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구_창] 연대 사상의 역사 (1)

'연대' 의 세 가지 전통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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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는 인권운동의 주요한 실천양식이자 권리로서 주창되고 있다. 누구나 ‘연대’가 중요하다고 부르짖는다. 그런데 그 연대는 무엇을 목적으로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이며 어떤 정책과 제도로 구체화되는 것인가는 모호하다. 자유, 평등, 연대는 어떻게 조화되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개인주의의 증대, 연대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의 결여 속에서 심화되는 경제의 지구화, 빈부의 극심한 격차 등으로 연대에 대한 숙고와 실천이 더욱 요구되는 때이다.
이런 숙고와 실천에 참고가 될까 하여 유럽에서의 연대사상의 역사를 다룬 책의 내용을 3차례에 걸쳐 요약 소개한다. 필자는 연대의 기초가 되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어디까지를 연대의 대상으로 포괄하며, 개인의 자유와 연대와의 충돌을 어느 정도 고려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연대 사상을 분석하고 있다.
(출처: Steinar Stjernø, Solidarity in Europe: The History of an Idea, Cambridge, 2004)



(1) '연대'의 세 가지 전통
(2) 서유럽 정치에서의 연대 사상
(3) '연대'의 현재의 위기


‘연대’를 연구하는 이유

19세기 초의 사회학자들은 ‘일체감’과 ‘사회적 유대’라는 전통적 감정이 근대사회를 낳는 과정에서 찢어졌다는 점을 목격하고 사회적 결집과 통합의 수단으로 연대를 생각했다. 국제노동운동은 노동자 계급의 연대를 사회적·정치적 적들에 대한 슬로건이자 무기로 만들었다. 복지국가 지지자들은 연대를 위한 투쟁의 결과이자 연대의 제도적 표현으로 복지를 바라봤다.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과 프로테스탄트 사회윤리에서는 자선보다 점차 연대가 더 중요하게 됐다. 이처럼 연대는 사회이론과 근대정치 담론의 핵심개념이며 사회정책연구에서도 중요하다.

위 사진:<Solidarity in Europe> 책 표지 <출처 www.cambridge.org>
문제는 연대의 개념이 사회이론과 정책 둘 다에서 상이한 의미를 갖고 적용된다는 것이다. 연대란 투쟁하거나 결핍상태에 있는 이들에 대한 기여로서, 또는 국가가 조직하는 세금과 재분배를 통해 타인과 자원을 공유하려는 각오로서, 또는 권리의 수립을 통해 집단적 행동을 제도화하려는 의지와 행위에 동참할 준비가 기꺼이 되어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많은 가능한 정의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연대는 때때로 전혀 정의될 수 없는 불명료한 개념으로서 사용된다. ‘연대’의 사용은 현실 세계에서 연대의 현상이 사라지거나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정치적 수사로 위장될 수 있다. 사회이론과 정치 담론에서의 이러한 경향 때문에 다양한 견해, 정의, 함의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주의의 시대에, 연대의 사상은 위협받고 있고 방어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자본주의의 승리와 시장, 시장 이데올로기의 확산은 집단적 조정과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사상들을 보다 불확실한 것으로 만든다. 서유럽의 점증하는 윤리적 다원성, 외국인 혐오의 증가, 빈부의 극심한 격차는 연대를 뜨거운 지구적 이슈로 만든다. 특히 세상에서 자신 만의 방식을 선택하고 주조할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강조는 연대의 전통적 가치에 도전하고 있다. 경제의 지구화는 일종의 연대를 보장할 수 있는 정치적 및 법적 제도의 결여로 우리의 관심을 쏠리게 한다. 현대 사회에서 연대의 실천에 대한 이러한 도전들은 그 자체가 연대의 개념을 더 면밀한 검토의 대상으로 삼을만한 이유이다.

‘연대’의 세가지 전통

사람들이 서로 우호와 서비스를 교환하는 것은 일상의 관행이었고, ‘내가 너를 도우면, 도움이 필요할 때 네가 나를 도울 것’이란 생각의 실천이었다. 이처럼 상호적으로 서로를 지원할 의무는 산업화이전 사회에 존재했고, 이것은 공통된 정체성과 일부사람들과의 동질감, 타인에 대한 이질감에 기초한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연대의 현상은 그 사상이 형성되기 전에 존재했고 사상은 용어가 퍼지기 전에 존재했다. ‘연대’라는 용어는 그것의 근대적 의미가 발전되기 전에 일반적으로 사용됐다.

기독교의 우애(또는 형제애, fraternity) 사상은 기독교의 초기 시대에 발전됐고, 기독교도들의 공동체의 발전을 가족의 밀접한 관계와 동일시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우애 또는 형제애(fraternity or brotherhood)라는 정치사상은 프랑스 혁명 동안 발전했다. 형제애의 감정은 혁명가들 간에 평등을 깨닫는 수단이었고, 정치 공동체가 공동으로 가져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또한 프랑스는 연대라는 용어의 탄생지였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사회철학자들은 혁명의 요동 속에서 사회정치적 불안에 대해 반추했다. 동시에 그들은 자본주의의 초기 발전과 증가하는 자유주의의 영향을 목격했다. 이런 경험들로 인해 프랑스 사회 철학자들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사회적 융합과 결합할 방법을 찾게 됐다. 여기서, 연대의 개념은 하나의 해결책으로 보였다.

연대의 개념은 넓고 포용적인 것이었고, 상실한 사회적 통합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했다. 맑시즘이 노동운동에 일찍이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 독일에서는, 연대의 개념이 나중에 발전했고, 노동계급과 노동운동에서의 결집과 단결의 필요성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뒀다. 여기서의 연대 사상은 오직 노동자를 언급했다는 점에서는 보다 제한적인 것이었고, 국경을 넘어선 만국의 노동자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에서는 보다 포괄적인 것이었다. 이 연대사상은 통합이 목적이 아니라 갈등을 내포한 것이었고 단결뿐만 아니라 불화(계급 갈등)를 내포한 것이었다. 19세기 하반기에,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은 연대의 제3의 전통을 불러일으켰다. 프로테스탄티즘 내에서는 연대의 사상 발전이 2차 대전 후에야 발생했다. 이처럼 고전 사회학, 사회주의 이론, 기독교 사회윤리에서 유럽의 연대 사상의 세 가지 전통이 엿보인다.

고전 사회학 이론에서의 ‘연대’

푸리에, 르루, 꽁트, 뒤르케임, 베버 등 사회학자들의 다양한 이론이 소개된다. 이 글에서 각각의 이론을 상세히 살펴볼 수는 없기에, ‘연대’ 사상에 대한 필자의 분석만을 간략히 소개한다.

다양한 사상가들간에 나타나는 연대 개념의 차이의 핵심은 사회통합과 조화에 기여하는 규범으로서 연대를 이해하느냐 아니면 특수한 집단 구성원간의 관계로서 연대를 이해하느냐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사회의 다양한 부분을 한데 묶는 규범과 가치가 존재하는 결과가 연대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일단의 사람들을 한데 묶는 대인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 경우에 연대는 한편으론 포함하고 한편으론 배제하는 힘이다. 따라서 연대는 ‘우리’를 통합하기도 하지만 ‘우리’에 속하는 사람과 ‘그들’에 속하는 사람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때 사람들을 한데 묶는 접착제가 무엇인가에 따라 개념이 구분될 수도 있다. 이런 접착제는 자기 이익의 합리적인 추구, ‘하나’라는 정서적 감정, 윤리적 의무의 감정 또는 이들 요소의 일부 또는 전부의 혼합일 수 있다.

고전 사회이론에서의 연대 사상은 사회에서의 조화와 사회통합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연대 사상을 이해한 측면이 강했다. 자본주의의 출현과 그와 결합된 문제점들에 맞닥뜨린 이들 사상가들은 또다른 사회 폭동이나 대격변을 야기함이 없는 개량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이들의 연대 개념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요소들을 갖고 있었던 과거 사회에 대한 향수가 짙은 반면, 노동운동에서 연대의 개념을 특화시키려는 강력한 미래 지향성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우려한 점은 집단, 조직, 공동체와 사회가 부과하는 집단적 연대의 요구가 개인의 자유와의 관계에서 일으키는 딜레마이다. 개인을 집단에 통합시키는 강력한 사회적 유대가 개인주의와 충돌하리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개인의 자유가 포기돼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학자에 따라 “도덕적 개인주의”나 “인류애의 종교”라는 식으로 개인을 사회와 결속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추구했지만 그것이 이기주의를 억제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는 못했다.

사회주의 정치이론에서의 ‘연대’

필자는 사회주의 이론에서 3가지로 갈라진 연대개념이 있다고 보고, 이를 고전 맑스주의, 레닌주의, 고전 사회민주주의 연대개념이라 이름 붙이고 있다.

사회주의 연대사상은 고전 사회학과는 달리 강력한 유대의 지역 공동체가 있었던 전근대 사회를 언급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연대 개념은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자와 투사들의 경험을 반영한다. 연대의 중요성은 당면한 긴급성이다. 적에 의한 패배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함께 결합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고, 바람직한 미래를 성취하기 위한 투쟁에서 연대는 중요한 도구이다. 이들 개념은 연대의 기초가 무엇이냐, 연대에서의 윤리의 역할, 개인의 자유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아주 다르다. 따라서 사회주의 연대개념을 고려할 때는 이들 개념이 출현하는 분명한 담론에 한정해서 고려하는 것이 적합하다.

고전 맑스주의의 연대 개념은 노동계급의 공통된 이해에 기반해 있다. 자본주의는 사회적 유대와 관계를 파괴하는 것과 동시에 노동자를 서로에게 더 밀접하게 하는 새로운 사회조건을 창조했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생산과정 그 자체의 메커니즘에 의해 훈련되고 통일되고 조직화된다. 노동자들은 미래에 대한 똑같은 전망에 직면하고, 이 전망은 개인적 탈출의 희망을 주지 않는다. 근대의 통신수단은 노동자간의 더 많은 접촉과 국경을 넘는 노동자 조직의 설립과 선동을 쉽게 만든다. 이런 모든 것들이 노동계급 연대의 전제조건을 창조했다. 자본가들의 경쟁과 이윤을 최대화하려는 그들의 바람은 노동자의 생활조건과 이해를 더욱더 평등하게 만든다. 상이한 유형의 노동간의 차이는 제거되고 임금은 똑같이 낮은 수준으로 줄어든다. 연대는 이처럼 높은 수준의 동질성을 가진 사회구조로부터 발생한다.

위 사진:노동자대회에 모인 노동자들. 최근 노동운동에서도 '연대'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모색이 제기되고 있다. <출처 taxi.inochong.org>

맑스는 갈등하는 계급 이해를 벗어난 정서적 순화라는 이유로 형제애의 개념을 조롱한다. 그는 연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공동체, 결사, 단결’ 등을 주로 사용한다. 1848년의 공산당 선언에서는 형제애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그 유명하고 간결한 구호가 등장한다.

맑스는 두 개의 상이한 연대사상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계급의 연대로 알려진 것이다. 이를 주로 ‘단결’의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공동체는 진짜일 수가 없으며, 노동계급의 일상의 투쟁 그 자체로는 진정한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집단의 타 집단에 의한 착취가 특징인 사회에선 사회적 연대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고, 연대는 구체적인 경제적 및 사회적 구조를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연대인데, 이것은 ‘이상적 연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개인들의 진정한 공동체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철폐된 사회에서 사람들이 개인들로서 자유롭게 한 데 결합할 때에만 진정한 개인들의 공동체가 출현할 수 있다.

레닌주의 연대 개념의 기초는 고전 맑스주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집단에 대한 강조는 매우 강력하며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개인의 자유는 아주 경멸적인 이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의 자유는 사유재산을 구체화하기 위해 고립된 개인주의자가 가지는 자유이고, 타인에게 적대적인 자유이기에, 자본주의에서 연대사상과 상호의존성은 쓸데없는 ‘규범적 사상’이 된다. 진정한 연대와 진정한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희생해야 한다.

고전 사민주의 연대 개념의 대표적인 것은 수정주의자 베른슈타인의 연대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경제위기와 후퇴를 견뎌냈고 자본주의의 일촉즉발의 붕괴 전망은 전혀 없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사망을 더 기다릴 수 없으며 구체적인 개혁정책을 개발해야 하고, 의회에서 새로운 다수를 수립하기 위해 여타 계급 및 집단과 동맹을 추구해야 한다. 사회주의는 장기간의 목적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는 레닌주의가 주장한 것처럼 일시적으로 희생될 수는 없다.

사민주의 윤리는 평등의 사상, 공동체의 사상 또는 연대, 자유 또는 자율성의 사상을 핵심으로 하며 이들은 서로에 대해 균형을 이뤄야만 한다. 동료노동자와 단결함으로써 노동조합에 노동자의 힘을 모음으로써 노동자들이 고용주에 대한 의존성을 자발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때, 연대는 발전된다. 이런 자발적 행동이 윤리적 헌신의 표현이다. 한 데 속한다는 감정은 강화되고 잘 발전된 연대에 대한 이해로 성장한다. 이런 연대는 노동운동 내에서 가장 강력한 지적 요인이 된다. 연대의 감정은 다른 어떤 집단에서보다 노동운동에서 더 강력하며, 노동운동에서 연대의 실천을 필요로 하는 식견보다 더 응집력 있는 원칙이나 사상이란 없다. 사회법의 어떤 규범이나 원칙도 연대 사상의 구속력에 비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연대는 고전적 맑스주의와 달리 노동계급만이 아닌 여타 계급과 집단의 이해를 포함한다. 이들 계급과 집단간의 차이를 수용하며 포함된 사람들 간에 공동체의 감정을 창조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가 높이 평가되기 때문에 집단에 대한 강조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종교에서의 '연대‘

종교는 국민이나 계급이 존재하기 훨씬 전에 사람들간의 유대였다. 계급 연대의 사상이 발전되자, 이 발전은 기존의 종교에 대한 충성심과 갈등하게 됐다. 가톨릭의 연대 개념은 두 개의 상이한 관심에서 나왔다. 산업사회에서의 사회통합에 대한 염려, 그리고 1950년대에 시작하여 1961년에 교황 회칙에 개념이 도입된 제3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루터주의와 일반적인 프로테스탄트는 연대의 사상을 3세계의 상황에 대한 우려와 연관시켰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사회윤리에서의 연대 사상은 다른 곳에서의 발전보다 뒤쳐졌다. 그 이유에 대한 한 가지 가설은 연대의 개념이 노동운동과 밀접하고 계급투쟁 사상과 결합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온정주의적인 종교의 태도는 계급 갈등이나 계급투쟁이 아닌 사회적 자선이나 협력, 일종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강조했다. 다른 한편으론 3세계에서의 교회의 급진화에 제동을 걸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종교가 연대 개념을 최종적으로 채택할 때는 서유럽의 크고 영향력 있는 정당 대부분에서 그 개념이 더 광의의 보다 이타적인 개념으로 변형됐을 때라고 본다.

오늘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연대 사상의 차이는 여전히 몇 가지 구분되기는 하지만 별반 크지 않다. 연대 사상의 기초는 같다. 인간은 신의 이미지로 창조됐고, 모든 인간은 신의 눈으로 볼 때 평등하다는 것이다. 이웃사랑에 대한 요구와 타인에 대한 기독교인의 섬김의 의무는 연대를 표현하는 공통된 기초이다. 프로테스탄트는 다른 인간에 대한 섬김을 기독교인의 의무로 자주 언급한다. 가톨릭의 개념은 사회통합과 조화에 더 중요성을 부과한다. 가톨릭의 개념은 계급의 경계, 부자와 빈민, 부국과 빈국간을 초월한 연대의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회통합의 강조로부터 가톨릭의 연대 사상은 논리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종류의 것이 된다. 계급의 경계를 초월하는 것, 모든 사회적 및 경제적 경계와 구분을 초월하는 모든 계급의 인민을 포괄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용주와 피고용인, 노동자와 중산층, 여성과 남성을 협력과 상호이해가 지배하는 공동체로 통합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톨릭의 연대는 맑스주의와 사민주의 개념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집단적 지향성은 맑스주의와 사민주의 개념보다 약하다. 집단적 성격은 개인에 대한 강조와 세심하게 균형을 이룬다. 가톨릭의 인격주의(personalism)는 사람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사람이 된다는 생각으로, 개인과 사회간의 관계를 논점으로 만들며, 연대의 집단적 성격을 줄인다. 또한 국가에는 필수적이지만 ‘보조적’인 역할을 요구하며 자원조직의 활동을 강조한다. 국가가 직접 나서지 말고 자원조직의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연대에 관한 모든 개념은 두가지 필수적인 가치를 지적하고 있다. 개인은 어느 정도 타인과 자신을 동일시해야하고, 개인과 (적어도 일부의) 타인 간에는 공동체의 감정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일시의 힘과 포괄성의 정도는 매우 다르며, 사상의 기초, 추구하는 목적, 집단적 지향성의 정도에서도 차이가 있다.

이제 서유럽의 다양한 정치 정당에서의 연대 개념의 발전을 연구하기 위해 정치의 세계로 들어갈 차례다. 어떻게, 언제, 왜 이들 연대 사상이 사민당과 기독교 민주당의 제도화된 이데올로기에 반영되었나?

이어질 내용:
서유럽 정치에서의 연대 사상
‘연대’의 현재의 위기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59 호 [기사입력] 2007년 06월 19일 17: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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