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척이다] 당신도 매니저?

박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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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이 끝났다. 여성노동자들은 대표단을 구성하여 민원접수 하러 들어가겠다고 했다. 역시나 경찰은 과잉으로 전경들을 몇 겹이나 배치하였고 기자회견이라고 참여한 많지도 않은 여성노동자들은 이것을 마주하고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순간, 연대로 참여한 남성노동자들이 경찰에 거세게 반발하기 시작했고, 경찰과의 마찰이 생기면서 주체였던 여성노동자들은 어느덧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경찰에 분노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경찰의 구령과 남성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사라져버리고 있었다.

결국, 마치 ‘매니저’가 된 것처럼 한 남성노동자는 다급하게 때론 강하게 바쁘게 경찰과 중재에 나선다. 매니저의 노력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잠시 후 경찰들은 여성노동자 대표단에게 한 줄만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또한 매니저는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업적 자랑하듯 말하고 있다.

돌아오는 기분이 영 개운치가 않다. 기자회견 잘하고 민원접수 잘 되었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런 광경을 접할 때면 기분이 나쁜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디에서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나의 지나친 생각이라고 해야 하나?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잇는다. 내가 투쟁현장에서 보게 되는 매니저의 활약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누굴 보조하거나 돕는 역할이 아니라 누군가를 관리하는 느낌의 매니저를 말하는 것이라 기분이 나쁜가 보다.

이런 비슷한 기분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한참 할 때도 들었다. 큰 투쟁현장에서 경찰은 장애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계획적으로 집행부와 비장애인들을 연행하고 중증장애인과 장애여성들만 남겨놓을 때가 있다. 이럴 때 공동대표였던 나에게 온전히 판단해야할 상황이 생긴다. 경찰 방패의 담 안에 갇힌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 자리를 지키고 강하게 저항하며 연행되거나, 대오를 해산시키는 선택만이 있는 나쁜 상황이 더 많다.

그 때 남은 집행부와 소통하고 판단해야 한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지체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서 묻는다. 빨리 뭔가를 결정하라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들을 한다. 결국, 우리 쪽 남성활동가가 경찰과 매니저로 나선다. 나의 동의나 우리의 계획을 먼저 알려고 하지 않고 나서는 남성들이 있다. 매니저는 언제나 최선책이라며 나에게 선택하라고 한다. 이러한 경험의 끝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연대를 하다보면 이런 순간들이 종종 있다. 이럴 때마다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는 내가 대표로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도 이제는 투쟁현장 경험이 꽤 되었고 일정정도 판단할 수 있음에도 주변 남성들이 기다려주지를 않는다. 장애를 가진 여성이라서 신뢰가 안 생기나 보다. 장애남성 대표가 있을 때와는 다른 것이 남성매니저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노동자 기자회견장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여성에 대한 불안함과 함께 여성을 경찰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남성 활동가들을 매니저로 나서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성 활동가들이 어떤 기분인가에 대해서는 매니저들이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론 매니저들의 활동이 여성주체들의 목소리를 낮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연대를 할 때의 자세이다. 나도 어떤 때는 연대로 참여도 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참여를 맞이하기도 한다. 그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가 고민되는 것이다. 연대로 참여했지만 ‘이것은 당신들의 일’이라고 한 발 물러서서 팔짱끼고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힘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나서는 것도 주체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 어느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기분 좋은 연대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기분 좋고 존중 되는 연대란 어떤 모양이며 어떻게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를 만드느냐가 끝나지 않는 고민이다.

여성, 장애, 나이, 경험, 가부장적인, 비장애적인 또는 관습으로 다른 다양한 차별적 요소들이 연대의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보다 외로움을 주는 연대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박김영희 님은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68 호 [기사입력] 2007년 08월 21일 23: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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