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영화를 만나다] <아버지의 깃발> 아래 ‘전쟁영웅은 없다’

<아버지의 깃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김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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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영화를 골라 봐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자빠질 만큼 우스운 코믹영화도 좋고, 눈물 콧물 쏙 빼는 사랑영화도 좋다. 사람 사는 삶을 담았다면 그곳을 진지하게 짚어보고 싶을 뿐. 그러나 많은 영화들은 한 인간의 삶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흥미로운 관계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한 인간의 삶은 그저 배경으로 묻혀 버리기 일쑤다. 그것이 그 관계를 규정짓는 핵심일진데 말이다.

전쟁에 매몰된 미국

영화 도 인간관계 속에서 늘 존재했던 영웅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만 미국의 상업영화답지 않게 “전쟁 영웅은 없다. 영웅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미 아는 사실이어도 조금은 신선하고 반갑다. 영웅 만들기에 신물이 나서 자백한 진실고백(이것이 의외로 돈이 될 거라는 속셈)일 수 있지만 어쨌든 맞는 말이니까. 그러나 영화는 더 이상의 것을 자백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 모두 사람을 죽였다고 얼버무리고 있다.

위 사진:영화 <아버지의 깃발> 중 한 장면


일본군과 미군 수만 명을 죽인 2차 세계대전의 최대 격전지인 이오지마 전투. 격전 중에 미군 해병 여섯 명이 섬의 스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았고, 그 현장을 찍은 사진 한 장이 그들을 미국의 전쟁영웅으로 만든다. 그러나 그 중 세 명은 계속되는 전쟁에서 죽고, 살아남은 세 명은 국민들에게 채권을 팔아 전쟁기금을 모으려는 정부의 홍보 대사로 이용당한다. 정치인들은 치열한 이오지마 전투를 과장해 알리도록 부추기며 미국인들의 돈을 ‘접수’해 달라고 부탁하듯 ‘명령’한다. 전쟁승리를 위한 기금마련을 위해 미국 국민 모두가 전쟁의 참혹한 죽음과 고통 속에 매몰되어야 한다.

전쟁을 위한 조작된 편견, 인종차별주의

미군은 소대원들에게 잔인한 일본인 손에 죽지 않기 위해서는 일본 군인을 완벽하게 죽여야 한다고 각인시킨다. 또 “일본군인은 독종 중의 독종이기 때문에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본군은 벙커도 없는 돌섬에 숨어서 총을 쏘아댄다. 섬광을 찾아 수류탄을 던져도 죽지 않고 계속해서 총을 쏴대고, 밤이면 등 뒤에서 악을 쓰며 달려들어 칼로 찌른다. 끝내 수류탄으로 자폭하는 일본군인의 모습은 그들의 잔인성을 더욱 강조한다. 이런 ‘독종’이 숨어 있는 일본 섬을 소탕하고 섬멸해야만 일본군인의 잔인한 만행과 기습 공격을 근절할 수 있다. 그것만이 자신과 ‘전우’의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영화는 일본인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못하고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죽여야만 이 전쟁에서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종차별을 숨기지 못한다. 적의 포악한 행위를 부각시키고 그에 응당한 집단적인 보복행위를 정당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그러나 양쪽 군인이 서로에게 기관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져 섬 전체가 유황냄새와 탄약냄새, 시체 썩는 악취로 뒤범벅이 되는 끔직한 상황에서 적의 적대감과 증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인종차별주의’는 전쟁의 지독한 뿌리를 키우는 조작된 편견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한다.

진실이 없다면 영웅도 없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영웅들은 끝내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불명확한 사진 속에 숨은 진실, 성조기를 꽂은 진짜 군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 성조기를 꽂은 군인들이 아군의 총탄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간다. 영화는 전쟁의 진실은 전우들만이 안다고 말하면서 그 진실을 더 캐묻지 않는다. ‘세상에 영웅이 있다, 아니 없다’하며 이미 가치를 잃은 영웅의 실존문제를 따지고 있을 뿐,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파탄냈는지는 말하지 못한다. 영화는 그저 전우의 죽음을 보며 “이건 개죽음이야”라고 개탄하며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전쟁이 끝날 수 있다는 미국정치인들의 어리석은 논리를 나열한다. 영화에서처럼 사실의 일부만을 나열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전쟁을 일으키고 지속시키는 정치인의 폭력적인 힘과 그것에 대해 침묵하며 바라보는 태도. 그것은 그 정치인들을 제어할 방법이 없으며 평화를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무기력을 전파할 우려가 있다. 결국 계속되는 전쟁에 대한 면역력만 키우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전쟁과 살인을 선동해온 정치인들은 전쟁을 더 폭력적이고 잔인한 것으로 만들었다.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떠벌리는 정치인들의 미사여구 뒤에 감추어진 전쟁의 잔학성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때로 그 전쟁의 본질을 들춰내는 일이 자국의 잔학성에 대한 진실을 들춰내는 일이더라도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힘과 구조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전쟁과 인권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오름 제 43 호 [기사입력] 2007년 02월 27일 20: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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