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안산살인 사건 피의자 얼굴공개, 무엇을 위한 알 권리인가

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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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요즘 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검사는 조사실로 끌려온 건달에게 욕설과 으름장, 뺨 한 대를 때리면서 조사를 시작하는 반면, 재벌이나 지체 높은 고위 공직자가 들어오면 책상 몇 번 두드리다 고이 보내드린다. 지체 높은 사람과 지체조차 없는 사람이 겪는 사회적인 대우는 검찰 조사뿐만이 아니라 이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방식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5월 7일 경찰은 안산경찰서(서장)는 살인사건 피의자 조모 씨를 긴급 체포하여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조모 씨의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였다. 평소 피의자들이 경찰서를 나설 때 얼굴이 가려졌던 모자, 마스크나 수건은 보이지 않았다. 피의자 조모 씨의 어떤 사진들은 그가 애써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묘한 안타까움까지 자아냈다. 영장실질심사가 끝나자 경찰은 아예 대놓고 피의자의 신상(실명, 나이)을 공개했다. 조모 씨에서 조성호로 바뀌는 순간 SNS 공간에서 신상털기가 시작되었다. 경찰의 신상공개와 언론의 신상털기는 하루가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발생한 일들이다. 재판을 통해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조모 씨는 피의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살인자라는 ‘낙인’이 붙었다.

신상공개에 관해서 피의자 인권을 보장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자 경찰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아래 특강법)’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특강법 제8조의 2에 따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것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 제2조 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등과 같은 4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피의자의 신상(피의자의 얼굴과 성명, 나이)을 공개할 수 있다. 경찰은 조 씨가 긴급체포된 7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개최하여 조성호 사건이 4가지 요건에 모두 해당된다고 판단하고, 그의 실명과 나이를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살인혐의자의 신상공개 감각적 호기심을 자극할 뿐

경찰에 의해 조 씨의 실명과 나이, 얼굴이 공개되자마자 그의 SNS의 계정이 털리고 언론은 범죄혐의와 상관이 없는 조 씨의 과거이력을 앞 다투어 보도하였다. 과거 그의 사진이 언론기사에 실리고 심지어 부모와 전 여자 친구라고 알려진 사람의 정보까지 공개되었다. 이쯤 되자 경찰은 신상털기 행위에 대해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겠다고 엄벌 방침을 내세웠다.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의 얼굴과 과거행적이 도대체 알 권리의 영역에서 다뤄져야할 내용인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경찰이 공개한 조성호의 신상정보는 살인죄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에 관해 감각적인 호기심을 자극할지언정 범죄의 재발방지와 예방이라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로 보기에 힘들다.

더욱이 경찰이 국민의 알권리를 운운하는 것은 점입가경이다. 경찰이 진정으로 시민의 알 권리를 존중했다면 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이후라도 충분하다. 굳이 영장실질심사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 조 씨의 얼굴을 공개한 것은 어버이연합사건과 같은 굵직한 정치적인 사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을까. 경찰이 피의자에 대한 모든 정보를 거머쥐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피의자에 대해, 어떤 정보를, 어느 시점에, 얼마만큼 공개할지를 경찰이 판단하는 것은 정보 주체로서 또 다른 행위자인 ‘피의자의 인권’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이다. 집회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몇 번 경찰에게 소환장을 받고 나를 왜 소환했는지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경찰은 ‘수사’라는 이유를 들어 철저히 비공개처리 했다. 소환자인 나에 관한 정보를 경찰은 온전히 독점하면서 시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던 경찰이 다시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범죄혐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범죄자의 인권 존중은 범죄예방의 출발점

인권운동사랑방이 감옥인권을 해왔던 시절, 몇 번의 단순 절도죄로 인해 사회보호법을 적용받아 곱징역을 살아왔던 증언들이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나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악법이라고 공인된 ‘사회보호법’이 폐지된 후에도 이들은 자신의 증언으로 인해 본인의 이름이 인터넷에 드러나자 인권운동사랑방으로 전화를 해서 기사 정정(이름 삭제나 식별이 안 되도록 수정)을 요구하였다. 사회보호법 폐지라는 정치적으로 옳은 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명이 드러나는 것은 곧 자신이 교도소를 들락거려야 했던 과거이력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출소 후 직장을 구해 살아가는 동안 범죄 이력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자 기사 정정을 간절히 요구한 것이다. 만약 조성호 씨에게 유죄가 확정되어 그가 형을 살고 나온 후에 언론에 도배되어 있는 그의 신상털이를 목격한다면 한국 사회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범죄자의 인권 존중은 범죄예방의 중요한 출발점임을 다시금 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강력범죄가 이슈화될 때마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강성 처벌정책이 쏟아져왔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도 군포살인 사건의 강호순 씨가 검거되면서 경찰이 강 씨의 얼굴이 공개되어 문제되자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법이다. 처벌 중심의 강력한 형사정책만으로는 범죄예방과 재발방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작 우리가 범죄예방을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은 범죄에 관한 정확한 정보들이다. 가령, 어느 곳에서 어느 시간에 누구에 의해 어떤 범죄가 발생하는지에 관한 정보, 범죄를 예방하고 시민 스스로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지역사회 자원들 등이 있다. 정작 경찰이 시민에게 알려야할 정보는 감춘 채 조 씨의 얼굴처럼 꼭 알지 않아도 되어야 할 것들이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드러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또 다른 한편,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익명보도’라는 이름으로 감추어지고 있다. 사법비리로 얼룩진 ‘막장드라마 정운호게이트’에서 홍만표 전 검사장과 최유정 전 부장판사는 주요 행위자들이다. 사건 초기부터 1심 변론을 맡은 홍만표 전 검사장과 2심 변론을 맡은 최유정 전 부장판사(2심 변론 변호사)의 실명을 거론하는 언론도 있었지만 주류 언론사들은 이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주류 언론들은 이들의 이름 영어 이니셜을 따서 ‘H 전 검사장이나 C 전 부장판사’로 보도하였다. 정운호게이트의 경우 관련자의 실명과 공직의 직책이 밝혀지는 것은 범죄혐의를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정황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행위와 그 행위 주체를 익명보도 함으로서 법조비리에 관한 진실은 ‘의혹’으로만 보도되었다. 이들이 과거의 공적인 지위를 통해 검찰에 로비를 했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상 홍만표 전 검사장의 과거이력(어느 검찰청 검사장)은 의혹이 아닌 진실규명을 위해서 꼭 알아야 할 정보이다. 전관예우라는 봉건적인 관행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퍼져 있음에도 이 사건이 아직 의혹으로 맴돌고 있는 이유는 검찰이 연루된 사법비리를 감추고 싶은 권력의 의도가 언론까지 깊숙이 숨어있기 때문은 아닐까.

의혹과 낙인..... 이라는 이름으로 요약할 수 있는 두 사건은 우리에게 ‘알 권리’란 것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조성호 씨 신상공개가 알 권리 차원에서 거론되고 홍만표 전 검사장과 최은영 전 부장판사의 실명이 익명성 보도라는 차원에서 숨을 때 인권의 원칙과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일이다. 인간이 무중력 상태에서 살 수 없듯이 인권 역시 사회적 관계의 힘 속에서 존재한다. 감추고 싶은 진실과 존중받아야 할 권리 속에서 인권이 작동되는 방식을 통제할 힘을 사회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인권은 결국 권력자의 앞잡이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알 권리가 향하는 방향은 사회정의를 세우고, 민주주의를 넓히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조직할 수 있는 힘의 반영이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85 호 [기사입력] 2016년 05월 18일 20: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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