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의 인권이야기] 장벽 속에 갇힌 사람들

지은
print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참혹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도저히 부족하다. 마치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인내심의 최종단계가 어디일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일들이 매일 이라크 인들에게서 벌어지고 또 벌어진다. 4년 전 전쟁과 점령이 몰고 온 이라크의 현실은 아무런 희망의 조각 하나 남겨놓지 않고 고통과 절망으로 뒤덮인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어처구니없는 미군의 ‘장벽 쌓기’

최근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하기 위해 벌이는 일들 중에서 기상천외하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은 ‘장벽 쌓기’이다. 미군은 4월 초부터 아다미야 지역에서 시아파 공동체에 둘러싸여 있는 수니파 공동체를 길이 약 3.5미터, 무게 약 6톤의 시멘트 장벽으로 둘러치는 작업을 해왔다. 그들은 장벽을 건설하는 이유가 종파 간 싸움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고 자폭테러와 같은 공격 위협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위 사진:공간을 가르는 이라크의 고립장벽은 사람들의 삶마저도 갈라 버린다.<출처; www.iraqslogger.com>

기본적으로 장벽은 주민들의 보호와 안전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지배집단인 미 점령군이 피지배집단인 이라크인들을 더욱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이를 위한 움직임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장벽 건설 임무를 맡은 미 해군 부대 토마스 로저스 사령관의 말을 인용해, 아다미야 지역은 장벽 건설을 통해 사방이 차단되고 유일하게 만들어진 입구를 통해 출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지역 전체를 일종의 게이트화(Gated)된 지역으로 변모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수반될 이라크인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예측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조금만 더 눈을 돌리면, 세계에서 제일 큰 감옥이라 불리는 이스라엘의 분리장벽이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장벽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미 훨씬 이전부터 미군이 이라크에 장벽을 세우는 안보논리와 거의 흡사한 명분으로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분리장벽을 쌓아오고 있었다. 장벽 속에 갇힌 팔레스타인인들은 주거의 자유, 교육을 받을 권리, 의료시설에 접근할 권리, 일 할 권리 그리고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 등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기본권을 모조리 빼앗긴 채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국제사회조차 이스라엘의 분리장벽은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아파르헤이트 장벽’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고, 국제연대운동 진영에서는 이를 ‘분리장벽’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야만성과 반인권성을 드러내는 ‘고립장벽’이라고 불렀다.

끔찍한 장벽 건설의 결과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모두 장벽 건설의 결과는 끔찍하다. 부당한 침략과 점령에 맞서온 민중의 저항은 가혹한 통제와 탄압 아래 서서히 분열되고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물론 장벽은 국제적인 관심조차도 모두 차단시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립된 지역 안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개개인들의 아우성도 결국에는 모두 봉쇄당할지도 모른다. 이미 이스라엘이 세운 장벽은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눈물과 절규가 장벽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가로막고 있다. 장벽으로 이산가족이 된 사람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고향과 농토를 잃은 사람들, 심지어 장벽 때문에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 이스라엘의 장벽 건설은 지금까지 너무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잿빛 인생에서 영구히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역사적인 범죄행위가 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이 이번에는 직접 나서서 제 2의 고립장벽을 이라크에 건설하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오리발을 내미는 방식을 취하지도 않는 것 같다. 오히려 합리적인 이성이나 보편적 상식으로도 전혀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파괴적 행위들을 노골적으로 저지르고 있어 경악스러울 뿐이다.

이라크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지난 5월 7일 사드르시티에서는 미군의 기습적 공습으로 수백명의 민간인들이 짐도 제대로 싸지 못한 채 황급히 도망쳐 나오는 통에 꼼짝없이 오갈 데 없는 난민이 되었다. 또 사망자는 얼마나 발생했는지 아직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라크가 점령당한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군은 민간인 지역 공습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면, 정작 이라크인들이 두려워하고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하고 여기는 세력은 누구일까? 마찬가지로, 지금 이라크인들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위 사진:미군의 장벽 건설에 반대하는 이라크인들<출처; www.iraqslogger.com>

평화적 공존을 가로막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대를 제거하려는 미국 점령 정책의 본질은 이미 온 세상에 뚜렷이 드러났다. 이라크인들이 지금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은 이라크인들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건설한다는 미군의 고립장벽이 아니라, 평화로운 일상의 안정이고 궁극적으로는 전쟁과 점령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덧붙이는 글
지은님은 국제연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53 호 [기사입력] 2007년 05월 09일 2:17:53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