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에 대한 질문] 정당한 임금, 공정한 임금

우리에겐 임금에 대한 권리가 있다④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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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직장인들은 다들 못 그만둬서 회사 다닌다고 합니다. 일이 힘들고 즐겁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대가라고 주어지는 임금조차 생계를 꾸리기에 벅차지만 별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남의 돈 받는 게 원래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직장인, 아니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기 위해 권리와 존엄을 거래하거나 포기하면서 일하는 현실, 임금은 원래 사장이 주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임금관계에 물음을 던져보았습니다. 임금에 대한 우리의 권리, 임금을 인권으로 재구성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자 합니다. 4회에 걸쳐 나눠 싣습니다.

[임금에 대한 질문] 정당한 임금, 공정한 임금을 노동자의 권리로 재구성해야
우리에겐 임금에 대한 권리가 있다④

"올해 시급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데, 사장실로 불러서 한 명씩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내가 받고 있는 월급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 법에 맞게 잘 나오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물량이 줄었다면서 당분간 집에서 쉬라고 하는데 급여가 안 나온다."
"최근에 연봉제로 임금이 바뀌면서 액수가 줄었다. 휴게시간에 줄 서서 사인하라고 했던 게 그거였나 싶다."
"원청에서 내려준 금액에 맞춰서 우리 임금이 결정된다고 하는데, 그 내역은 하나도 모른다."
"파견업체에서 주는 월급액수가 통장에 찍힐 뿐, 급여 명세서를 받은 적이 없다."
"이맘때면 바뀐 최저임금에 맞춰서 급여가 올라야 하는데, 그대로다. 노조에서 매년 협상을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공단 조직화 활동을 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듣게 되는 임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답답한 마음에 노동상담 부스를 찾아오기도 하고, 동료들에게 불만을 털어놓는다. 임금인상 투쟁에 나서거나 동료를 조직해 목소리를 내고 있진 않지만, 이들은 이미 각자의 방식대로 임금을 주는 대로 받아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을 하고 있다. 이들의 속마음은 이런 게 아닐까. 다들 올해 시급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불만과 의견을 동료들과 말하기조차 어렵다. 연봉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지게 되는지 한 마디 설명도 없다. 일하는 업체가 아닌 파견업체에서 매달 통장으로 월급을 넣어주는데 얘네가 수수료를 얼마나 떼는지, 내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어서 나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사장은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월급을 올려주고 싶어도 이미 위에서 다 정해서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원청이 급여로 얼마를 책정했는지, 사장은 얼마를 가져가는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시급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손에 쥐게 되는 돈이 엄청 달라지는데, 노조랑 회사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가며 결정되는 건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고 속상하다. 그동안 사장이 알아서 잘 맞춰 주겠거니 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위 사진:공단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의 급여명세서

노동자에겐 임금에 대한 권리가 있다

노동자들은 이미 알고 일을 시작한 임금수준(액수)을 문제 삼기 전에, 약속과 다르게 지급되는 것을 문제 삼는다. 약속은 근로기준법일 수도 있고, 회사와 맺은 근로계약일 수도 있으며, 노동자 스스로 기준으로 삼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그 약속이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임금-고용관계와 사회적 평가에 묶여있는 것일지라도 노동자 스스로 납득하고 동의하는 한 그 약속에 따른다. 그런데 약속과 다르게 지급된다는 것은 법을 어기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임금과 관련된 변동이나 결정에 노동자 스스로 동의하고 납득할 만한 어떤 정보제공이나 참여로부터 배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급 6,000원이라고 알고 일을 시작했다고 해서, 그다음 해 시급이 왜 6,500원이 아니라, 6,300원이 됐는지에 대해 관심 없는 노동자는 없다. 약속이 달라지면 그에 상응하는 합의와 동의가 필요하고 그렇게 새로운 약속, 협약이 만들어진다. 위에서 언급한 공단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과정에서 배제된 경험이며, 그것을 권리의 훼손, 박탈로 인식하게 된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임금은 사회적 노동에 대한 역사적 결과물인 만큼 일정한 사회적 기준(흔히 인권적이라고 말하는)을 갖게 된다.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수준’에 대한 요구가 그것이다. 하지만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때 그건 어느 정도인가? 100만원 받다가 150만원 받으면 정당한 대가이고 130만원이면 아닐까? 이때 ‘정당함’을 설명하는 핵심은 절대적인 액수가 아니다. 대우차 노동자들이 어용노조와 2.4% 차이밖에 나지 않는 임금인상 요구를 했지만, 그들은 그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18.7%가 적절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임금을 눈치 보지 않고 함께 모여 이야기할 수 있었고, 사측에 임금산정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요구했으며, 대표를 선출해 사측과 협상하고 파업점거투쟁을 겪으며 주장했던 임금인상액이기 때문이다. ‘정당함’의 한 가운데에는 임금에 대한 노동자 권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정당한 임금, 공정한 임금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바로 이런 정치적 권리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주는 대로 받지 않겠다며 행동에 나선 노동자들은 존엄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임금을 결국 만들어낸다. 이런 권리가 침해되고 훼손되는 현실의 임금관계가 저임금이라는 임금수준을 만들어낸다.

노동의 정당한 대가로서의 임금, 공정한 임금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본-임노동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 경험되는 불공정, 부당함, 억울함을 권리의 훼손으로 구성하려는 시도이다. 사회 정책적 수준에서 권리의 훼손은 특정한 집단으로 구획되어 평가되는 지표를 통해 표현되지만, 개인적-집단적 차원에서 권리의 훼손과 자각은 상호작용 과정 속에서 즉 자본-임노동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경험들을 엮어내면서 이루어진다. 저임금 노동자들이라는 집단규정으로부터 박탈된 권리의 목록을 써내려가는 게 아니라, 부당한, 잘못된, 불공정한 임금이라는 노동자들의 경험과 감각으로부터 노동자의 권리로서 임금을 구성해보자.

싸우기 어려워진 이유로부터, 싸움을 구성할 가능성으로

낡은 운동과 새로운 운동을 대비하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운동의 내용, 조직, 투쟁방식 등을 역사적 조건과 맥락을 소거한 채 고정된 개념과 형식으로 비교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지배체제가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하면서 포섭과 배제, 위계와 분할 전략을 휘두르고 이에 사람들이 서로 모이고 연대하지 못한 채 모든 관계, 장소에서 체계적으로 분할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마치 과거에는 사람들이 쉽게 연대하거나 조직될 수 있었던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60~80년대 국가-자본의 전략이었던 재벌수출주도형 자본축적양식을 가동케 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노동력과 종잣돈을 만들어내는 게 핵심이었다. 이는 체계적인 농촌수탈과 외채도입을 통해 이루어졌고, 농업생산력 상승은 유휴노동력 창출과 저곡가 정책을 이용한 농촌수탈을 가속화했다. 당시 한국사회의 변화는 IMF로 인한 변화 이상으로 급격하고 거대한 것이었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관계망과 장소는 근본적으로 재구조화되었고, 기존의 관계, 결속, 연대는 해체된다. 새마을운동이 농촌사회를 새롭게 재편해갔고,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되고 대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은 노동자-도시빈민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흐른 뒤에야 사회운동은 변화된 생활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대중의 잠재된 욕망과 불만을 포착해내고 이를 집단적인 저항으로 조직할 수 있었다. 공장과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동질적인 시공간 경험을 쉽게 할 수 있었다고 규정하기 이전에, 동일한 경험들조차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하고 해석함에도 이를 집단적인 경험으로 번역해내고 조직해낼 수 있었던 계기를 찾는 것, 또는 집단주의, 패거리주의에 머물지 않고 계급적 인식으로 고양될 수 있었던 계기를 찾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결국, 운동의 역사적 조건과 맥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운동이 놓여있던 역사적 구조분석에 그치지 않고, 그 구조 속에서 대중을 조직해내기 위해 사회운동이 포착하고 발명했던 운동의 감각을 포착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 시기에 우리가 접하는 생계비 임금이 아닌, 87년 노동자투쟁이 만들어낸 노동자들의 권리 언어, 투쟁의 언어로서 생계비 임금론의 역사성과 가능성을 봤던 것처럼.

1960~86년 시기 한국 노동자 집단행동과 저항의 사이클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의 주요 요구와 불만사항은 임금과 노동조건에 관한 것이었지만, 이들이 저항의 사이클을 이룬 시기는 거시 경제적 지표 변화와는 큰 상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은 정치체제의 변화 가능성이 노동자들에게 인식되는 시기에 고조되었다. 60년 4월, 87년 6월 직후 노동자투쟁이 폭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했던 열망과 투쟁, 정치적 권리주체로 당당히 서고자 했던 집단적 경험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노동현장으로 스며든 것이다. 당시 노동자 투쟁을 극심한 저임금과 가혹한 노동조건이 이들을 투쟁으로 내몰았다고 보는 것은 너무 단편적인 시각이다. 60년 4월, 87년 6월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와 다르지 않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다. 자유롭게 말하고 모이고 행동하고 싶어서다. 동등하고 존엄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싶어서다. 그런 권리를 쟁취하지 못하면 노동자들은 그 무엇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은 언제나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집단적 결사체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고, 자본가들은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노동조합만은 막으려고 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만들어낸 노동-자본관계가 이제 황혼녘에 접어들었다고들 한다. 90년대 이후 자본이 공격적으로 도입한 임금체계-고용관계는 노무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비정규직, 간접고용이라는 새로운 고용형태가 임금수준의 저하를 가져온 동시에 사용자 책임성을 모호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용형태가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87년 이전 노동자들의 저임금은 고용형태 때문이 아니었다. 일체의 권리가 박탈된 미조직 상태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임금이 낮은 건 비정규직이라서가 아니라, 권리를 자각하고 단결해서 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리를 자각하더라도 투쟁에 나서기 위해서는 도약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현재 자신의 권리를 집단적 권리로 인식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른 입직경로, 다른 고용관계, 다른 고용기간, 분업화된 노동이 분절화된 노동자로 연결되는 현실은 우리가 앞에서 들었던 공단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한 권리의식마저도 집단화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개별화된 노동자들이 기댈 곳은 법제도적 도움밖에 없고, 집단적 정치적 권리는 구제받기 위한 개별적 법권리가 되고 만다. 현재는 과거가 아니다. 특히 불황이라는 조건은 노동자들이 자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처지와 위치를 자본과 동일시하거나 권리투쟁을 주저하게 만들기 쉽다. 임금수준을 넘어서 노동자가 지닌 임금에 대한 다양한 권리감각을 현재적 조건에서 집단적 권리로 조직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실천이 필요하다.

(*)신진욱, 2004,「사회운동, 정치적 기회구조 그리고 폭력」, 한국사회학 제38집 6호
인권오름 제 460 호 [기사입력] 2015년 10월 28일 18: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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