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척이다] ‘강제’검진이라는 ‘기회’?

성매매여성의 건강권, 국가를 넘어 날아오르길

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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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원하지도 않는 법 조항을 제멋대로 고쳐 마치 ‘인권’을 대단하게 보호하는 양 왜곡하지 않으면 좋겠다.” 우연히 보게 된 민주성노동자연대(아래 민성노련)의 성명서는 국가인권위의 에이즈예방법개정안에 대한 권고를 놓고 이렇게 얘기했다.

성매매여성 강제검진 폐지는 공중보건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전염성 질환이라면 누군가를 강제로 검진할 수 있다는, 팔을 끌어당겨 주사바늘을 꽂고 피를 뽑아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무분별한 인식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매매여성들에 대한 강제검진은 남성들의 안전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정책인 만큼 여성인 나로서는 더욱 불쾌한 정책이다. 그런데 성노동자들이 검진을 “다소 귀찮아할 수는 있어도 강제적이라고 비난하지 않는 편”이라고 입장을 밝혔을 때의 난감함이란…….

에이즈예방법전면개정안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성매매여성 강제검진은 어려운 문제였다. ‘강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기회’이기도 하고 이 기회는 성매매여성들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성노련이 “절대다수의 성노동자들은 자신은 물론 고객의 건강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검진에 응하고 있”다고 말할 때 희미하게나마 그녀들의 절박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강제검진의 폐지가 “‘성매매피해여성’은 에이즈 검진을 해줄 가치도 없다는 말이 된다”는 분노에서, 검진의 기회를 잃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을 엿보게 되기도 한다.

성매매여성들에게 에이즈는 매우 두려운 질병이다. 성매매여성지원활동을 했던 지인은 성매매여성들이 매우 불안해하며 HIV검사를 적극적으로 받는다고 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여성에게서 남성으로 감염될 확률보다 남성에게서 여성으로 감염될 확률이 훨씬 높고 성매매여성들이 HIV에 취약한 계층임은 국제인권문헌들에서도 강조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매매여성들이 자유롭게 HIV검사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직장에서 작업환경으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 악화를 예방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검진을 시행할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하는 것처럼, 성매매여성들에게도 검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강제검진은 폐지되어야 하지만 검진의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현실에서 무력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성매매여성들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법·제도의 틀에 꽁꽁 매여있기 때문이다. 2004년 9월, 여성부와 복지부는 ‘집창촌’에 콘돔을 배포하려는 계획을 두고 난감해한 적이 있다. 복지부는 에이즈예방 차원에서 콘돔을 대량 구매·배포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여성부는 정부가 불법 성매매현장에 대해 의료지원을 하는 것이 성매매를 용인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어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검진뿐만 아니라 콘돔 역시 필요하다. 건강의 위해요인이 있는 현장인 만큼 그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성부는 현실이 아니라 이상 속에서 오히려 여성건강에 역행하는 주장을 한 셈이다. 그러나 콘돔의 배포만으로 에이즈가 예방되는 것도 아니다. 콘돔이 있다는 사실과 콘돔을 사용한다는 행위 사이에는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라는 견고한 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콘돔만을 뿌려대는 것은 성매매여성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성매매를 위한’ 정책이다. 이것은 성매매를 ‘근절’하겠다며 ‘성매매여성을 근절’하는 정책과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성부의 입장이나 복지부의 입장 모두 ‘여성의 건강’을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역사적으로도 ‘여성의 건강권’은 늘 제도에서 미끄러졌다. ‘성병’에 대한 강제검진제도는 19세기 유럽에서 성매매여성에 대한 관리를 목적으로 한 공창제의 실시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래서 유럽의 ‘폐창운동’은 강제검진제도 폐지운동이기도 했다. 그러나 강제검진제도는 ‘성병’의 예방에 실패했고 전염병예방법의 폐지는 ‘폐창’에 실패했다. 성매매는 지속되었고 공창제 아래서 등록되었던 여성들에게 ‘주홍글씨’를 남겼을 뿐이다.

건강권은 자유와 자격을 모두 포함한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하면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 등을 공급하는 것이 사회의 의무다. 그러니 ‘일단’ 콘돔은 많이 배포되어야 할 테고 민성노련이 “에이즈 검진, 합법 불법 떠나 자율적으로 받게끔 쾌적한 환경 조성하라”고 주장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설령 그녀의 신분이 법·제도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건강권은 법에 앞서는 인권이다.
그러나 강제검진이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책이라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강제검진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세간의 주장들이 성매매여성의 건강권이 아니라 ‘국민건강권’만을 고려하는 주장이라는 것도 뻔하다. 또한 민성노련이 “고객의 건강을 위하여” 검진에 응한다는 말에서 국가의 성매매여성강제검진의 논리를 엿보며 멈칫하게 되고 강제검진폐지가 “주류여성계의 음모가 아닌지” 우려하는 그녀들의 목소리에 순간 아득해진다. 어디쯤에서 만날 수 있을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격적으로 에이즈를 검진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라는 지적에서 막연하나마 그녀들과 만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그녀들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만 하면서 발을 떼지 못했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이제 발을 떼어 그녀들과 만날 자리는 ‘여성의 건강권’을 얘기할 수 있는 자리이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인권오름 제 44 호 [기사입력] 2007년 03월 07일 2: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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