장이 우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농성 같은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전기, 난방 같은 최소한의 조치는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인권위에게 교섭에 들어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사실행위 개입인가.”

사실 날씨가 추워져 방한대책이나 건강검진 같은 추가조치가 더 필요한 시점인데 그동안 해오던 음식전달도 안 하겠다니 정말 말이 안 나온다. 게다가 최근 인권위가 휴일에는 음식을 전달하지 않겠다고 하자 회사는 바로 용역깡패를 동원해 농성장 침탈을 시도하였다. 현재는 밥만이 아니라 농성자들의 생명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지난 10월 11일 연휴 마지막 날 헬멧을 쓴 10여명의 용역들은 긴 작대기에 낫을 달아 현수막을 뜯어내려고 하고, 동시에 전광판 문을 뜯고 진입하여 농성자들을 폭력적으로 끌어 내리려 하였다. 평상시에 출입을 통제해 아무도 못 올라가는 곳인데 백주대낮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경찰은 어떻게 알았는지 평상시 해오던 보초를 서지 않았다. 매트리스도 며칠 전에 철거해 인명사고가 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시민들이 오고 경찰 112에 신고해서 겨우 상황은 막았다.

하지만 인권위가 음식을 전하러 매일 오던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그런 일이 다시금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인권위 160명 직원이 돌아가면서 하루에 1번이라도 오면 불상사는 막지 않겠냐고 요청했으나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철수한 보초를 다시 할 것을 경찰에 요청해달라고 했으나 그것도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경찰이 직무유기해서 인권이 침해되는데 왜 인권위 소관이 아니냐고 했으나 그저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인권위법 19조(업무)에는 인권위의 활동이 최소한도로 정리되어 있다. 조사와 구제, 의견표명과 권고, 교육과 홍보 등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19조에는 '10. 그밖에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이 명시되어 있다. 그동안 인권위가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곳에 인권지킴이를 파견해온 것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 지킴이 활동이 미흡하기는 하지만 지킴이가 왔을 때 경찰의 폭력 수위가 다르기는 하다. 물론 최근에는 거의 차이가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권위가 인권침해의 목격자로서의 역할이라도 할 수는 있지 않은가.

광고업체의 불법적 인권침해에 소극적인 인권위

현재 광고업체인 명보 에듀넷이 농성자들에게 음식을 전달할 수 없게 막는 것은 법원 결정과 상관없는 불법적 인권침해 행위다. 어떤 고공농성에도 음식을 이렇게 장기간 통제한 곳은 없다. 광고업체는 법원 가처분 결정을 근거로 출입을 통제하고 인권위도 그걸 근거로 음식 통제라는 인권침해에 대해 손 놓고 있었다. 결국 인권위의 업무 태만에 대해 장하나 의원이 지적하고 나서야 8월 15일부터 인권위가 음식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법원 가처분 결정은 노조의 광고판 근처 출입을 통제한 것이지 음식 통제를 정당화한 게 아니다. 결정문에 따르면 제3자는 언제든 갈 수 있고 음식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종교인들도 시민들도 인권단체들도 올라가는 걸 막으니 정말 기가 차다.

이사를 가고 나서야 인권위는 광고업체의 초법적 행위에 대해 협상을 했다. 인권위는 "법원 가처분 결정문에 포함된 채무자가 아닌 제3자(조합이 지정한 자 포함)와 가족이 전달하는 식사에 대해 통제하지 않고, 다만 시위용품 등에 대해서는 명보 측이 검사하겠다." 는 협상 내용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동안 종종 가족들의 음식 전달조차 막았던 관행을 볼 때 이 약속을 광고업체가 지킬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최정명 씨 부인이 “만약 제3자인 시민이 올라가는 것도 막으면 다시 인권위가 음식을 전달해줄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딱 잘라 답했다. 그러니 이번 협상에 대해 인권위가 손 떼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인권위가 명동으로 이사한 16일이 지나고 17일 또 광고업체는 음식을 전달하는 걸 막았다. 휴일에 어린 아이를 맡기고 가족이 와서야 겨우 한 끼가 올라갔다. 제3자가 음식을 올리는 것을 광고업체가 막고 있는데 이렇게 손을 놓을 거냐고 노조는 항의했지만 그건 알바가 아니라는 식이다. 대책 없이 음식 전달을 중단한 인권위에 책임이 없는가. 명동과 시청이 그렇게 먼 거리인가. 이런 상태에서 인권위가 내리는 권고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렇게 고공농성을 하는 근본적 문제인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법원의 결정대로 사내하청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면 된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니 농성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광고업체도 혼자서 저리 막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거대 재벌과 싸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만큼 적어도 인권위가 농성자들의 표현의 자유, 사회권과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추운 날씨에 굶고 있는 두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중단한 인권위에서 ‘인권’을 읽을래야 읽을 수가 없다.

이성호 위원장으로 바뀌고 나서 새로운 모습을 기대했지만 달라진 게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인권위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인권에 눈 맞추고 자기 역할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껍질로 바꾸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아니 과거에 하던 일도 못하니 껍질 안이 텅텅 비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언제 인권위가 생명을 다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덧붙이는 글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이며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59 호 [기사입력] 2015년 10월 21일 2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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