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의 인권이야기] 불안의 이유

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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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제법 더워졌다. 언제부턴가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벌써 한여름을 견딜 것이 걱정이다. 샤워 후 옷을 갈아입는 짧은 순간에도 땀이 줄줄 흐르고, 안경이 미끄러져 코끝에 걸쳐 있기 일쑤다. 내 방 책상 위 달력은 아직 4월 달도 넘기지 못했는데, 벌써 6월의 반이 흘렀다. 휙휙,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무엇을 붙잡고 있어야 할지, 혹은 다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어떻게든 붙잡힌 것들은 때로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노래방에 있는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이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연쇄’ 살인이 아니고서야 누군가 누구를 죽이는 일이 그닥 큰 일이 아니게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죽은 사람이 ‘여성’이라는 것이 너무 익숙했구나.

피의자는 경찰조사에서 “사회생활에서 여성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나에게 이 사건을 재규정하게 했다. 피해자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살해당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연쇄살인사건, 수많은 뉴스에서 등장하던 살인이나 폭행사건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풀벌레 소리

지난 달 제주에 갔을 때 이틀 정도를 혼자 있었다. 평소 다른 사람들과 많은 공간을 공유해야하는 게스트하우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유독 이번 여행에는 낯선 경험이 하고 싶더랬다. 친구를 통해 알게 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던 사장님과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침묵이 흘렀는데 밖에서 지이이잉- 지이이이잉-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 들려요?” 네, 들려요. “풀벌레 소리에요.” 특별할 것 없는 대화였는데, 특별했다. 왠지 마음에 남았다. 내 일상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였다. 게스트하우스는 방문이 달린 방이 있는 게 아니라 넓고 긴 공간을 책장과 다락으로 구역을 나눠놓았을 뿐이었다. 이야기가 잘 통했던 선량해 보이는 인상의 사장님은 남성이었고, 다른 손님은 없었으며, 결국은 한 공간에서 잠을 청해야 했으므로 갑자기 ‘돌변’해 나를 해치려 들면 어떡하지라는 공포가 막을 새도 없이 밀려들었다. 그 공포는 아무 일 없이 아침을 맞이하면서 조금 누그러졌다가 저녁에 여성인 다른 손님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고 완전히 사라졌다.

#불안의 이유

어떤 공포와 불안은 내 삶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그것을 부러 자각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주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나는 그동안 왜 늦은 밤에 혼자 집에 가는 게 무서웠을까, 술 마시고 친구들과 헤어질 때 택시 번호를 휴대폰 메모장에 저장했을까(그 친구가 여성일 때만). 막연한 공포와 불안이 실제가 되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웬 남성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던 기억, 초등학교 앞 자주 가던 문구점 사장이 무릎에 앉혀놓고 몸을 더듬던 기억……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고, 트라우마로 남기도 하는 이런 기억들은 강남역 사건 이후, 포스트잇과 SNS를 통해 빼곡하게 이야기되어졌다. 이를 통해 강남역에서 벌어진 일은 여성에 대한 만연한 폭력에 기반한 것이었음을 나 자신에게 말할 수 있었다. 어느새 체화된 내 불안의 이유를 알게 되었으며, 그것이 새삼 억울하고 분했다. 왜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안을 한 한 몸처럼 안고 살아가야 해!

위 사진:5월 27일 열린 강남 ‘여성 살해’ 사건 관련 긴급 집담회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지난 5월 27일, 서울시청에서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 강남 ‘여성 살해’ 사건 관련 긴급 집담회가 열렸다. 장소를 옮기고, 준비한 자료가 바닥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발제와 토론이 모두 끝나고 마이크는 플로어로 넘어왔다. 자신을 한 살인사건 피해자의 부모라 소개한 분은 딸한테 해줄 게 없어서 여기 왔다고 했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막막하다던 사람도 있었다. 또, 자신은 장애인인데, 이 사건을 정신 장애를 가진 특정한 사람이 벌인 것으로 몰고 가는 것에 화가 난다고 했다.

경찰은 범행동기가 여성혐오에 의한 것이 아니며, 정신질환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곧바로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강제 행정입원 등을 가능케 하겠다는 대책 아닌 대책을 내놓았다. 원인을 완전히 잘못 짚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대책도 제대로 된 대책일 수 없다. 국가는 강남역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희생양 삼기를 통해 또 다른 혐오를 부추긴 것이다. 이것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선동하고, 조직하는 혐오범죄와 다를 것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을 지켜본, 불안을 내 몸처럼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은 또 다른 누군가 혹은 한 집단을 이 사건의 모든 원인이라고 손쉽게 결론지을 수 없음을 안다. 오히려 이런 프레임에 맞서 서로가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하며 끊임없이 연결 지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며 외쳤던 구호는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안전은 권리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 전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자유롭고 평등하다. 안전한 삶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할 권리다. 안전은 통제와 억압으로 보장될 수 없으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 평등, 연대 속에서 구현되는 인간의 존엄성이야말로 안전의 기초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을 권리로 말하도록 했다. 언제든 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존재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인권선언은 말하는 안전은 어떠한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6월 14일, <평등해야 안전하다> 중첩된 혐오를 넘어 안전할 권리를 말하기 토론회를 다녀왔다. 이제부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같이 할 수 있을지 가늠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메모해두었다. 강남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스스로 주체가 되기로 한 사람들에 의해 “여성혐오” 살인사건으로 명명되었고, 결국 여성 혐오에 맞서자는 말은 세상을 뒤엎자는 말과 같은 말일 수밖에 없다. 이를 풀어나가는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은정 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89 호 [기사입력] 2016년 06월 15일 11: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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