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어릴때의 인권이야기] 여전히 진행형인 ‘2월 11일의 보호’

나어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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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의 스펙트럼

보호(保護)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위험이나 곤란 등이 미치지 않도록 잘 지키고 보살핌 ②잘 지켜 원래대로 보존되게 함,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대로다. 어린이보호구역이나 자연보호와 같은, 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어온 말의 뜻을 생각하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보호’라는 말이 법이나 제도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실제 말의 뜻과 다른 의미와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나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소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법명이 그렇고, 보호관찰제도나 외국인보호소 등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제약하는 용도로 운용되는 제도의 이름이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는 대개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한다. 극단적으로는 행정의 이름으로 개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2007년 2월 11일 새벽, 여수외국인보호소 3층 보호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강제구금된 미등록 이주민 중 10인이 사망하고 17인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여수외국인보호소에는 체류기간을 초과했거나 허가받지 않은 노동을 했다는 이유로 단속된 50여 명의 미등록 이주민이 수용되어 있었다. 긴박한 화재 상황에도 여수외국인보호소 측은 이들의 도주를 우려해 보호실 철창을 즉각 열어주지 않았고, 이로 인해 화재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번졌다. 화마 속에서 목숨을 건진 이주민들은 바로 청주외국인보호소로 ‘이감’되었다.

충격적인 사건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일순간 쏠렸다. 하지만 주된 관심은 화인이 무엇인가로만 집중되었다. 불길이 치솟은 방에서 연기에 질식해 죽어간 이들은 말이 없었다. 사건의 초점과 책임은 근무일지 상의 기록과 달리 감시실에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아닌 용역경비원을 근무시키고 불이 났음에도 즉시 철창을 열어주지 않은 보호소 당국이 아닌, CCTV에 잡힌 A모씨의 행동으로 추측되고 굴절되었다(수사 결과, 발화의 원인은 정확히 특정되지 않았고 물증 역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 문제가 타결되었다는 언론보도가 전해졌다. 그와 동시에 참사는 언론에서 실종됐다.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참사의 원인은 보호실에 수용된 ‘불법체류자’의 방화로 인지된 채 대중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참사 직후 중국동포와 한족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희생자 가족들이 속속 입국하고,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전국의 이주단체 들이 공동대책위를 꾸려 함께 싸웠다.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통해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희생자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바꿔내야 했다. 하지만 50여 일의 농성은 희생자에 대한 배상 합의만으로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 책임자 처벌 역시, 사고 당일 보호실에 근무했던 공무원 2인과 용역경비원 1인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구속기소 그리고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관리과장 등 공무원 3인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및 소방교육일지 허위 작성‧행사 혐의 불구속기소로 일단락되었다.

2012여수엑스포 실사단의 방문을 앞두고 3월 30일 합동장례식이 치러졌고, 부상자들은 국가배상금 천만 원과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은 채 4월 11일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불과 반년도 되기 전에 여수외국인보호소에는 단속된 미등록 이주민들이 다시 수용되기 시작했다.

위 사진:2016.2.11. 여수화재참사 9주기 추모집회 제단 [출처: 민주노총부산지역본부]

미등록 이주민을 강제구금하는 외국인보호소

외국인보호소는 감옥이 아니다. 하지만 신체의 자유를 제약하는 사실상의 구금시설이며, 영장도 재판도 없이 장기간의 구금이 가능하다. 출입국관리법은 보호기간을 10일 이내로 제한하고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10일 이내로 한 차례 연장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급작스러운 단속으로 체불된 임금을 받지 못했거나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 난민신청을 한 이주민의 경우 장기 구금되는 경우가 많다. 여수화재참사 희생자 중에도 체불임금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1년이 넘게 보호소에 수용되어 있다가 목숨을 잃은 경우가 있었다.

지난해 2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화성과 청주, 여수 세 곳의 외국인보호소를 방문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연례 방문조사와 법무부의 내부 실태조사 이외에 독립적인 민간주체의 조사활동으로는 최초의 포괄적 조사였다고 한다. 보고서는 여수화재참사 이후에도 외국인보호제도의 개선에 진전이 없었으며, 이는 외국인보호를 구금으로 보지 않는 시각 그리고 구금을 출입국행정절차의 일환으로 여겨 광범위한 재량을 허용하는 제도 운용에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행정당국에 의한 신체적 자유의 제약이 명백함에도 이러한 행정절차에 ‘보호’라는 이름을 붙이고, 행형법 상의 구금시설과 달리 관련 절차 진행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어 사실상 인권침해를 용인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이주민들은 이삼십 분에 불과한 운동시간을 제외하면 철창이 둘러쳐진 비좁은 보호실에 갇혀 하루를 보낸다. 행정절차라고 하지만 감옥이나 다름없는 환경으로, 실태조사팀이 냉‧난방 및 온수장치, 전화‧인터넷, 도서 및 문서‧편지 송‧수신, 침구와 의복‧신발, 매점, 청소‧위생, 의료시설 및 정기진료 등 생활 전반에 관련된 처우를 조사한 결과는 매우 열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체불임금 청구나 난민 소송 등으로 바로 출국하기 어려운 경우는 장기구금 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고, 조사 결과 생후 10개월 및 26개월의 아이가 구금되었던 사례가 확인되었을 만큼 외국인보호제도의 인권 실태는 여전히 척박하다.

참사를 기억하며, 다시 질문을
이미 2006년부터 공식적으로 표방한 ‘다문화사회’ 한국에, 체류자격 없는 이주민의 자리는 없었다. 여수화재참사는 그 자체로 한국정부가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 출입국관리법이 달성하고자 하는 법치의 목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참사 두 달 만에 중국으로 출국했던 부상자들은 이후 대부분 외상후스트레스로 고통 받았고, 치료 목적의 비자를 받아 개별적으로 입국했었다. 하지만 체류비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치료 목적의 비자만을, 그것도 조금씩 체류기간을 줄여가며 발급하는 것으로 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마지막 예의, 최소한의 ‘보호’조차 내팽개쳐버렸다. 시간이 흐르며 부상자들의 행적도 알 길이 없게 되고, 매년 조촐한 추모제가 치러지고는 있지만 여수화재참사는 조용히 잊혀져간다.

여전히 정부는 매년 ‘불법체류 엄단’을 내걸고 관계부처를 모아 합동 강제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2010년 G20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미등록 이주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지목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고, 이러한 방식은 공안 통치의 손쉬운 수단으로 반복된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주민을 위험사회의 희생양 삼으려는 ‘테러방지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주민 출신 여성이 집권여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고, 창립 10년 만에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합법적인 지위를 얻었다. 지난해 9월 터키 해변에서 시리아 난민 어린이가 숨진 채 발견된 후 세계 각국의 정부가 난민 수용의지를 밝힌 가운데, 한국정부 역시 '재정착 희망 난민 제도' 시범 시행을 발표하고 12월에 태국 난민캠프에 체류하는 미얀마 난민 네 가족 22인을 선정해 받아들였다.

이주민을 상대로 정부가 연출하는 극단의 풍경들은 내몰아야 할 이주민과 보호받아야 할 이주민의 구분 그리고 ‘법치’를 통한 인권침해를 정당화한다. 일상이 된 강제단속과 ‘다문화’를 표방하는 정책은 이주민 인권에 대한 착시현상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확산되는 이주민에 대한 서열화는 차별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어 사회에 침투한다. 잊혀져가는 여수화재참사, 그 속에서 기억하고 주목해야 할 것이 외국인보호제도의 문제점만은 아닐 것이다. 불가침의 주권 영역으로 공고화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강제 단속과 구금에 대해,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보장되어야 하는 이주민의 인권에 대해, 정부가 선별하는 보호와 은폐하는 차별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나어릴때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5 호 [기사입력] 2016년 02월 24일 10: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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