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김영란법이 한국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

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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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금지법)이 지난 9월 28일 시행되었다. 일명 ‘김영란법’으로 알려진 부정청탁금지법은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언론인, 국공립, 사립학교 임직원에 대한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법률이다. 기존 부정부패 관련 법령과 달리 부정청탁금지법은 적용대상자를 언론인, 교육계 종사자로 대폭 확대하고 직무관련성 유무와 상관없이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학연, 지연, 혈연을 이용해 만들고 접대로 관리해 온 인맥이 공적인 절차보다 중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부정청탁금지법이 가져올 변화는 생각보다 크다.

부정청탁금지법은 2012년 8월 당시 국민권익위원회(김영란 위원장)에서 법 제정안을 발표하면서 등장했다. 당시 권익위가 법안을 만들 게 된 계기는 2010, 2011년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 사건이었다. 해당 검사들은 고급 승용차를 비롯한 거액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고도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았다. 이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여론이 빗발치면서 부정청탁금지법이 성안되었지만, 검사들이 장악한 법무부가 반대하고 온갖 청탁과 접대가 일상인 국회의원들이 이 법을 쉽사리 제정할 리 없었다. 성안 이후 2년 여 동안 묻혀 있던 부정청탁금지법이 다시 등장하게 된 건 세월호 참사 대통령 대국민담화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관피아를 지적하면서 국회에 부정청탁방지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 것이다. 결국 언론인, 학교 임직원이 포함되고 헌법소원을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부정청탁방지법은 시행되었다.

#그런데최순실은?

400만 명에 이르는 법 적용 대상자는 물론이거니와 기업체 직원으로서, 학부모로서 이들과 만나야 하는 사람들, 접대경제라고 불릴만한 해당 요식업 종사자들까지 부정청탁방지법을 공부하면서 노심초사하는 지금, 청와대가 직접 재벌들에게 돈을 뜯어내 목적도 불분명한 재단을 세우고, 공직자들의 비리적발과 인사검증을 책임진 민정수석의 온갖 비리와 특혜 의혹이 쏟아져도 아랑곳하지 않는 현실을 우리는 동시에 겪고 있다. 게다가 이 일을 진두지휘하는 이가 대통령의 최측근이지만 어떤 공직도 맡고 있지 않은 최순실, 정윤회라는 ‘비선 실세’의혹까지. 이제는 익숙한 일이 될 정도로 청와대 발 각종 특혜와 비리 의혹이 뉴스를 도배하고 있지만 ‘국가 기강을 흔드는 일’을 그만두라는 권력자의 일갈에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법은 거대한 부정부패를 뿌리 뽑지 못하는 법이다. 청탁이 들어오면 어떻게 대응할 지 이런 쫀쫀한 것을 규정한 법이다.”

부정청탁금지법을 제안한 김영란 전 권익위 위원장의 발언이다. 이 법에 과도한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현실적 조언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가장 불의한 정권이 휘두르는 가장 엄격한 부정부패방지법이라는 현실을 정확히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이 법은 국회가 제정했지만, 법을 주도하며 휘두르는 건 정부와 검찰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어려운 사례풀이 문제처럼 각종 상황에 대한 시시콜콜한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법을 현실에 적용하고 판단하는 권력이며, 실제 처벌이 되려면 검찰의 기소부터 거쳐야 한다. 애초에 이 법의 제정 계기가 되었던 벤츠 검사 사건은 진경준, 홍만표 사건에 비추어보면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가장 부패한 권력 중 하나인 검찰이 가장 엄격한 이 법을 통해 겨누는 대상은 누가 될까? 이제 호화유람선 관광접대를 받은 조선일보 주필 문제는 자진사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관피아에 돌리면서 부정청탁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특조위가 밝히고자 했던 구조 실패의 직접적 원인과 책임 규명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버텼다. 청와대와 국정원과 같은 권력 핵심은 조사조차 하지 못한 채, 청해진해운, 한국선급 직원, 해경 경비정장, 세월호 선원들이 주로 처벌 받았다.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에 맞춰 청와대는 ‘누구나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청렴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한 경쟁’ 좋은 말이다. 지연, 학연, 혈연에 온갖 접대와 금품 향응이 난무하는 현실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청와대로부터 저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에 맞춰 누구나 공정하게 법 앞에 설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게 사람들의 마음이다. 청와대든 검찰이든 그 누구라도 말이다.

위 사진:한 눈에 보는 김영란법 합헌 결정(사진출처-KBS 뉴스 홈페이지, 2016.7.28.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20042)

평등, 공정함에 대한 열망이 향해야 할 곳

부정청탁금지법이 한국 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기업과 유착한 조선일보 주필은 처벌받아 마땅하며, 퇴직 관료들이 유관기관에 근무하면서 온갖 청탁과 금품향응을 받아온 관피아도 사라져야 한다. 대가성이 없더라도 접대를 당연하게 생각해 온 ‘관행’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렇게 알게 모르게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가 공적 권력을 어떻게 사유화해왔는지 한국 사회는 철저히 돌아봐야 한다. 부정청탁금지법의 제정은 한국 사회가 인적-사적 네트워크에 얼마나 심각하게 잠식당해왔는지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정함, 평등함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가 바로 그 공정함, 평등함에 대한 욕구를 부정청탁금지법을 통해 이용하고 있다. 정권 말기에 연이어 터지고 있는 엄청난 비리, 특혜 의혹 속에서 정부와 검찰이 앞장서 청렴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과 같은 거대한 부정부패를 건드리려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주변에서 같이 경쟁하고 있는 이들이나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라는 것이다. 부정청탁금지법이 캔커피법으로 희화화되지 않거나, 법의 공정한 집행이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시민참여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세월호 관피아 처벌과 함께 참사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성역 없는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치권력의 하수인이면서 부패한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기소, 수사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가 부재하다면, 부정청탁금지법은 가장 부패하고 불의한 이들에게 또 다른 칼을 쥐여 준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덧붙이는 글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504 호 [기사입력] 2016년 10월 13일 1: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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