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누구를 위한 전쟁정치인가

각본을 가능케 하는 박근혜 정부의 군사적 대립 중심의 대북정책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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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시청률 높은 막장드라마의 소재가 뻔한 것처럼 전쟁정치는 언제나 기득권 세력, 권력을 장악한 정권이 자주 사용하는 소재다. 지난 1월 6일 북한에서 수소탄이라고 한 핵실험이 있고서 한국 정치, 아니 한반도 정세는 극적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국방부는 지난 해 '8.25 합의' 이후 중단했던 대북확성기 방송을 경기 중부전선에서 8일 재개하였다. 또 통일부는 개성공단 방문 인원을 입주·협력 업체 관계자 등 생산 활동에 직결되는 인원에 한해서만 허용하는 등 개성공단 출입 및 체류인원 제한 조치라는 강경책을 7일과 12일에 연이어 쏟아냈다. 10일에는 괌에서 출발한 미군의 B-52 핵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을 날아다녔다.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

그런데 언론은 이러한 전쟁 일촉즉발의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기사보다는 전쟁을 관람하듯 평하는 기사가 많다. 특히 11일 신문 1면을 대부분 차지한 전투비행기가 위용을 뽐내듯 대열을 지어 구름 위를 나는 사진은 더 그렇다. 비행기 쇼를 전하듯 언론이 보도하는 건 왜일까? 전쟁이 우리 사회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인가. 아니면 전쟁이 일어나도 상관없을 정도로 한국 사회, 동북아 정세에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것인가.

막장드라마만큼 뻔한 한반도 긴장 정세의 각본

언론의 보도태도도 문제지만, 그렇게 인식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 이후 현재의 박근혜 정부까지 한반도 위기의 촉발과 대응이 매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권 집권이래 ‘한미군사훈련(또는 대북확성기방송)-북한 반발-긴장 고조-타협-제재 강화’ 또는 ‘북한 핵실험-한미 반발(핵폭격기 비행)-긴장 고조-극적 타협-제재 강화’의 각본을 반복하고 있다.

위 사진:미국의 군사훈련 중단과 한국 정부의 대북 평화협상 실시를 촉구하며 2013년 4월 열린 기자회견 (출처: 민중의 소리)

그런데 이러한 각본이 유지되는 이유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 중심의 한·미·일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있고,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독립적 외교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에서 중국의 협조도 끌어들이지도 못하고 긴장만 고조시켜 한반도, 아니 동북아 지역 주민을 전쟁의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 실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접경지역의 주민들은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이렇듯 강경일변조로 대북정책을 유지하는데 어떻게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이 현실가능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출범 초기에 발표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알려져 있다.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나아가 통일기반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긴장일변도여서 “신뢰프로세스에 신뢰가 없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심지어 개성공단조차 군사적 대립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변했음을 보여줘야 한다. 여전히 정부는 다른 조건 없이 선(先) 핵 포기만 말할 뿐, 북한이 요구했던 한미군사훈련 중단이나 대북방송 같은 비방중상 중지 등을 제대로 수용하고 있지 않다. 아니 미국 중심의 한·미·일 군사동맹을 절대 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태도 때문에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 우리 경제가 대도약할 기회”라고 했지만, 통일의 상도, 구체적 경로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 계획도 없었다. 그리고선 2014년 3월 평화통일구상인 '드레스덴 선언'을 했다. 드레스덴 선언의 내용은 첫째, (북측)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한 재정 지원, 둘째, (북측)사회간접자본 구축 지원, 셋째, 남북주민간 문화적 동질성 회복을 위한 민간사업 지원을 담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적대적 대북정책인 5.24조치는 포기하지 않는다. 5.24조치로 평화적 남북관계의 밑바탕을 이뤘던 수많은 인도주의적 교류와 사회문화 교류, 수천 건에 달하던 경제협력 등이 중단된 것에 비춘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마디로 드레스덴 선언은 이름만 내건 평화통일구상인 셈이다. 이것은 9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한 내용에서 확실해졌다. 유엔에서 한 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인 북한에 대한 최소한의 태도도 보이지 않은 채 북핵문제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 공격했다. 적어도 앞서 말한 한반도신뢰프로세스, 통일대박론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대화의 여지를 주어야 하나 북한에 대한 존중도, 평화도 없었다. 그러니 비정치적 영역인 인천아시안게임 응원단 실무접촉이 결렬되는 것도 어쩌지 못하는 외교적 무능력은 예정된 결과이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핵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 국제사회의 평화에 부합하지 않는다. 핵 없는 세상은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기에, 한반도 비핵화에서 북한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의 핵은 미국에 대한 자위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자 북한 내부 통치력을 높이기 위한 기제였다. 북한은 꾸준히 핵무장을 통해 안전보장을 위한 대미협상을 끌어냈다. 이러한 북한 핵정책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정부는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 창구를 열어주기 위한 중재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핵무장 없이도 국제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핵을 막는다며 핵으로 공격하고 있는 형세이다. 정부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군사동맹전략에 끌려다니고 있다. 13일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에서 이러한 기조의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응한 미국의 핵 폭격기 위협은 해결방식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 위기가 한·미·일 군사동맹을 굳건하게 할 것이라고 보기에 북한을 진정시키는 일에 관심이 없다. 12일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B-52 핵폭격기 비행은 "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미국의 '확장 억지력'은 불가결하다"고 옹호하며 16일 도쿄에서 열리는 한·미·일 3국 외교차관 회의에 대해 "북한에 대한 3국간의 긴밀한 협력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한·미·일 군사동맹을 명분으로 엉터리 위안부 협상을 끌어냈으니 일본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그러니 이번 북한 4차 핵실험에 중국에게 협력을 요구해도 중국이 응해주지 않는 건 당연하다. 중국만이 아니다. 러시아도 미국의 핵폭격기 투입 이후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강경대응에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영국도 대북확성기 방송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국제정세를 감안해서인지 비방중상 중심의 대북확성기 방송을 하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했던 과거 발언과는 달리 아직까지 별다른 대응이 없다. 하지만 전쟁의 발생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어서 ‘각본일 뿐 한반도 전쟁 발화 가능성은 없다’고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남북긴장 이후 올라간 박근혜 지지율

최근의 남북관계 등 국제정세를 보면 누구를 위한 각본인가, 누구를 위한 군사적 대립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2016년 1월 4일부터 8일까지의 주간 집계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1주일 전 대비 2.1%p 올랐다. <리얼미터>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은 북한의 4차 핵실험 관련 보도 급증으로 안보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중도·보수층 일부가 지지층으로 재결집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AP통신도 11일 ‘북한 핵실험은 박 대통령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위안부 합의, 국정교과서, 노동개악 등으로 강력한 비판을 받던 대통령이 북 핵실험으로 초점을 옮겨 지지율이 올랐다며 “북한 핵실험이 세계적 공분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김정은(북한 노동당 제1비서)이 핵실험 실시를 결정해 남한의 경쟁자(박 대통령)에게 일종의 선물을 줬다”고 했다. 이른바 북풍 정치가 여전히 한국에 통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2014년 9월 유엔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기조연설 내용이 북에 대한 관계개선과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북압박의 국제공조를 요청하는 대(對)유엔용, 대(對)국내정치용으로 향한 이유이기도 하다.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이 높듯이 남북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각국에서 정권에 대한 집중도와 지지도를 높이는 수단이라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그러니 효과가 바로 드러나는 적대적 대북정책을 정부가 중단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를 위한 전쟁정치인가

하지만 전쟁이나 핵은 오락기에 나오는 게임처럼 그림(사람그림이든 건물그림이든 간에)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생명이 파괴되고 삶이 무너지고 깊은 상처로 남아 가족과 이웃, 공동체 전체가 치유하기 어렵게 한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전쟁의 잔인무도함을 알지 않는가. 위안부 할머니의 삶에서 전쟁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보고 기억하고 있다. 미국이 투하한 원자탄으로 아직도 원폭 2세, 3세들이 방사능 오염으로 고통스런 육체와 싸우며 살고 있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도 전쟁과 무기를 부국강병의 기회로, 국내정치의 활로로 보는 발상은 그 자체로 반(反)생명적, 반(反)인권적이다. 최근 새누리당 일각에서 나오는 ‘한국 핵무장론’을 현실가능성 여부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스톨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나온 사연은 과거의 목소리가 아니다. 민족 갈등으로 공격받다가 핵 방사능지대인 체르노빌로 도망 온 러시아 민중의 말이 자꾸 떠나지 않는 이유다. 그들은 전쟁과 갈등이 더 무서워서 체르노빌로 왔다. 방사능의 위험을 모르거나 감수한 채……. 전쟁을 피해 핵을 택하거나 핵을 피해 전쟁을 택하는 ‘지옥의 선택’만이 우리 앞에 놓여서는 안 된다. 지옥의 선택만을 제시할 것이 뻔한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대북정책을 정부는 중단하고, 평화적이고 독립적인 대북외교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권력을 잡은 정부의 우선적 책무이고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민중의 비극적 삶이 한반도에서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피해자의 목소리를 인용하는 것으로 마치고자 한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놀라요. 나를 이해하지 못해요. 아이들한테 무슨 짓 하는 거냐며, 애들을 죽이는 짓이래요. 나도 자살하는 거래요.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고 있어요. 마흔밖에 안됐는데 벌써 머리가 하얗게 세었어요. 마흔인데! …(중략)… 나는 사람이 무서워요. 무기 든 사람이 …….”
덧붙이는 글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0 호 [기사입력] 2016년 01월 13일 21: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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