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의 인권이야기] 외국인보호소에 갇힌 임신 7개월의 레티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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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를 타고 가파른 길을 올라 성수동의 꼭대기라고 여겨질 법한 곳에서 하차했다. 얼마 안 있어 외국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지나치는 것으로 봐서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 골목으로 들어선 뒤 대문을 거친 후 다시 나타난 한층 좁고 어두운 길을 따라 걸으니 어느 새 작은 문이 하나 나타났다. 마치 꽁꽁 숨겨놓은 듯 보이는 작은 문을 똑똑 두드리니 드디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레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에 봤을 때 레티는 하도 울어 시뻘게진 눈으로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이번엔 그 누구보다도 해맑은 얼굴로 웃으며 나를 맞이해주니 나 역시 행복해졌다.

2월 27일, 우리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처음 만났다. 나도 그녀도 눈물이 자꾸 앞을 가려 길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나는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녀는 불법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목동 출입국사무소에 갇혀 있었고, 내일이라도 당장 추방될 처지였다. 문제는 그녀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곧 임신 8개월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배는 남산만큼 불러와 있었고, 그런 상태로 차가운 시멘트와 쇠창살로 둘러쳐진 보호소에 감금돼 있으니, 그것은 레티뿐만 아니라 레티의 뱃속에 있을 아기에게도 차마 못할 짓이었다.

그래서 레티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평소 레티를 알고 지내던 몇 명이서 부랴부랴 보호소 측에 인도적 조치를 호소하러 갔다. 여수 보호소 화재 참사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보호소 측은 레티가 출산할 때까지만이라도 풀어달라는 우리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는 듯 했으나 보증금 1천만원을 요구했다. 말도 안되는 얘기였다. 그 큰 액수를 듣자마자 레티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필리핀으로 곧장 가겠다고 했다. 감금된 상태가 너무 힘들어 어서 나오고 싶어 했으나 1천만원이라는 큰돈이 없는 그녀는 필리핀으로 추방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문제였다. 보호소 측이 연결해 준 항공사는 며칠 안으로 갈 수 있는 좌석이 매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며칠 뒤면 공휴일과 주말이라 보호소 측은 그 기간에 아예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영락없이 최소한 일주일은 더 갇혀있어야 할 판이었다. 어이없게도 ‘추방’하는 일조차 보호소 측에만 맡길 수 없어 우리는 직접 나서서 온갖 항공사를 뒤져 겨우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자 또 문제가 생겼다. 항공사 측이 임신 32주를 넘긴 여성은 탑승할 수 없다고 통보해 온 것이다. 결국 레티는 필리핀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고, 이런 상황에서 보호소 측은 보증금을 1천만원에서 3백만원으로 낮추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보호소 측은 레티가 필리핀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되는대로 우리에게 직접 레티를 필리핀으로 돌려보내라는 어이없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 공무원들에게서는 ‘인권’이라는 개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레티와 주변 사람들이 주머니를 털어 모은 돈이 채 3백만원이 안되어, 우리는 결국 인도적 호소를 포기하고 보호소 측의 비인도적 조치에 강력히 항의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부터 이주노조와 한국이주노동자센터 등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이 일을 도와주었고, 한 수녀님이 보증을 서주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레티는 풀려날 수 있었다.

한국의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된 그녀는 앞으로 5월 14일까지만 한국에서 머무를 수 있는 상태다. 내가 레티의 집을 찾아 갔을 때 레티는 풀려났다는 기쁨도 잠시, 필리핀으로 쫓겨나야 한다는 예정된 고통을 두고 시름시름 고민을 키우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사진첩을 꺼내와선 그녀의 첫 아기를 보여주었다. 올해 3살이 된 그녀의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필리핀으로 보내져 레티의 친척이 키우고 있었다. 태어난 지 갓 한 달이 안 된 젖먹이 아기를 비행기에 태워 고국으로 보내야 했던 그녀의 과거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눈에 선했다. 그렇게 일찍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던 이유도 돈 때문이었다. ‘불법’ 이주노동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태어난 지 1개월 된 아기에게 부과된 벌금이 십만원. ‘불법’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삶은 온갖 고통의 연속이었다. 레티는 자신의 아이가 있는 필리핀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간절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필리핀엔 더 이상 일자리가 없는 절망적인 곳”이라며 “한국에 남아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레티처럼 희망찬 꿈을 안고 더 행복한 삶을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 이주노동자가 무려 40만명이나 된다지만, 이곳은 그들에게 아무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정책에 따라 불법과 합법의 기로에 서야 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법’으로 규정되면 그때부터는 생지옥이 따로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중 최악의 사건이 바로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사건이다. 10명이 목숨을 빼앗긴 상황에서도 현장에서 부상당한 생존자들에게 수갑을 채웠던 한국 정부의 모습은 얼마나 악랄하고 반인권적인지. 도대체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이성을 가지고 있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이주노동자’에서 ‘이주’는 단순히 ‘이동’의 뜻만을 내포하는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인종과 국적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누가, 어디에서 이동하는가에 따라 지옥과 천국으로 나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매일 수천, 수만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이 비참한 현실에서 헤어나오는 또다른 살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벌어진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사건은 남아있던 희망마저 무고한 생명과 함께 다 태워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는 고인과 유족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는커녕 임신 7개월 된 레티를 포함한 ‘불법’ 이주노동자들을 ‘사냥’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이러한 현실, 국경 너머 푸른 꿈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치고는 너무나도 잔혹하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지은 님은 '경계를넘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5 호 [기사입력] 2007년 03월 13일 20: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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