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아파트를 통해 본 지금 여기의 노동

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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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30일 경기도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말다툼 끝에 입주자대표를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아파트 입주민의 모욕적 대우를 견디지 못한 경비원이 분신자살한 지 불과 1년 만에 비극적인 일이 또다시 일어났다. 두 사건은 일어난 곳도, 가해-피해자도 다르지만, 아파트라는 익숙한 주거공간에서 벌어진 갈등이 불러온 사건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아파트가 누군가에게는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벗어나 고된 몸과 마음을 누일 장소였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바로 그 전쟁터였던 것이다. 어느 정도 거리 두기가 가능한 언론 보도 뉴스들과 달리 우리 자신이 언제라도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이런 사건들은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위 사진:출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아파트 잔혹극

사람들이 꼽는 아파트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택배를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아마 주차장과 함께 손에 꼽히는 아파트의 생활편의성일 것이다. 반복되는 야근과 회식으로 늦은 퇴근, 그리고 허겁지겁 뛰쳐나가기 바쁜 출근길 때문에 몇 일 동안 택배를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좁은 경비실 한 켠에는 택배 상자가 쌓여있고, 이조차도 넘쳐나서 별도의 보관창고를 만들어놓은 곳도 있다.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덕분에 경비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언제라도 택배를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던 그 입주자대표의 요구가 그리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경비일은 은퇴 이후에 용돈벌이를 위해 하는 일이니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고, 고령의 남성이 할 수 있는 허드렛일이니 근로, 휴게시간, 휴일에 대한 근로기준법 조항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법적으로 규정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목격하는 경비일은 어떤가. 절대 빈곤에 내몰린 노년세대의 생존을 위한 생계활동이다. 허드렛일은커녕 본연의 업무인 경비 순찰은 물론이고 아파트 청소, 조경, 주차관리, 택배관리까지 주휴일도 없이 야간노동을 하며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격무다. 심지어 입주민 전체가 고용주이자 관리자 역할을 한다. 돈 주는 사람들 마음대로 누군가의 노동을 하찮은 일로 만들어버리는 ‘감시단속적’ 노동이라는 해괴한 논리도 문제지만, 법제도가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져서인지 올해부터는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게 되었다.

특히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짚어보자면 경비 순찰 업무 외의 일은 근로계약서 상의 경비원의 일이 아니다. 24시간 맞교대 근무라고 입주민들이 24시간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점심 저녁 1시간씩, 야간 3시간의 휴게시간을 넣어서 19시간에 대한 임금만 지급한다. 이마저도 최저임금 적용으로 비용이 늘어나자 휴게시간을 더 늘리거나 경비인원을 줄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경비원이 밤에 졸고 있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휴게시간과 공간을 보장받지 못한 채 시도때도 없이 경비실 문을 여는 입주민과 택배 노동자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비원 과로사가 적지 않다. 휴게시간 없이 24시간 근무라니!

착한 마음먹기보다 중요한 건 다른 관계 맺기

야근과 회식으로 늦은 퇴근이 일상인 아파트 입주민, 야간 휴게시간도 보장받지 못한 채 택배관리에 허덕이는 경비원, 밤늦은 시간까지 택배를 배달해야 겨우 한 달 생계비가 모이는 택배 노동자까지. 택배 때문에 벌어진 안타까운 사건은 이런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아파트와 같은 대규모 공동주택에는 경비를 비롯한 각종 주택관리업무 인력이 상시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 노동자를 고용하고 적절한 노동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책임을 아파트 입주민들이 지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자연스러운 관계가 이제는 희귀한 일이 되었다. 입주민들은 물건을 사듯이 노동력 서비스를 구매하고, 경쟁입찰을 통해 최저가에 각종 서비스 끼워팔기를 강요한다. 예전에는 경비원이 입주민의 편의를 봐주는 차원에서 소규모 택배를 맡아주었다면, 이제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택배물량을 관리할 별도의 인력이나 무인택배함과 같은 시설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경비원에게 그 책임을 모두 지우고 있다. 하기 싫다면? 다른 경비원이나 업체를 찾아 계약하면 된다.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원을 고용하고 그 노동력을 이용하는 방식은 한국 사회에서 일반화 되다시피 한 간접고용이다. 고용주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고 철저히 서비스 소비자로서 행동하는 것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관리사무소를 비롯한 아파트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가게 점원을 대하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입주민들은 아파트 관리와 관련해 불만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와 직접 해결을 도모하기보다는 가게 주인인 용역업체에 항의를 한다.

입주민과 노동자들의 관계가 소비자-서비스 제공자 관계에 묶여 있는 한, 경비원들은 고용불안에 떨면서 과도한 노동조건을 감내해야만 한다. 위에서 언급한 사건에서 입주자대표가 경비원에게 너무나 쉽게 ‘그럴거면 그만두라’는 말을 던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택배 수령 시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 지를 고민하기보다, 해고하고 다른 사람(서비스)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한 번 이런 구조-관계에 들어서게 되면 다르게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가게에 들어가 점원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과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련없이 가게를 나오는 게 전혀 별개의 문제인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건 착한 마음먹기보다 어떻게 다른 관계를 맺을 것인지다.
덧붙이는 글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61 호 [기사입력] 2015년 11월 06일 11: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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