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동자동 건강권 배움터 ③] 우리는 어디로

건강하기 위해 우리가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을 찾아

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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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동자동의 저녁 풍경이 익숙해져간다. 건강권 배움터가 진행될 맛나샘 식당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먹고 간 음식 냄새가 남아있다. 매일 먹는 밥이지만 배가 고플 때마다 밥의 유혹은 얼마나 간절해지는지. 밥만큼은 아니라도 건강권 배움터가 일상 속에서 건강할 권리를 주장하는 데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시간에 이어 본격적으로 '건강할 권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건강권 배움터의 두 번째 프로그램은 이다.

사람답게 살 수 있기 위해

참가자들은 모둠별로 가상의 인물이 되어서 그 인물의 상황에 따라 바닥에 그어진 건강선들 중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살고 있는 집, 평소에 먹는 식사, 일하는 환경 같이 건강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적당히 갖춰졌을 때는 기준선에 서기로 했다. 그리고, 건강이 좋을 것 같은 사람일수록 위쪽의 건강선에, 건강이 좋아질 희망이 없을수록 아래쪽의 건강선에 자리를 잡는다. 기준선에 서는 것은 은행원인 지숙씨 밖에 없었다. 기준선 아래에는 노점상 말숙씨, 노숙인 성식씨, 의료급여수급권자 순자씨, 농민 병식씨가 있었다.



"저도 살아봤는데, 반지하방은 햇빛이 들지 않아 습기도 많이 차고 공기도 좋지 않아요. 거기서 살면 건강할 수가 없어요."말숙씨 모둠에서 말숙씨가 사는 반지하방의 문제를 말했다.
“아, 서울역에 사는 노숙인이야 말할 것도 없지. 희망이 없어.” 노숙인 성식씨는 가장 아래 건강선에 자리를 잡았다.

건강선 기준보다 더 위로 간 사람은 제약회사 사장 돈넘쳐씨 한 사람뿐이었다. 돈이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약회사 사장은 돈이 있기 때문에 건강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건강의 기준선에 설 수 있기 위해선 갖고 있는 돈과 관계없이 살만한 집, 제대로 된 음식,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권리로서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이제 진행자가 가상의 뉴스를 전해준다. 조금 과장된 뉴스이지만, 현실의 변화도 크게 다르지 않은 뉴스들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서 정부는 자동차 배기가스, 공장의 매연에 대한 규제를 없애버렸습니다. 이제 도시의 공기가 더욱 오염되었습니다.‘ 환경오염이라는 상황이 주어졌다. 각 모둠들은 이런 뉴스의 상황이 현실이 되었을 때 자기가 맡은 인물의 건강 상태는 어떻게 변할지 이야기 해보고 다른 건강선으로 이동했다.

노점상을 하는 말숙씨, 노숙을 하는 성식씨는 거리의 공해에 노출되어서 건강이 더 나빠질 것 같다며 아래 건강선으로 이동했다. 더 이상 건강에 희망이 없을 때 가기로 한 가장 아래의 건강선이었다. 도시 공기가 오염되었기 때문에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병식씨는 변화가 없었다. 제약회사 사장 돈넘쳐씨는 건강선이 한 계단 위로 올라갔다. 의외의 결과에 이유를 모둠에 물어보니, 상상력 넘치는 대답을 한다. “사람들이 아파서 제약회사가 돈을 더 많이 벌었어. 그래서 집에 공기청정기를 달고, 공기 좋은 교외에 별장도 구해서 거기서 쉬어서 몸이 더 좋아질 것 같아.”

진행자가 새로운 상황을 제시했다. “약값이 인상하고, 병원비가 인상되었습니다.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돈 있는 사람들에게만 제공될 예정입니다.” 40년간 농사를 지어오면서 열심히 살아왔던 병식씨도 이제 많은 잔병을 감당하기 힘든 형편이 되었다. 의료급여수급권자 순자씨는 말할 것도 없다. 성식씨를 맡은 모둠의 아저씨들은 성식씨는 이제 사망이라고 말했다. 노숙인 모둠을 맡았던 아저씨들은 농담을 하면서도 눈빛은 매우 슬퍼보였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 아닐까. 가상의 뉴스 역시 의료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좋은 신약들을 대단한 자랑처럼 홍보하는 현실의 뉴스들과 다르지 않다.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의 본인부담제를 시행하면서 '도덕적으로 해이'한 수급권자에게 '비용의식'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언제쯤 '인권 의식'을 가지게 될까.

'뭐야. 좀 같이 살자!'

'돈을 잃으면 조금 잃고, 친구를 잃으면 많이 잃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격언처럼 건강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노동환경, 영양, 주거와 같은 일상의 조건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조건들의 차이가, 그런 차이를 만드는 세상의 여러 제도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건강할 기회의 불평등을 만드는 것을 느끼기는 힘들다. 따라서 차별적인 제도의 시행이 자신의 '건강할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건강권 배움터에 모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배움터가 진행되면서 각기 다른 건강선에 자리 잡은 우리에게는 그 차이가 확연히 보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건강선 아래로 차츰 내려가는 동안, 제약회사 사장 돈넘쳐씨는 건강선 위쪽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 값이 오르니 돈을 벌어 더 좋은 약을 먹을 수 있어서 건강이 좋아지기까지 한다.



점점 서로가 서있는 자리가 멀어지면서 여러 가지 불만들이 아래 건강선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저절로 일어났다. “야, 너희들만 올라가는게 어딨냐?” “약값 내려라!” “데모라도 해야겠구만.” 그러나 제약회사 사장을 맡은 모둠에서는 건강선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핀잔을 줬다. “너희가 공부도 안하고, 일도 제대로 안하고, 술마시고 담배피니까 그런 거지. 우리보고 왜 그래.” 건강하지 못한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그렇게 해서 사회적 문제는 감춰 버리는 정부, 기업, 대중매체의 선전과 다름이 없었다.

이동이 다 끝나고, 건강선 아래에 있는 모둠들은 건강하기 위해서 어떤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지 이야기했다. “우리 노숙인은 일단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에서 살기만 하면 좋겠어.” “병원비가 너무 많아. 낮춰야 돼.” 참가자들은 다양한 조건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건강, 그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적절한 주거, 의료서비스, 노동환경 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약으로 그렇게 돈 벌어도 되냐. 약값 내려.” 아픈 사람이라면 가진 돈과 상관없이 치료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알기 힘든 세상에서 우선은 불평등에 불만을 표현하게 된다. 건강선 위에 있는 제약회사 사장이 그 대상이 되었다. “왜 우리보고 그래. 정부보고 약 값 달라고 요구해.” “그래. 돈 많은 사람 세금 더 받아서 우리도 사람답게 살아봐야겠다.” 좀 더 목소리를 함께 모은다면 더 큰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참가자들은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을 어색해하기도 했지만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게 그런 권리가 있음을 조금씩 알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배움터가 끝난 뒤 바뀌는 의료급여제도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고민해보았다.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 건강할 권리를 말하는 것, 그 첫걸음을 건강권 배움터에서 함께 한 사람들과 이뤄보길 기대해본다.

인권오름 제 60 호 [기사입력] 2007년 06월 27일 1: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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