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구_창] 평화에 대한 인권(Douglas Roche, The Human Right to Peace, 2003, Novalis)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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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권무대에서 널리 활약한 프랑스 법학자 카렐 바삭은 1977년 세계인권선언 30주년 기념연설에서 국제인권의 발전을 요약하며 3세대 인권을 언급했다. 즉, 1세대 인권은 자유의 가치를, 2세대 인권은 평등을 강조한다면 3세대 인권은 우애에 초점을 두며, ‘연대에 대한 권리’라는 특유한 표현을 쓸 수 있다. 카렐 바삭은 3세대 인권으로 발전권, 평화권, 환경권, 인류의 공동유산에 대한 소유권, 커뮤니케이션의 권리를 언급했다. 혹자는 여기에 인도주의적 원조와 재난 구조를 받을 권리, 민족 자결권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연대권은 구체적 의미가 없고 구체적 의무도 없다’, ‘따라서 평화권 같은 건 없다’, ‘1·2세대 인권과 달리 3세대 인권은 어떤 법적 조약으로도 공식화된 바 없다’, ‘평화권은 오직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며 인권실현의 수단이나 과정을 권리 자체와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반론이 거세다.

위 사진:<평화에 대한 인권> 책 표지
오늘 살펴볼 『평화에 대한 인권』(출처: Douglas Roche, The Human Right to Peace, 2003, Novalis)은 이런 비판에 대한 답으로 평화권을 “인류의 신성한 권리”라고 주장한다. 필자는 수세기 동안 국제법과 국제관계의 주요 목적으로 일컬어진 것이 평화임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국제무력분쟁과 그로 인한 엄청난 규모의 사망, 파괴, 고통은 현세기에 발생한 것만으로도 정당한 평화를 성취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이 실패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목표와 현실간의 엄청난 격차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그 격차 때문에 국제사회는 평화에 대한 인권이 존재한다고 엄숙하게 선언해왔다. 평화권은 2차 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건설적인 평화 관련 노력의 구현이 이론적 용어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평화권을 위한 국제적 노력

필자는 평화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 기본 규정: 유엔헌장 전문 및 1조, 55조, 세계인권선언 28조
‧ 1978년 유엔총회: 평화로운 삶을 위한 사회 준비에 관한 선언 - 국내 및 국제 정책이 평화로운 삶의 성취를 지향할 것. 특히 젊은 세대에 관하여 그리할 것을 강조.
‧ 1981년 아프리카 인간과 인민의 권리에 관한 헌장 - 모든 인류는 국가적 및 국제적 평화와 안보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 1984년 유엔총회: 평화에 대한 인류의 권리선언 - 우리 지구상의 인류에게 평화에 대한 신성한 권리가 있음을 엄숙히 선언한다. 평화권의 행사는 전쟁위협의 제거를 요구한다. 평화권은 여타 인권의 전제조건이다. 인권‧발전‧평화는 서로 고립해서 존재할 수 없는 조건이다. 평화 없는 인권은 환상이다.
‧ 1997년 유네스코 사무총장: 평화에 대한 인권 선언 - 갈등의 근본원인, 즉 구조적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조기단계에서 진화에 나설 때 분쟁을 피할 수 있다. 전쟁의 문화로부터 평화의 문화로의 변화가 우선 필요하다. 국제사회는 전쟁비용과 평화 비용 두 개에 동시적으로 몰두할 수는 없다. 이 선언과 기존 선언의 차이점은 평화권을 인권의 전제조건으로 확인했을 뿐 아니라 성취를 위한 전략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선언이 요구하는 두 개의 전략은 1) 빈곤, 환경파괴, 국제정의 등과 같은 긴급한 문제에 대해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2) 평화와 정의의 가치를 이해하고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배양하기 위한 대대적인 교육 운동이다.
‧ 1997년 오슬로 기초 선언 - 평화권을 세 개의 연관된 요소로 나누었다.
1) 인권으로서의 평화: 모든 인간은 인간성에 내재된 평화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어떤 종류의 전쟁과 폭력도 평화에 대한 인권과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2) 의무로서의 평화: 모든 지구의 행위자들은 평화의 유지와 건설에 기여할 의무, 무력분쟁 방지와 폭력 예방의 의무를 갖는다.
3) 평화의 문화: 평화권이 성취될 수 있는 수단으로서 평화의 문화, 교육, 대화, 윤리적 및 민주적 이상을 통해 인류의 마음에 평화의 뿌리를 추구하는 전략
‧ 2003년 유엔총회: 무력분쟁 방지에 대한 결의안 채택

실천의 장애물

위에서 열거된 국제사회의 노력에는 큰 장애물이 있다. 필자는 주요 강대국들의 지지 부족과 저지를 지적한다. 그런 사례는 아주 많다.

1984년 유엔의 ‘평화에 대한 인류의 권리선언’은 핵전쟁의 위협 제거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서구 국가들이 다수 기권(34표 기권)하여 빛을 잃었다. 1997년의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평화권 제안에 대해서는 사무총장이 월권을 했다고 비난하며 평화권에 대한 공격과 기권표시로 대응했다. 이에 대해 남반구 국가들은 무기 산업을 보호하길 원하는 북반구 국가들을 비판했다. 결국 합의 도달에 실패했고 평화권에 대한 회의주의는 계속됐다. 1999년 ‘평화의 문화를 위한 행동 프로그램’에 관한 비공식 유엔 토론에서 미국 대표는 “평화는 인권의 범주로 고양돼선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을 시작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 발언했다. 2002년 평화권의 증진을 요구하는 결의안은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과 나토(NATO)의 동유럽 신규 가입국들의 압도적인 반대표(50표)로 작동할 수 없었다. 평화권을 인권 무대가 아닌 국제관계의 다른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위 사진:인도의 바그와티(P.N.Bhagwati) 전 대법관 <출처; usinfo.org>
인도의 전 대법관(P.N.Bhagwati)은 평화권의 주요기능을 “평화적 분쟁해결을 통해, 국제관계에서의 폭력 사용 또는 위협의 금지를 통해, 핵무기의 제조·사용·배치의 금지를 통해, 그리고 전면적 군축을 통해 생명권을 증진하고 보장하는 것”이라 했다. 이 말에 담긴 하나하나의 요소, 즉 군축, 핵무기의 금지 등이 거센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문화

오늘날 98개국의 1천여 기업이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는 6억3천9백만여 소형무기를 생산하고 있다. 불법 무기 교역은 이 숫자를 넘는다. 최대 무기 거래상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즉 세계의 강대국들이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필자는 군산복합체의 탐욕 등 여러 배경 요인들 중에서 ‘전쟁의 문화’의 지배를 우선으로 꼽는다.

필자는 군국주의의 동의어로 ‘전쟁의 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 의미는 갈등 해결에서 군사적 가치가 고양되는 것이다. 그 결과 공격적인 군비태세와 군부의 지배적인 정치적 지위가 초래된다. 전쟁과 대량 폭력은 고의적인 정치적 의사결정의 결과이며, 전쟁은 적을 필요로 한다. 또한 전쟁은 군비와 군인, 정보의 통제를 요구한다. 이것은 환경파괴, 빈곤, 민주주의와 인권의 파괴를 야기한다.

전쟁의 문화의 심연에 자리한 생각은 폭력의 뿌리가 인간 본성의 타고난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인간은 언제나 전쟁을 해야 하고, 기껏 잘해봤자 최악의 폭력 발산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뿐이다. 필자는 이 논리를 부정하며 인간은 유전적으로 전쟁을 위해 프로그램화되어 있지도 않고, 인간의 본성에 폭력을 양산하는 타고난 생물학적 요소 같은 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결국 전쟁을 만들어낸 종(인류)은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역설한다.

평화의 문화

평화의 문화란 “생명, 자유, 정의, 연대, 관용, 인권, 그리고 남녀의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들에 기반한 문화”를 말한다. 이 목록을 더 풀어서 얘기하면 다음과 같다.

· 생명, 존엄성, 인권에 대한 존중
· 폭력의 거부
· 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
· 민주주의, 자유, 정의, 연대, 관용의 원칙을 지지하고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
· 인종·종교·문화·사회 집단과 국가들 간의 상호소통과 이해

전쟁의 문화와 평화의 문화는 다음과 같이 대조된다.

전쟁의 문화 ;
· 적의 이미지
· 군비증강과 군대
· 권위주의적 지배
· 비밀주의와 선전
· (구조적·물리적) 폭력
· 남성의 지배
· 전쟁을 위한 교육
· 약자착취, 환경착취

평화의 문화 ;
· 이해, 관용, 연대
· 군축
· 보편적이고 완전한 민주적 참여
· 정보와 지식의 자유로운 흐름
· 모든 인권에 대한 존중
· 여성과 남성간의 평등
· 평화의 문화를 위한 교육
· 지속가능한 경제·사회적 발전

위 사진:평화는 그냥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평화의 문화 실현은 매일 매일의 헌신과 책임을 요구한다.<출처; mormonstories.org>

평화의 문화는 전쟁과 폭력을 향한 문화적 경향을 대화, 존중, 공정함이 지배하는 사회적 관계로 바꾸는 것이다. 평화의 문화는 이러한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배양하기 위하여 교육을 필수적인 도구로 사용한다. 그 교육의 내용을 이루는 대표적인 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2000년에 기초한 평화의 문화 건설을 위한 실천행동에 관한 선언이다.

‧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 차별이나 편견 없이 각 사람의 생명과 존엄성을 존중
‧ 폭력의 거부: 적극적인 비폭력 실천, 모든 형태의 폭력에 대한 거부, 특히 가장 착취당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향한 폭력, 아동과 청소년을 향한 폭력을 포함하여 신체적·성적·심리적·경제적·사회적 폭력 및 모든 형태의 폭력에 대한 거부
‧ 타인과의 공유: 배제, 불의, 정치·경제적 억압을 끝내기 위하여 아낌없는 정신으로 내 시간과 물적 자원을 공유하기
‧ 이해하기 위해 귀 기울이기: 표현의 자유와 문화적 다양성의 사수, 언제나 대화를 우선시하고 광신, 비방, 타인에 대한 배제에 빠지지 않고 귀 기울이기
‧ 지구의 보존: 책임성 있는 소비자의 태도 증진, 모든 형태의 생명을 존중하고 지구상의 자연 균형을 보존하는 발전의 실천
‧ 연대를 재발견하기: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함께 창조하기 위하여 여성의 완전한 참여와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기

이러한 평화의 문화 실현은 매일 매일의 헌신을 요구한다. 우리가 이런 책임성을 움켜쥘 때, 평화에 대한 인권은 보장될 것이다.
인권오름 제 55 호 [기사입력] 2007년 05월 22일 16:5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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