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트럼프, 박근혜를 당선시키는 선거와 다른, 진짜 민주주의

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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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이게 나라냐’며 탄식을 내뱉을 때,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부분의 주류 미국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은 힐러리 당선을 예측했다. 이를 받아 보도한 국내 언론 역시 대부분 힐러리 당선을 예상했고 트럼프에 대한 뉴스는 공화당 주류와의 반목, 인종차별, 여성, 이주민 혐오 발언, 성폭행 의혹과 같은 것들이었다. 띄엄띄엄 미국 소식을 듣던 우리에게 힐러리는 이미 미국 대통령이었고, 공화당은 붕괴 직전 상태였다. 이제 엉터리 언론보도는 뒤로 하고 트럼프 당선을 가능하게 했던 힘, 그의 당선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잠시 돌아보자. 이게 그냥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미국인의 80% 이상이 그 이유로 ‘변화’를 꼽았다. 그만큼 힐러리는 미국인들에게 확고부동한 주류 정치인이었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이미 영부인, 국무장관을 거치며 클린턴, 오바마 행정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이들이 원했던 변화의 핵심은 바로 먹고사는 문제, 경제적 문제였다. 트럼프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미시간, 오하이오, 위스콘신, 펜실베니아는 신자유주의 이후 쇠락을 거듭한 제조업 중심지역이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친 미국은 이들 지역 이외에서도 안정적 ‘고용’이라는 개념이 무너지고 마치 원료를 쓰듯이 사람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게 자유로운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자본 운용방식에 정보통신, 금융, 서비스업은 쉽사리 적응했고, 거대설비와 대규모 노동력이 고용되었던 제조업은 해외로의 공장이전, 아웃소싱을 통한 위탁 생산으로 활로를 찾으려 했다. 전 세계의 자본은 정보통신, 금융 부문 투자처를 찾아 미국의 동부와 서부로 몰려들었고, 공장이 축소되고 폐쇄된 중부는 활력을 잃어갔다.

문제는 트럼프가 이런 대중들의 욕구를 극우적인 수사(修辭)를 통해 결집시키고 왜곡했다는 데 있다. 표에 도움이 된다면 서슴없이 말바꾸기를 하는 트럼프지만 선거기간 내내 엘리트가 아닌 미국인(백인 남성)들이 느꼈을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박탈감에 호소했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의 이유를 해마다 급증하는 유색인들의 일자리 차지, 가정에서 뛰쳐나온 여성들과의 경쟁에서 찾았다. 이들이 겪는 경제적 지위 하락에 따른 사회적 존중의 결여가 교양 있는 엘리트들의 인종, 성별우대에 따른 역차별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이 얼마나 인종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이들은 트럼프가 설정한 백인 남성 기독교인이라는 인종과 성별, 종교적 구획에 자신들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트럼프의 혐오발언과 행동에 침묵했고, 트럼프가 차별, 혐오발언의 강도를 높일수록 트럼프는 자신들을 위한 정치를 워싱턴 엘리트들과는 다르게 할 거라는 기대를 품었다.

트럼프의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보호무역주의, 제조업 유치, ‘국제사회’에 지출해온 미국의 원조와 군사비 삭감은 그것만으로도 제국으로서 미국의 세계전략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백인 남성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트럼프는 부동산으로 돈을 번 억만장자 자본가다. 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은 다 팽개치고 미국은 미국인이 자유롭게 돈을 벌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믿을 게 분명하다. 반면 트럼프 당선이 미국사회에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국은 200년 전에 유럽에서 건너온 기독교인들이 만든 나라이며 이들이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 구획 내부에 속하지 못한 ‘소수자’들이 겪을 두려움은 당선 이후 급증한 증오범죄들로 이미 드러나고 있다.

위 사진:11월 12일 100만 시민이 모여 박근혜 퇴진 행진에 함께 하고 있다.<사진 출처-민중언론 참세상>

박근혜가 아직도 한국 대통령이다

100만 명이 촛불을 들어도 박근혜는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지지율이 5%고 100만 명이 집회하면 대통령은 무조건 물러나야 하는 거냐, 목숨을 걸고 대통령직을 지킬 것이라는 발언까지 보도되고 있다. 이 정도면 불통이 아니라 집단 최면상태다. 트럼프와 달리 박근혜는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좌파적’ 공약을 내걸며 당선됐다. 외환위기 이후 변변한 사회적 안전망도 없이 자본주의 생존게임에 내몰린 사람들은 ‘변화’를 갈구했다. 미국과 달리 어려움을 탓 할 이주민도 많지 않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이미 세계최고수준이고, 종교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기 어려운 한국에서는 표를 얻을 거짓말이 ‘좌파적’ 공약밖에 없었다. 그 결과 지난 4년은 거짓말의 연속이었다. 국정원과 검찰을 앞세운 공안정치는 ‘종북몰이’를 통해 정당을 해산시키고 운동을 탄압했다. 경제민주화는 느닷없는 노동조합 죽이기로 바뀌어 ‘노동기본권 박탈’과 공기업 팔아먹기가 정권 내내 계속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정부의 어이없는 사고 대응은 우리 모두를 경악시키고 국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보수정권이 되풀이 해온 역사이기도 하지만 지난 대선을 휩쓴 국민들의 열망이 경제적 문제의 해결이었다는 점, 이를 박근혜 정부가 철저히 짓밟으면서 대통령 스스로 비선 조직이라는 초유의 방식으로 사적 이익을 쌓아왔다는 점에서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다.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소위 민주적으로 제도화된 한국 정치는 대중의 열망을 선거를 통해 조직하고 자신들의 권력으로 수렴시켜왔다. 당장 87년에 반독재 민주화 운동은 사회를 마비시킬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직선제 개헌에 머물며 노태우 정부가 탄생했고,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열망은 3김 정치라는 한국 정치의 구조 속에서 권력자들의 도구가 되었다. 정치개혁의 열망이 노무현 정부를 낳았고, 성공한 사업가라면 모두 돈 좀 벌게 해줄 거라는 기대가 이명박 정부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생존게임’인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자 했던 지난 대선의 기대가 극적으로 무너진 지금, 모두들 다시 우리를 ‘민심(民心)’이라고 이른다. 그리고 조만간 있을 거라고 기대되는 선거에 어떻게든 이용해 보려고 한다.

거리의 촛불이 새로운 권력이다

불과 한 달여 사이에 급격히 변화하는 정국을 만들어낸 건, 박근혜도 최순실도 아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정국을 관리해보려던 보수정치권, 언론, 재벌은 모두 연이은 촛불 집회가 만들어낸 격랑으로 빨려 들어오고 있다. 하야가 불가피해보이는 상황을 촛불 집회가 만들어냈고, 청와대는 배수의 진을, 야당은 정권 퇴진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누가 뭐래도 현재 국면을 이끌어갈 수 있는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는 세력은 거리의 촛불밖에 없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권 퇴진 이후의 상황을 구상하고 주판알을 튕기는 건 보수정치인들뿐이다. 박근혜가 목숨을 걸고 대통령직을 지키겠다는 지금, 박근혜를 끌어내릴 수 있는 힘도, 이후 새로운 권력을 구성할 힘도 거리의 시민들에게 있다. 야당을 포함해 새로운 정부, 권력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전국 곳곳에서 박근혜 이후 새로운 사회의 밑그림을 함께 그려야 한다. 이 정세는 한 두 번의 폭죽과 같은 촛불집회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아래로부터의 토론과 행동으로 결집한 힘이 새로운 권력으로 나서야 한다. 이게 또 다른 트럼프, 박근혜를 당선시키는 선거와는 다른, 진짜 민주주의다.
덧붙이는 글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509 호 [기사입력] 2016년 11월 16일 23: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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