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구_창] 발전권 논문에 대한 비평들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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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발전권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유엔독립전문가의 논문을 살펴봤다. 20세기의 마지막 국면에 인권의 장에 등장한 발전권은 논쟁적이며, 모호하며, 미완이라는 수식에 싸여있다. 유엔독립전문가의 논문에서도 발전권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얻을 수 없는 한계는 여전하다. 오늘은 이 논문에 대한 다양한 비평들을 살펴본다.


(1) 발전권의 이론
(2)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3) 발전권의 실천
(4) 이 논문에 대한 비평들


“‘발전’ 자체가 문제다”

먼저 발전권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들 수 있다.

첫째, 개인을 강조하고 국가의 개입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인권의 관점에서의 비판이다. 권리의 주체도, 권리의 대상도, 의무의 주체도 모호한 권리를 내세우는 것은 인권의 보편성과 신성한 권위에 흠집을 낼 뿐이라는 것이다.

집단을 권리의 주체로 내세울 때 모호한 집단의 확대는 3세계나 남반구 전체로까지 확대돼 결국 ‘국가’들이 권리의 주인이 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독재정부가 발전을 명분으로 개인의 인권을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할 위험성이 크다고 비판한다. 특히 유엔독립전문가의 주장처럼 발전권은 ‘과정’에 대한 권리라는 식의 주장은 권리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말할 성질의 것을 권리의 목적이자 대상으로 만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라는 반응이다. 국제사회의 의무, 초국적 기업의 의무, 다양한 비국가행위자의 의무 등 의무 주체를 무한 확대하는 것 또한 권리와 의무의 소재를 흐릴 뿐이라고 본다.

둘째, ‘권’이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발전’의 본래 개념이 바뀔 수 없다는 시각이 있다. 인권도 경제도 잘돼가고 있는 곳은 발전돼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은 ‘발전도상국’이니 ‘미발전국 또는 저발전국’이라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발전한 나라’나 ‘발전도상국’ 모두가 사실상 ‘발전’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발전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상 경제발전이고 그것은 지구 위의 모든 인간과 자연을 산업경제 시스템 속으로 집어넣는 일이다. 경제발전은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원인이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되면 지구가 다섯 개 아니 그 이상이 있더라도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빈곤 등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다.

유엔독립전문가의 글에서도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경제성장 자체를 강조하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경제성장을 수단일 뿐 아니라 목적으로 보는 부분도 나타난다. 이에 대해서는 입장이 나뉜다. 경제성장이 발전권을 실현하는 프로그램에 포함되는 부분이라 할지라도 성장에 대한 강조나 성장 자체를 목적으로 내세우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입장이 있는 반면, 세계은행 등의 논평가들은 이런 시각을 환영한다. 경제성장을 인권침해의 주온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인권의 장에 너무 팽배해 있다는 불평이다. 따라서 유엔독립전문가가 경제성장을 강조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가치체계의 문제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기존의 가치체계는 경쟁, 개인주의적 경향, 공동의 사회적 목표에 대한 무관심이다. 그래서 경제적 가치는 ‘통합적’인 것이 아니라 ‘배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발전권을 주창하면서 기존의 가치체계에 단지 인권의 차원을 덧붙이는 것으로는 될 수 있는 일이 없다.

경제체제를 인간화하고 부를 창출하는 전체과정에 발전권을 통합시키는 것은 가치체계의 변화가 요구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발전권은 특수한 가치주장을 내재한 권리가 된다. 그리고 그에 기반한 모든 개혁은 사회의 특수한 생산체제와 직접 연관된다. 인권의 보편성은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는데 특정 가치체계를 미리 정해놓고 그것에 대한 권리를 외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그 결과는 서로 다른 가치들의 갈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또한 발전에 대한 청사진이 단일하거나 통일적으로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발전권에 기초한 가치체계의 변화를 옹호하는 것은 있지도 않은 것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모순이 된다. 사회의 다양한 행위자들은 새로운 사회구조와 합의를 만들기 위한 틀거리를 제공받기 전까지는 발전권을 옹호하기도 반대하기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발전권에 포함된 많은 요소들, 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참여와 권한강화, 좋은 거버넌스(공치)와 파트너쉽, 투명성, 책임성 등을 도덕적, 윤리적으로 부르짖거나 권리 실현의 도구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권리 체계 자체에 넣는 일은 어렵다는 비판이 주로 제기된다.

“발전권 실현은 어렵다”

발전권에 대해 옹호하건 반대하건 간에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발전권의 ‘실현’이 어렵다는 것이다. 추상적인 발전권을 구체적이고 특수한 정책과 프로그램에 가져다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많은 정부들이 발전권을 국익 개념을 위해 이용한다는 것이다. 실천을 위한 대화보다는 뻔한 정치적 입장을 나열하는 대화가 발전권의 등장 시기부터 문제가 됐다. 부당한 국제 경제질서에 대한 변화와 보상을 기대하며 무역조건의 증진, 부채 해소 등 선진국의 원조 의무를 강경하게 주장하는 3세계의 도전이 있었다. 이에 대해 선진국들은 원조는 기부국들이 주권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발전권 증진의 명목 하에 구속력있는 국제적 의무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독립전문가의 논문에서는 이런 초기의 대립과 거기서 사용된 언어가 오늘날에는 적절성을 상당히 잃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독립전문가의 논문에서 실천방법으로 제시된 ‘개발원조’와 ‘발전계약’에는 상당 부분 그런 대립의 요소가 내재돼 있다.

둘째, 발전권 하면 ‘모호하다’는 말이 나오듯이 발전권의 이론적·경험적 지식은 취약하다.
발전권이 추상적 개념을 실천 단계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발전과정에 무슨 일이 벌어졌고, 어떻게 결정이 이뤄졌으며, 어떤 압력이 우선순위 설정에 영향을 주며, 어떤 참여가 이뤄졌는지를 심도 깊게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권영향평가를 포함하여 분명한 지침, 평가기준, 모니터링 등이 있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엔 차원에서 지침과 점검목록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은 아직 시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추상적인 발전권을 현실화하는데 있어 초점을 맞출 것은 구체적인 ‘빈곤퇴치전략’이라는 의견들이 자주 제출된다.

셋째, 이론적 취약성과 맞물린 실천의 부재이다. 듣기 좋은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전권에 근거해 정책과 프로그램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원을 할당하는 예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개별국가도 물론이지만 국제인권의 장에서 빠짐없이 발전권을 선언문에서 언급하기는 하지만 행동계획에서는 무시되고 있다.

일례로 유엔밀레니엄발전목표를 채택하면서 “발전권을 모든 사람에게 현실로 만들고 전체 인류를 결핍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고 했지만 지금 세계는 성장과 번영, 보다 개방적인 시장,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실제 정책목표로 취하고 있지, 가난한 사람들의 발전권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발전권 실현을 위한 실천은 그 성격상 장기적일 수밖에 없는데 흔히 목격되는 대응은 즉각적인 도전과 요구에 대한 대응이다.

“발전의 중심은 사람이다”

독립전문가가 논문에서 주장한 바와는 달리 발전권에 대한 회의와 반대, 적극적인 옹호간의 차이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일치점을 찾는다면 ‘발전’의 중심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도덕적 호소에 대한 동의일 것이다.
발전의 관심은 모든 사람의 존엄성, 모든 인간의 상호의존성, 그리고 모든 생명의 보전에 있다. 따라서 그것이 ‘권리’이건 아니건 간에 발전은 인간 능력의 실현에 관한 것이다. 내가 완전히 사람일 수 있기에 필요한 것, 사람이 자신의 인격을 충분히 실현하기에 필요한 것이 발전이고, 그것에 대한 실현방법은 무력감을 느끼고 도움과 보조에 의한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발전에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발전에 대한 접근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적되는 점은 인권에 대한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다. 기존의 인권 규범의 개인적이고 나열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종합적·구조적으로 인권을 규정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발전권의 존재 이유이다. 그것은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단순히 합산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상호의존성을 고려하는 속에서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발전에 대한 접근은 경제적인 것에만 머물 수가 없다. 제도, 참여, 재정, 경제, 법, 사회적 통합 등을 포괄하는 모든 요소를 총체적으로 다뤄야 한다.

어디로 가느냐와 어떻게 가느냐는 둘 다 중요한 문제이다. 발전권 선언에서 말한대로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상태로 가기 위해 “사람은 발전의 적극적인 참여자와 수익자”가 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 “적극적이고 자유롭고 의미있는 참여의 기초”위에서 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인권오름 제 43 호 [기사입력] 2007년 02월 28일 2: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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