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지난 10년간 한국의 자유권은 얼마나 후퇴했나?

2015년 유엔 자유권 규약 심의를 다녀와서①

백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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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해가 갈수록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때 극복했다고 믿었던, 어두운 권위주의 정권의 시대로 돌아갈까 두렵습니다. 한국에서 인권옹호자들은 길 위에서, 굴뚝 위에서, 법원 안이 아닌 법원 밖에서, 그리고 감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고, 노동자들은 45일이 넘게 단식 투쟁을 지속하며, 주민들은 9년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발표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명의 고등학생들이 지난 군사독재 정권을 미화시킬 것으로 보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며 거리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시민들의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고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저희는 어떤 말도 자유로이 할 수 없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거리에 나와 있는 시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지적한 문제들이 자유권 위원회의 최종 권고에 반영되기를 희망합니다."
- 유엔 제네바 위원들 앞에서 발표한 NGO 구두 발표문 (전문보기)


위 사진: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집회 차벽과 과도한 공권력 사용에 항의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출처: 민중의 소리)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 규약 심의 (자유권 심의)

시민적․정치적 권리란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정치적 기본권, 집회결사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등을 포함하는 권리로 유엔은 지난 1966년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이하 자유권 규약)을 채택했다. 2015년 현재, 유엔의 193개 회원국 중 총 168개 국가가 자유권 규약을 비준했으며 한국 정부는 1990년 해당 규약을 비준했다.
규약을 비준한 국가들은 자유권 규약 제40조에 따라 규약 이행 상황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자유권 위원회에 정기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18명의 독립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유권 규약 위원회는 해당 국가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전반에 대한 실태를 점검하고 권고에 해당하는 최종견해(concluding observation)를 발표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06년 3차 심의를 받았고 거의 10년이 지난 2015년 10월 말 4차 심의를 받았다. 원래 3차 심의 때 자유권 위원회는 2010년까지 4차 심의를 위한 국가보고서를 제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정부는 3년이 더 지난 2013년 8월 19일에 국가보고서를 제출했다.
4차 심의를 위한 한국 정부의 국가보고서가 제출된 후 자유권 위원회는 2015년 10월에 열리는 제115차 회기 때 한국 정부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국가보고서가 제출된 시기와 실제 심의 시기 사이에 2년이라는 시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권과 관련된 모든 이슈를 다 검토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유권 규약 위원회에서는 심의에 있어서 특히 관심을 가지고 중점적으로 모니터링할 쟁점목록(list of issues)을 선정한다. 예를 들어 의사표현의 자유(자유권 규약 제19조)와 관련해서 기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볼 것인지, 선거기간 동안의 표현의 자유를 볼 것인지, 아니면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볼 것인지 등 각 조항에 있어서 중점을 둘 목록들을 선정하는 것이다.
NGO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유권 위원회가 쟁점목록을 선정함에 있어서 지난 3차 자유권 심의 이후 새롭게 제시되거나 업데이트해야 하는 이슈들 혹은 해당 권리와 관련하여 특히 자유권 위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관련 의견서를 위원회에 제출할 수 있다. 쟁점목록에 포함되지 않으면 심의 당시 추가 의견을 제출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시의적절하고 날카로운 쟁점목록이 선정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유권 위원회는 이렇게 제출된 의견서들을 바탕으로 쟁점목록을 선정하고 이에 따른 추가 질의를 한국 정부에게 보낸다. 추가 질의에 대해 한국 정부가 답변할 때 NGO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유권 위원회가 정부 답변과 비교해볼 수 있도록 NGO와 국가인권위원회의 답변을 제출할 수 있다. NGO 보고서가 정부 답변에 대한 ‘그림자 보고서’라는 뜻의 Shadow Report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이미 제출된 4차 심의를 위한 정부 보고서, 추가로 제출된 쟁점목록에 대한 정부 답변, 쟁점목록에 대한 NGO 및 국가인권위원회 답변 등을 바탕으로 지난 10월 22일과 23일(스위스 제네바 현지 시각) 유엔 자유권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83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심의를 준비하다

유엔에서 이렇게 한국 인권상황에 대한 심의가 내려질 때면 여러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작업을 준비한다. 국내 여러 단체들이 공동으로 작업하게 되면 다양한 이슈들을 전문성 있게 다룰 수 있고, 대표성에 있어 더 신뢰를 받을 수 있으며, 국내 단체들의 역량 강화 차원에서도 도움이 된다. 이에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은 심의를 받기 약 1년 전인 2014년 9월경부터 함께 모여 정부 보고서를 분석하고 로비 자료를 만드는 활동을 함께 했다.
자유권 심의를 위해 시민단체들이 준비하는 문서는 크게 1)쟁점목록에 대한 시민사회 의견서, 2)추가질의에 대한 정부 보고서를 반박하는 그림자 보고서(Shadow Report)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국내 8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두 문서를 함께 준비했고 혹여 분량의 제한으로 인해 자세한 내용을 담기 어려운 경우 개별 주제에 대해 단독 보고서를 추가로 제출하기도 했다.

위 사진:출처: 유엔 자유권 심의 대응 한국 NGO 모임
사전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한 후 10월 말 실제 심의 현장에서의 로비를 위해 10여 명의 시민사회단체 대표단이 제네바로 출국했다. 자유권 심의는 국정감사와 매우 비슷하게 진행된다. 독립적인 자유권 위원(국회의원)들이 정부(담당부처)에게 질문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자유권 위원(국회의원)들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도 제공하고 질문지도 제안한다. 자유권 위원들이 한국 이슈를 잘 파악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양질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며 각 위원들이 어떤 이슈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해 로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자유권 위원들도 여러 나라를 심의한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의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제네바 현지에서는 바로 이러한 로비 활동들이 이어졌다.
자유권 심의 기간 동안 우리나라만 심사하는 것이 아닌 다른 나라도 심사해야 하고 일정이 매우 빡빡해 따로 자유권 위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만나는 시간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몇몇 위원들은 사전에 보낸 메일에 답을 해 약속을 잡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위원들은 화장실에 다녀올 때,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러 카페테리아에 나올 때 복도에서 붙잡고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겨우 위원들과의 면담이 잡히면 시민사회단체들은 형광펜을 들고 밑줄을 쳐가며 우리의 상황에 대해 알렸다. 그만큼 위원들로부터 좋은 권고를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절박했다.

한국 정부의 뻔한 답변, 성의조차 없어

심의는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위원들이 정부에게 갖가지 질문을 던진 후 약 30분 정도의 쉬는 시간을 갖고 (이 시간 동안 정부는 답변을 준비한다) 이후 정부가 위원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렇지만 40여 명이나 되는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제네바에 온 한국 정부 대표단은 자유권 위원들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거나 내놓은 대답도 저열한 인권 의식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자유권뿐만 아니라 이미 다른 유엔 인권 메커니즘(UPR, 사회권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내려진 권고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한 질문에 있어서 정부(법무부)는 “사회통합에 기여해야 할 차별금지법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되어서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가 필요한 상태”라고 답변했다. 현재 정부가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차별을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지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유엔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반차별의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유엔의 단골 권고인 사형제 폐지는 또 어떠한가. 정부(법무부)는 “사형을 인정하고 있는 형벌 체계를 바꾸려면 실질적으로 입법이 이뤄져야 하고 국회 다수 표결로 개정되어야 한다. 헌법 체계 안에서 시스템에 따라 법률이 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형제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해왔나? 정부 입법으로 사형제 폐지안을 내어놓은 적이 있었나? 아니면 사형제에 대한 국민 인식 제고를 위한 대중 캠페인이라도 한 번 벌여본 적이 있나?

이러한 답변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에도 반복된다.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과 관련해 정부(법무부)는 “병역거부자를 처벌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국민적 인식과 사회적 갈등을 고려해야 한다. 향후 한반도 안보 상황의 긍정적 변화와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전제되면 도입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국가 안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인권 침해가 자행되어왔나. 게다가 병역거부자에 대해서는 자유권 정규 심의 말고도 수차례의 개인 진정을 통해 이미 몇 번이나 자유권 위원회에서 한국 정부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정부가 이미 제출한 보고서에 있는 뻔한 답변만을 늘어놓자 한 위원은 “정부는 보고서에 이미 있는 내용을 반복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질문에 대한 추가 답변을 할 경우 보고서 내용 말고 추가적인 내용을 기반으로 발언해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사회를 보느라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못했던 의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양심에 따라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병역거부자들을 한국 정부가 범죄자 취급 하는 것이 문제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다른 단골 권고 국가보안법을 보자.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적용으로 인한 시민들의 기본권 침해에 대한 우려, 그리고 이에 따른 국가보안법 개정은 사형제 폐지보다 더 자주 유엔 인권 메커니즘에서 내려진 권고다. 이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 “국가보안법 제7조는 대한민국과 북한이 대치한 상황에서 필요최소한으로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걸 알면서 북한의 주의 주장에 찬양 동조하는 경우에만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2012년 유엔 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PR) 때도 정부는 이와 매우 비슷한 답변을 했었다. 국가보안법이 악용되지 않도록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하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그렇지만 2015년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 및 기소한 사건의 수는 상당한 증가 추세에 있다. 2012년과 2015년 정부 답변은 그대로인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통계 자료가 증명하고 있다. 물론 그 기간동안 숨어있던 보안 사범들이 갑자기 대거 발견되어 기소 건수가 증가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심의를 지켜보는 내내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의 무능한 답변에 한숨을 쉬기도 했고 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자유권 위원들이 우리가 제공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변론권이 침해된 장경욱/김인숙 변호사 사건,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경찰의 차벽 설치와 과도한 공권력 사용, 북한 트위터를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박정근 사건, 그리고 7월부터 11월 초까지 구속되었던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할 때는 로비의 성과가 느껴지기도 했다. 자유권 심의 때문인지 몰라도 당시 구속 중이었던 박래군 상임운영위원은 심의가 끝난 지 약 2주 후인 11월 2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덧붙이는 글
백가윤 님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입니다.
인권오름 제 465 호 [기사입력] 2015년 12월 03일 17:3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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