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구_창] 연대 사상의 역사 (3) (끝)

'연대'의 현재의 위기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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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는 인권운동의 주요한 실천양식이자 권리로서 주창되고 있다. 누구나 ‘연대’가 중요하다고 부르짖는다. 그런데 그 연대는 무엇을 목적으로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이며 어떤 정책과 제도로 구체화되는 것인가는 모호하다. 자유, 평등, 연대는 어떻게 조화되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개인주의의 증대, 연대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의 결여 속에서 심화되는 경제의 지구화, 빈부의 극심한 격차 등으로 연대에 대한 숙고와 실천이 더욱 요구되는 때이다.
이런 숙고와 실천에 참고가 될까 하여 유럽에서의 연대사상의 역사를 다룬 책의 내용을 3차례에 걸쳐 요약 소개한다. 필자는 연대의 기초가 되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어디까지를 연대의 대상으로 포괄하며, 개인의 자유와 연대와의 충돌을 어느 정도 고려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연대 사상을 분석하고 있다.
(출처: Steinar Stjernø, Solidarity in Europe: The History of an Idea, Cambridge, 2004)



(1) '연대'의 세 가지 전통
(2) 서유럽 정치에서의 연대 사상
(3) '연대'의 현재의 위기


위 사진:<Solidarity in Europe> 책 표지 [출처] www.cambridge.org
앞에서 유럽 정치에서의 몇 가지 연대 사상을 살펴봤다. 연대 사상은 맑스주의, 수정 사회주의,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 및 국가와 인종에 대한 국수주의 사상(파시즘) 등 다양한 역사적·이데올로기적 전통에서 나왔다. 이들 중 수정 사회주의와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이 유럽 정치에 특히 영향을 미쳤다. 사민당과 기민당은 연대개념을 당의 핵심가치와 정치 언어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정치에서 연대 개념이 성공적으로 구사됐다는 점은 그 대가를 지불하기도 했는데 연대는 그 분명한 의미를 잃어버렸다. 연대 개념의 핵심을 규명하기도 어렵거니와 정당의 다른 핵심 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서 연대의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당정치에서 사용된 연대 개념의 유동성과 느슨함은 지적 불만을 야기했다. 이에 현대 사회학은 연대의 개념을 다시 파고들었다. 개념의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연대는 동질성이 아닌 차이의 수용에 기반하며, 정치적 이타주의와 공감에 기초한 개념으로 확장돼왔다. 이런 종류의 연대 개념이 직면한 현재의 도전들은 무엇인가?

연대의 계급적 기초

노동운동의 연대사상은 노동계급의 파편화를 극복하는데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재산이 없는 남성 임금 노동자를 모델로 한 연대개념은 적어도 1970년대부터 그 중요성을 상실했다. 계급구조는 변해왔다. 산업 노동자의 수는 감소하고 있고 사적 및 공적 서비스 종사자가 늘어나고 있다. 서유럽 사회에 사는 사람들 중 아주 소수만이 자신이 노동계급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은 더욱 파편화되고 다원화됐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었고 저임금 노동과 공적 부문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주자는 노동시장에서 다른 부문을 차지하며, 이들은 노동시장과 사회를 더 이질적으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이질성과 다양성의 증대는 계급 구조를 더욱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노동자가 부문과 집단으로 분화되면서 각자의 경제적 이익을 다른 노동자들과 상관없이 추구하게 됐다. 정치의식으로서의 연대는 소비자 사회의 개인주의와 사적이고 개인적인 만족의 추구에 굴복하게 됐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계급 연대의 소멸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계급은 여전히 사회 정체성의 가장 공통적인 원천이며 복지국가에 대한 태도 유형을 가장 잘 설명하는 유일한 근거라는 주장이 있다.

사회구조와 관련된 또 다른 핵심 문제는 중산층의 중요성의 증대이다. 연대사상이 노동운동에서 발전할 때 노동계급이 이질적이었듯이 중산층도 아주 이질적이다. 어떤 중산층은 노동계급에 가깝고 어떤 중산층은 고도의 자율성과 고용주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또한 계급은 생산과 경제, 착취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자본(교육), 사회적 자본(사회관계), 상징 자본(위신)과도 관련된다. 이런 고도의 차별성이 섞여서 오늘날 연대 현상의 사회적 기초를 구성할 수 있을까? 계급의 개념을 아무리 확장한다 할지라도 연대사상의 발전에 복무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개인주의

개인주의의 증대도 연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19세기의 어떤 학자는 ‘개인이 일종의 종교가 됐다’며 개인주의의 증대가 사회통합과 연대에 끼치는 악영향을 우려했다. 현대의 개인주의 분석자들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시장은 개인의 권리와 책임성을 강조했다는 의미에서 그 출발부터 개인주의를 증진시켰다. 근대성은 자아 설계를 열어젖혔지만 상품 자본주의의 획일화 효과에 더 강력한 영향을 받는 조건하에서 그랬다. 자아설계는 욕망하는 재화의 소유와 인위적으로 구성된 삶의 추구로 변환돼간다. 자아실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에 보편적인 도덕 기준은 그 중요성을 잃게 되고 타인에 대한 관계는 단지 친밀한 관계영역에서만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주의의 증대는 개인들로 하여금 공동선을 위해 집단에 자신을 종속시키고 싶어 하지 아니하게 하고, 현대사회의 집단적 연대의 기초에 심각한 도전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연대는 더 이상 전통이나 물려받은 충성심 또는 계급 정체성에 기초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한 강조돼야 할 점은 개인주의가 반드시 이기주의의 증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또 다른 측면은 ‘내가 유일한 존재이며 궁극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면, 다른 개인들도 마찬가지로 유일하며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서유럽에서 인간 존엄성과 인권의 보편성의 수용은 개인주의와 근대성과 강력하게 결합돼있다. 보편주의와 개인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사민주의와 기독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인간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강조를 연대와 결합시켰다. 증대하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연대를 부식시킨다는 생각은 개인주의와 보편적 인간 존엄성에 대한 사상이 한데 얽혀있다는 점에 대한 이해로 대체돼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연대와 개인의 자율성 및 자아실현이 새롭게 혼합돼 있다. 이들 가치간의 균형과 목적은 사회계급 속에서, 개인들 속에서, 그리고 다양한 맥락과 시대에 따라 다르다. 현대의 개인들은 연대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가질 수도 있고 안가질 수도 있고, 자신의 개인적 삶의 설계에 연대를 통합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소비주의

개인주의의 발전의 뿌리는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최근 수십 년간 증대된 개인주의는 중산층의 성장과 분명 결합돼있다. 중산층과 개인주의의 성장에 부가된 것은 소비주의의 증대이고, 이 셋의 결합이 이 시대 연대에 대한 가장 중대한 위협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계급 연대는 빈곤과 불안에 대한 공통된 경험에서 성장했다. 상호성실과 서비스의 교환, 협력으로 빈곤과 불안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에서 엄청난 경제 성장은 대량 빈곤을 퇴치했고 복지국가의 확장과 사적 소비의 엄청난 증가를 가능하게 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삶의 위험성은 매우 축소됐고, 물질적 재화의 소비와 생활양식의 선택에서의 개인적 선택의 기회가 크게 성장했다. 개인의 자율성 증대의 기반이 마련됐고 집단적 연대의 필요성은 대다수에게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정체성은 소비자로서의 정체성과 크게 결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시간을 덜 보내고 비용이 드는 여가시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생산의 역할과 소비의 역할간의 균형이 무너져왔다. 소득과 구매력의 증가는 시장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가능성을 증대시켰고 개인은 더 강력한 자기 충족감을 발전시킨다. 모든 개인이 타인에게 의존한다는 인식은 줄어들고 집단적 조정에 대한 지지는 부식될 수 있다.

소비자로서의 태도는 공공복지 정책에 대해서도 또한 발전됐다. 집단적인 공공복지는 소비자의 개인적 선호에 맞춰야 하는 소비자 서비스로 보이지 않는다. 개인들은 공공 서비스가 자신의 요구와 선호를 충족시키지 않을 때마다 사적 시장에서 사회적 서비스와 의료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을 권리로서 요구하는 경향성을 더 갖게 됐다. 이런 식으로 소비주의는 새로운 의미의 개인적 자유를 자극했다. 이런 자유는 사적 서비스에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해나 사회의 집단적 이해를 고려하지 않고 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를 선택할 자유를 주장하게 됐다. 집단적 연대와 개인의 자유간의 딜레마가 지속적으로 현저해지고 있다.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는 공공 서비스의 지도자들이 선전하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돼왔다. 이들은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고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의 생산을 지향한다. 이런 경향성의 문제는 보건과 복지 서비스의 민영화, 시장 원칙과 경쟁의 수용이다. 그로 인해 이전에 연대에 기반을 두었던 공적 제도가 개인의 구매력에 기반을 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복지국가는 연대를 해치는가?

연대와 복지국가의 관계는 무엇인가? 오늘날 복지국가는 제도화된 연대의 표현으로 간주되고, 많은 이론가들은 개인주의와 소비주의가 연대를 부식시킬 것을 염려한다. 하지만 현재 상당한 증거들을 볼 때 후퇴와 축소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는 살아남았고, 복지국가의 위기는 더 이상 유행하는 연구 주제가 아닌 것 같다. 사회조사 결과들은 복지국가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여전히 확고하며 많은 국가의 시민들의 태도가 복지국가의 정당성을 증명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개인주의의 증대가 제도화된 연대를 부식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치는 못하다.

1970년대 이후 복지국가의 일반적 경향성은 보편성과 평등, 시민권이라는 점에서 약화되고 있다. 선별성, 사적 전달, 개인의 책임성과 노동 참여가 강화돼왔다. 게다가 복지에 대한 여론은 흔히 모순적이며 평등은 지배적인 가치가 아니다.

근본적인 질문은 복지국가가 어느 정도로 연대를 배양하느냐 아니면 연대를 해치느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대조적인 답변이 있다. 한 가지 답변은 잘 발전된 보편적인 복지국가가 공동체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답변은 공동체와 연대의 전제조건인 공통의 책임성을 복지국가가 저해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재분배와 사회적 서비스의 제공에 대한 공적 책임성이 공동체의 궁핍한 구성원을 돌볼 도덕적 책임성을 시민사회로부터 제거한다는 것이다. 즉 원래는 연대에 기반을 두어야 할 제도가 오히려 그런 제도의 기반이 되는 도덕적 기초를 해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도덕적인 타인과의 관계맺기와 연대에 기초해야할 행위가 제도화된 유사 연대가 돼버리면서, 타인의 상황에 대한 개인의 관계가 그 도덕적 성격을 잃어버리고 세금을 지불하는 관료적인 행위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은 연대와 복지국가의 관계가 복잡한 것임을 보여준다. 현대의 복지국가는 위험과 자원을 공유하려는 시민의 준비됨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시민들은 복지국가를 대규모 보험회사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와 소비주의가 증대되고 개인 저축의 가능성이 강화된다고 해서 반드시 복지국가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견해가 우세할수록, 복지에서의 보편주의, 재분배, 연대가 손상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노동계급과 중산층의 동맹이 복지국가의 연대를 방어할 수 있을지라도 그런 방어가 3세계와 이주자, 억압받고 차별받는 집단에 대한 연대를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모호한 현상의 지구화

오늘날 연대에 대한 주요 도전에서 지구화의 이중적 성격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차 대전의 발발은 국제적 노동자 연대의 사상의 패배를 보여줬다. 1차 대전 후에 ‘민족’은 연대를 말하는 틀이 됐고, 2차 대전 후에는 민족적 복지 국가가 수립되고 연대의 언어로 정당화됐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연대 담론은 민족국가가 국가 장치와 의사결정을 통해 자기 영토를 통제하고 일종의 재분배와 고용정책을 가진 경제정책을 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했다. 오늘날 중심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로 이런 생각들이 지구화시대에도 유효할 수 있느냐이다.

연대 사상은 언제나 시장의 확장과 동반된 사회적 유대의 해체에 대한 대응으로서 시장의 팽창에 대한 우려를 표시해왔다. 지구화는 국경의 제거 내지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이 국제적인 자본과 투자, 재화와 서비스의 자유로운 유통을 허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화는 시장의 더 큰 확장을 의미하며 연대 사상에 대한 위협이 된다. 초국적 기업은 일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핵심 행위자가 됐다. 노동조합과 피고용인의 전략적 입지는 약화됐고, 자본소유자와 투자가들의 입지는 강화됐다. 각 서유럽 국가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자들은 이런 새로운 경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높은 임금을 받는 국가의 노동자들은 저임금 국가들의 노동자들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게 되고 국경을 초월한 연대는 더욱 어렵게 됐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구화가 연대의 전통적 형태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구화는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다. 또한 사회문제가 지구화된다. 기구온난화와 대기 오염은 국경을 존중하지 않는다. 전쟁과 자연재해는 타국의 안전, 노동시장, 문화와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 테러는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유전자 조작된 식품은 세계 어느 곳에나 쉽게 확산될 수 있다. 여행의 증가는 전염병과 질병을 쉽게 확산시킨다. 민족국가의 힘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지구화의 영향은 민족국가가 자국 시민의 안전과 복지를 자기 힘만으로는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셋째, 지구화는 국제적 및 초국적 조직과 네트워크의 성장이다. 1976년부터 1995년까지 1천 6백여 개의 국제 조약이 비준됐고, 이중 백여 개가 새로운 국제기구를 탄생시켰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4천개가 넘는 국제회의가 매년 열리고 있다. 이러한 국제조직과 회의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대다수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국제조직은 부유한 국가들이 지배한다. 이들 기구가 국제 연대를 대표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국제기구들은 정치투쟁과 공적담론의 장이며 새로운 동맹의 발전을 위한 가능성을 창조한다.

넷째, 지구화는 국제법과 규제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제법과 조약은 무역, 운송, 통신을 규제하고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인정을 요구한다. 민족국가는 더 이상 입법의 주역이 아니다. 국제조직의 수립, 협상, 조약, 지역 및 국제 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법이 발전된다. 이런 국제법의 주요 특성은 새롭고 긍정적인 국제 질서를 대표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헤게모니의 표현에 복무한다는 시각이 있다.

다섯째, 지구화의 또 다른 측면은 국제적 자원조직, 네트워크, 협력의 강화이다. 이들의 연대 개념은 시장과 산업 자본주의의 성장에 동반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추구한다. 이들 운동은 기존의 정당이 충족시키지 못했던 도전들에 대한 대응을 발전시켰다.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핵무장 해제, 환경에 대한 위협에 맞서기, 성적 차별과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반대이다. 여기서 던져야 하는 중요한 질문은 어느 정도로 사회운동에서 연대가 정착할 수 있느냐이다. 사회운동의 제1의 물결(노동운동과 교회운동), 제2의 물결(60년대와 70년대의 다양한 운동), 그리고 제3의 물결(지구화에 대한 우려와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에서 연대는 무엇인가?

노동운동은 지구화가 매우 심각한 위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노동운동은 국제적 및 지역적 차원에서 공동의 대응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사회대중운동의 성격을 갖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형태의 국제연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정체성 운동은 노동운동보다는 다소 일관된 공통의 이데올로기가 부족하다. 전체 사회의 보편적 이해를 대표한다고 주장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지구화 시대의 지구적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운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국제연대와는 다른 형태의 국경을 초월하는 새로운 연대는 가능한가? 기존 정당과 조직에 대한 활동가들의 회의적 태도가 일관성 있고 광범위한 정치 동맹 수립을 어렵게 하지는 않는가?

지구적 시민자격 - 지구적 윤리?

복잡다기한 현 세계에서 연대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연대가 타인에 대한 태도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권리와 의무로 제도화돼야 한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논쟁하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공적인 장의 형성이 동반돼야 국제법의 성장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런 공적인 장의 형성은 지구적 연대의 필수적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선 공적인 논쟁과 의사결정권한이 연결되지 않은 것이 국제영역이다.

연대의 지구화는 지구적 시민자격이라는 맥락에서 개인의 권리와 의무의 완전한 발전을 포함해야 한다. 지구적 시민으로 자신을 간주하는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 선호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지구적 윤리의 핵심은 지구적 공동체에 대한 책임성을 갖는 것이고, 그런 책임성은 모든 인간이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신념에 기초해야 한다. 지구적 시민은 자신의 국민국가에 대한 애착과 지구적 공동체에 대한 애착 사이에 의식적이고 세심한 균형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연대는 민주적 참여와 법의 지배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포함해야 한다. 이런 체계를 혹자는 세계적 민주주의의 수립이라 했다. 세계적 민주주의란 국제적 차원에서의 공평한 법의 집행, 더 큰 투명성과 책임성, 지구적 거버넌스의 민주성, 지방·일국적·지역적 및 국제적 차원 모두에서의 보다 강력하고 유능한 거버넌스를 의미한다. 이런 체계는 세계적인 가치나 윤리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데 여기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은 지구적 사회정의, 민주주의, 보편적 인권, 법의 지배, 인간안보 및 초국적 연대이다.

혹자는 이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과연 지구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윤리만으로 될까, 모든 인간의 동등한 가치를 인정하고 그런 원칙과 가치에 기반을 둔 국제관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될까?

물론 문제는 있다. 윤리만으로는 지구적 연대의 굳건한 기초를 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제법 체계는 서구의 경제력과 협상력의 결과이다. 의사소통의 수단은 불균등하게 분배돼있고 세계의 다수가 배제돼 있다. 경제, 법률, 정치의 지구화는 서유럽 정부들이 자국의 목적을 추구할 의지나 능력을 상실할 지점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개인주의와 이방인에 대한 공포는 이 책에서 연구된 유럽 국가들의 성격이다. 이런 점들은 연대가 당장 발전할 것이라는 낙관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의 종말에 와있지 않고, 역사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 현재에 근거한 미래 예측은 거의 언제나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는 점을 기억하자.
덧붙이는 글
류은숙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67 호 [기사입력] 2007년 08월 15일 1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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