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혐오’에 맞선 싸움이 열어낸 장소

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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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서울 강남역 근처 어느 화장실에서 한 남성에 의해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범행 당일 붙잡힌 피의자는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 말이 알려진 후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쪽지가 붙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바라보고 피해 여성을 추모하기 시작했다. 한편 경찰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사건을 규정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행정입원 추진이라는 후속 대책을 내놨다. 장기간 정신질환을 앓아온 남성의 망상폭력이 여성이라는 사회적-신체적 약자에게 투사된 이 사건을 무엇이라고 규정할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 발생 이후 드러난 사회적 흐름이다.

이번 사건과 같은 불특정 여성에 대한 흉악범죄는 과거에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여성혐오’라는 시각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집단적인 추모와 행진으로 이어진 것은 또 다른 경험이다. 온라인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에 대해 ‘남성혐오’행위라며 반발하는 것 또한 낯설다. 예전 같으면 불쌍한 피해자를 동정하고, 잔인한 가해자를 욕하고, 국가에 강력한 치안대책을 요구하고 말았을 한국사회가 ‘여성혐오’를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맞서기 시작했다.

혐오 정치의 동학

혐오는 한국 사회에 낯선 개념이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종교적, 인종적, 성적 정체성의 역사 속에서 혐오범죄, 혐오표현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규범이 자리를 잡아왔지만 한국에서는 최근에야 ‘혐오’에 대한 담론이 폭발하고 있다. 온라인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통되던 ‘혐오’ 표현과 행위들이 언론과 대중매체를 통해 커뮤니티 바깥으로 흐르게 되고 광주민중항쟁, 세월호와 같은 이슈와 결합해 거센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한국사회에서 혐오는 사회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중요한 개념이 되고 있다. 분명 당시에는 ‘혐오’라는 프레임으로 인식되지 않았을 한국사회의 오랜 차별과 적대의 행위들이 ‘일베’와 같은 혐오 행위 주체들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재해석된다. ‘전라도’, ‘빨갱이’, ‘종북(북한)’은 차별이 아닌 혐오의 대상이 된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는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평등한 주체가 아니라 주류 사회에 기생하는 혐오 대상이 된다.

차별과 혐오는 밀접하지만 차별이 윤리적, 정치적 의제의 형태로 드러난다면 혐오는 감정, 기호, 태도의 형태로 드러나고 집단화된다. 어떤 대상이나 사람을 혐오한다고 했을 때, 주를 이루는 것은 거부감, 역겨움, 피하고 싶은 마음, 배제, 제거와 같은 정서이다. 이러한 부정적 정서가 집단화될 때 차별이라는 정치적 행위로 쉽게 연결된다. 차별은 서로가 개입하고 연루되며 관계하는 정치적 행위지만 혐오는 가급적 피하고 싶고 상대에 대해 알고 싶지 않으며 가능하다면 배제하고 제거해버리고 싶은 반(反)정치적 행위다. 그런 점에서 혐오는 개인적, 탈정치적 정서가 아닌 상호개입가능성의 차단, 배제, 말소, 정치의 해체에 이르는 반(反)정치적 정치다.

문제는 한국의 주류 세력이 ‘반(反)정치적 정치’라고 할 수 있는 혐오의 정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과 대중매체는 온라인 특유의 조롱과 비하와 결합된 혐오 코드를 확산하는데 일조하다가 물의를 일으키면 사과하는 척 하면서 한 발 빠진다. 온갖 보수집회에 동원되어 막말과 폭력을 일삼는 어버이연합에 전경련이 돈을 대고 청와대가 지시를 내린다.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공격하는 선봉에 선 개신교 보수 세력과 교류하는 여야 정치인들은 또 어떤가. 주류 권력이 직접 혐오의 정치를 선동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존재와 선동을 통해서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정당화한다. 여성의 취업차별, 승진이 막힌 유리 천정의 현실을 호소하면 군가산점제를 부활시켜야 할 형편이라고 하고, 차별금지법은 제정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일베의 518 희생자, 세월호 유가족 혐오가 문제가 되면 혐오범죄를 처벌해야 한다고 소리 높인다. 적어도 지금까지 한국의 혐오 정치는 권력의 꽃놀이패였다.

위 사진:강남역 10번 출구에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시민들이 놓아둔 쪽지와 추모 물품이 비로 인해 훼손될까 옮겨졌다는 것을 알리는 공문.

‘여성혐오’에 맞선 싸움이 열어낸 장소


- 차별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데 죽이지 마세요 부터 시작해야 하는 현실
-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고 싶지 않다는 게 왜 남혐인가요
- 남자에게 보호 받고 싶지 않습니다. 남자 없이도 안전하고 싶을 뿐이에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범죄자로 일반화하지 말라고? 여자는 이미 ‘피해자’로 일반화됐다!
- 추모하러 오는 이 순간조차 나의 안전을 걱정하고 혹시나 찍힐 몰카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습니다. 이게 정상입니까? 이래도 여성혐오가 없습니까?
- 여성혐오. 이 이야기를 단순히 ‘강자/약자’, 혹은 ‘갑/을’로 만들어 버리고 싶은 모든 ‘보편주의자’들에게. 날마다, 해가 지면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하는 성폭력의 공포를 느껴야 하는 삶을 생각해보시길.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1004장의 추모 쪽지 중 일부다. 추모 쪽지에서 볼 수 있듯이, 10번 출구에 모인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단지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폭력과 차별의 편린으로 이번 사건을 재구성해냈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했던 것은 차별과 폭력이 작동되는 방식으로서 여성들이 공통으로 경험한 ‘여성혐오’를 통해서였다. 흉악범죄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통계, 양성평등지수에서 세계 최하위권에 속한다는 숫자로는 전달되기 힘든, 여성에 대한 비하와 차별, 폭력의 경험이 ‘여성혐오’라는 말로 여성들에게 인식가능하게 된 것이다. 한국 여성들에게 여성혐오는 특수하고 극단적인 사례가 아닌 것이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무엇이 혐오인지, 범죄의 원인이 무엇인지 갑론을박하기보다 ‘여성혐오’라는 말을 통해 쏟아내기 시작한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먼저다. 이곳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막연했던 공포와 두려움, 답답함이 ‘여성혐오’에 맞선 싸움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피해 여성의 자리에 본인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여성들의 절규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겠다는 외침이기도 하다. 단지 불특정 남성에 의한 폭력만이 아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아버지, 남편, 남자친구와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만연한 여성혐오의 원인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더욱 촉발되고 있다. 특수하고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 ‘여성’에게 가해지는 적대와 폭력으로서 혐오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이 촉발한 여성혐오는 권력의 꽃놀이패였던 혐오 정치와는 다르다. 여성들의 외침에 대한 응답이 차별금지법 제정, 여성 폭력 근절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포괄적 대책이 될지, 공용 화장실 남녀 분리, 정신질환자 행정입원이 될지는 강남역 10번 출구가 열어젖힌 싸움에서 결정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86 호 [기사입력] 2016년 05월 26일 9: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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