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이 가로 막는 것

더위를 피할 사회적 시스템이 있나

디요
print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올 여름 가장 핫 이슈가 있다면 그 중 하나는 폭염과 전기 요금일 것이다. 2016년 8월 1일부터 8월 17일까지 서울지역 평균 최고기온 34.4℃. 온열 질환 감시체계가 시작된 5월 23일부터 8월 14일까지 집계된 온열 질환자 1800명. 압도적인 무더위 속에서 쓰러진 사람의 수가 지난 5년 평균 온열질환자 약 846명과 비교해서 이미 상당히 상회한다. 강력한 더위는 전기에 대한 의존도 역시 배가시킨 듯하다. 에어컨 판매량은 작년 약 150만대 대비 회사별로 1.5~2배가량 늘어 역대 최대인 220만대 판매를 전망하고 있다. 결국 기록적인 더위와 그 더위에 대한 전기 의존도의 증가는 11.7배라는 자극적인 누진배율을 장착한 주택용 전기요금 폭탄에 도화선을 당긴 것이다.

이번 논란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전기요금 누진제 자체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더위에 대처하는 모습이다. 우리에게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없다. 더위는 오롯이 개인에게 맡겨져 각자도생하는 중이다. 에어컨이 있는 사람은 에어컨을 틀고, 선풍기가 있는 사람은 선풍기를 틀고, 이것도 저것도 없는 사람들은 견디는 방법밖에 없다. 즉, 개인의 피서는 전기를 사용하는 방법뿐인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누진제가 문제로 인식되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 각자가 사용하는 전기 사용량이 11.7배를 내는 6단계까지 도달하느냐와 무관하게 집에서 조차 더위를 참을까 돈을 쓸까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이다. 여기에 옷가게, 커피숍 앞만 지나가도 도로까지 시원해지는 에어컨 바람은, 다시금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에 누진제가 없다는 불평등한 사실을 느끼게 하고 이는 분노를 증폭시킨다.
위 사진:전기요금 고지서에 있는 전기요금 안내


따로 또 같이

결국 한전은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들여 지난 8월 11일, 작년처럼 7월부터 소급하여 9월까지 누진제를 3개월간 완화하기로 했지만 불만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누구는 근본적인 누진제 개편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말하고, 또 누구는 누진제가 아니라 에너지 정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도 이야기한다. 여기저기 불만과 논란의 가운데 목소리는 모이지 않는다. 전기를 필요한 만큼만 쓰자는 이야기가 없어서 못 쓰는 사람에게 가능한 적게 쓰라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상황에서 논의는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무엇을 요구하고 어떤 것을 받아내야 할까? 이 요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더위에 대처하는 방식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을 구분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구분되어야 할 논의를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필요한 목소리가 만들어지지 못한다. 이 더위를 모두가 이겨낼 수 있도록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자원을 분배하기 위한 논의와, 사회 전체적으로 자원을 가능한 적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논의는 배치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각각의 논의를 적절하게 배치시켜 우리의 요구로 만들 필요가 있다.

더위를 극복하기 위해

지구의 기온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기상관측 이래 지구 전체적으로 가장 더운 해는 2000년 이후로 몰려 있으며 2015년 7월은 그 중에서 가장 더웠던 달로 기록에 남아있다. 극단적인 기온 상승은 실재하는 위협이다. 기후 변화로 약자 집단의 인권이 유린되는 현상을 ‘인권 멜트 다운’으로 호명한다. 한 나라 내에서도 취약계층이 기후 변화의 최대 피해자라고 이야기한다. 좀 더 건강의 관점에서 살펴보더라도 더위가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확실하다.**

기후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물학적인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작동하며, 더위에 취약한 계층이 형성되어 있다. 고령, 질병, 빈곤, 장애, 열악한 주거시설이란 조건의 속에서 더위는 생존까지도 위협한다. 따라서 더위는 개인적인 노력으로 맡겨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대처가 필요한 문제이자, 사회 전체적으로 그 해법을 도모해야 할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한 사회가 더위에 대처한다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전체적으로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따져보는 일이다. 한낮에 야외에서 노동하는 노동자에겐 실효성 있는 작업 중지권을 필요하며,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겐 시원한 공간으로 이동할 이동권이, 쪽방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겐 임시적인 무더위 쉼터만이 아니라 더 나은 주거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 누진제를 둘러싼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더위의 문제는 아니지만 실제로 겨울철 추위에 대해 이미 대구지역에서는 2006년 ‘주거난방 기본권’을 외쳤다.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기름보일러는 울며 겨자 먹기다. 도시가스 대비 등유는 3배의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어 추위와 생계 어느 것에도 보탬이 되지 않아 오히려 석탄난로를 다시 설치하게 만들기도 한다. ‘주거난방 기본권’은 서민들의 난방을 책임지기는커녕 방치하고 오히려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부를 향해 함께 모여 외친 목소리로 난방용 등유 가격을 인하하고, 난방용 연료에 특별소비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면제하고, 빈곤층에 대한 난방 지원 대책을 수립을 요구했다. 이를 더위의 문제로 적용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동체와 사회가 갖추어야 할 더위에 대한 대처라는 관점 아래서 누진제 완화든 존폐든 논의되어야 한다.

에너지 정책의 문제로 논의를 확장시키는 것은 어떨까? 필요한 자원을 평등하게라는 원칙에 ‘가능한 적게’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과정이자, 에너지를 덜 소비하기 위한 사회 전체적인 지반을 형성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런데 논란을 일으켰듯 실제 전력 소비량은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사용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원가 이하로 전기를 제공하는 정부는 이 사회를 전기 과소비 사회로 만들겠다는 의지표명과 다를 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사용의 문제가 다뤄지는 방식 역시 더 많은 자원 즉, 자본을 축적하는 방식의 틀에서만 다루며 환경과 관련되어서는 중요한 쟁점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전 세계가 앓고 있는 이 심각한 무더위는 인간의 자원 소비방식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꾸준히 석탄, 화력, 원자력 발전소를 증설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에너지 소비 전체를 조망하는 입장이 없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모여서 함께

올 여름을 뜨겁게 달군 누진제가 논란은 되어도 모두의 요구로 등장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 정부와 국회, 그런 정부와 국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다시 그 목소리를 ‘철퇴를 맞아야 할 누진제 폐지 반대’로 치부하는 더위에 찌든 사람들. 대책을 강구해야 할 이들의 무대책이 싸움만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무작정 더위를 참자도, 에어컨을 마음 편하게 틀자도 답이 아님은 분명하다. 앞으로는 어떻게 이 더위를 평등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와 동시에 지구의 더위 자체를 걷어내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 구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한다.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지금의 더위가 가시기만 기다린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더위는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조효제, 인권의 지평, 2016
**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더위, “사회적 죽음”을 부른다, 2012
http://www.health.re.kr/2010/bbs/board.php?bo_table=b003&wr_id=32&page=3

덧붙이는 글
디요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97 호 [기사입력] 2016년 08월 18일 10:12:23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