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과 사람 사는 세상 사이

[기획] 사회운동포럼이 낳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 (4) 빈곤심판 민중법정

유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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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서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었다. 화장실에 갔더니 “여기는 금연구역입니다. 이를 어길 시 경범죄처벌법 54조에 의거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에 처하게 됩니다.”라는 문구가 정면에 붙어 있었다. 얼마 후 집회신고의 내용을 조정하기 위해 경찰서의 다른 공간으로 갔을 때 정보과 형사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담배를 피워도 되냐고 물었다. 정보과 형사가 말한다. “에이~ 사람 사는 세상인데요….”

거리의 노점상은 불법이고, 최소한의 주거공간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투쟁은 불법 점유자에 폭도가 되며, 노숙인은 그 존재자체 만으로도 사회위협요소·범죄유발의 소지가 있는 이들이며, 생계고로 빚을 진 이들에게는 사기죄가 성립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렇듯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조차도 범죄가 되는 현실에서 ‘빈곤심판, 민중법정’은 기획되었다. 여전히 빈곤이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에서 빈곤을 심화하는 범죄 집단이 누구인지를 밝혀내고 싶었던 것이다.

위 사진:8월 31일 밤 성균관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빈곤심판 민중법정' [출처] 사회운동포럼 홈페이지(www.smf.or.kr)


사회구조적으로 치밀하게 빈곤을 심화하는 신자유주의는 그 자체로 빈곤심화의 주범이며, 이를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정치인·자본가와 실행구조인 정책들을 드러내고 이들이 빈곤을 심화하는 주범임을 민중의 목소리로 판결하고, 이에 대한 민중의 심판을 내리고자 했다.

그리고 사람사는 세상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복지정책은 빈민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수준에서 오히려 빈곤층의 고통을 심화하고 있으며, 잔여적이고 시혜적인 복지정책은 오히려 빈곤층을 낙인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본생활권은 하나의 복지정책으로 대신할 수 없는 빈곤대중의 권리투쟁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음을 민중의 권리선언을 통해 확인하고자 했다.

민중법정은 이 사회에서 빈곤을 심화시키고 인간다운 삶의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범죄와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권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하는 “너! 나와!!”

운동사회 안에서도 빈곤에 대한 인식은 주류 언론이 보여주는 쓰러져가는 집과 노숙인의 모습 속에 갇혀 있었다. 반빈곤운동을 이야기하지만 상호간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민중법정은 빈곤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1부, ‘빈곤의 또 다른 얼굴,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다!’에서는 금융자본의 배를 채우기 위한 정부의 금융정책으로 인해 ‘신용불량자’라는 법적, 도덕적, 경제적 낙인 속에서 고통 받으며 살 수밖에 없었던 금융피해자 당사자들이 직접 출연해 자신의 경험이 담긴 연기와 증언으로 금융채무의 진실을 밝혔다. 금융피해의 대표적인 사례인 사금융의 경우 이자제한법, 대부업법 등을 통해 금융시장을 자유롭게 만든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반을 두어 더욱 활성화 되었다. 결국 대부분의 금융피해자들은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불법추심에 시달리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금융채무 당사자들은 이 자리를 통해 사채업자와 카드사, 금감원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공개 수배 했다.

2부에서는 노동빈곤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을 폭로했다. 정부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정책이 결국은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를 부추기는 한편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확대하는 정책임을 제기했다. 또한 비정규보호법안은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불안정노동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음을 제기하고, 비정규직보호법 시행과 동시에 집단해고당한 이랜드 노동자의 투쟁을 극화하여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비정규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위 사진:'빈곤심판 민중법정'의 한 장면 [출처] 사회운동포럼 홈페이지(www.smf.or.kr)


3부는 빈곤과 불평등을 양산하는 서울시 경제발전전략 프로젝트를 고발했다. 이명박, 오세훈으로 이어지고 있는 서울시 발전프로젝트는 이명박의 청계천 복원사업, 뉴타운 개발에서부터, 오세훈의 ‘서울시정 운영 4개년 계획’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며, 이들의 개발과 발전은 ‘지저분한’ 노점상과 노숙인과 철거민을 갈아엎는 개발임을 드러냈다.

빈곤심판 민중법정은 박 터뜨리기와 함께 천만 빈곤대중의 권리를 선언하고 모든 참가자와 함께 어우러지는 뒤풀이 마당으로 끝을 맺었다.

소통에 미치다

우리는 민중법정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회운동과 반빈곤운동의 소통을 모색하고 빈곤대중 사이의 연대를 확인하고 싶었다. 법정은 준비단계에서부터 당사자와 활동가가 함께 기획하고 대본작업을 하고 연습하면서 빈곤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연대를 고민하고자 했다. 민중법정은 그렇게 금융피해 당사자모임이나 노점상 철거민단체, 사회운동단제와 노숙인 당사자 모임 등이 함께 마련한 장이었다.

이는 또 다른 교육의 장이었다. 빈곤대중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계기는 사실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일방적인 교육과 발언의 기회 없는 집회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민중법정의 각각의 주제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느끼면서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던 금융피해자의 문제, 사회적일자리의 문제, 개발의 문제에 대해서 공유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이는 각 단체 활동가 및 참여주체로부터 민중법정에 참석한 이들까지 안팎으로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짧은 법정의 내용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었으나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논의와, 각각의 주제를 ‘빈곤’의 문제로 제기하고 공유할 수 있는 유의미한 과정이었다.

즉 민중법정 자체가 반빈곤운동에 대한 교육이면서도 당사자와 당사자와의 소통, 대중과 대중과의 소통, 운동과 운동과의 소통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실험적인 공간이 되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 200여명의 호응은 뜨거웠다. 물론 사회운동포럼의 유일한 문화행사의 성격을 띠었기에 문자에 지친 활동가들에게는 보다 즐거울 수 있는 자리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회도 아니고, 잘 짜인 문화공연도 아니지만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여 함께 준비하고 함께 실현하는 마당이었기에 미숙하지만 민중법정에 참여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고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에게 서로의 문제와 서로의 운동을 알고자 하는 여유와 진정성은 메말라 버려, 모든 행사에 관조적이고 평론자의 입장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연대는 너무 부담스러워 한미FTA 저지 투쟁이나 이랜드 투쟁처럼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투쟁 이외에는 그 절박함을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그마한 소통을 위한 진정성은 소박하지만 열려있는 공간을 만들고 더욱 너른 연대를 만들어내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보여준 것이 민중법정의 가장 큰 의미가 아니었을까.

민중심판에서 민중행동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민중법정은 그 의미만큼 과제도 남겼다. 민중법정이라는 형식을 통해 내용 전달에 있어서도 다양한 방식(영상-연극-증언 등)을 통해 드러나고자 했던 것은 유의미했지만, 내용구성에 있어서의 한계도 존재했다. 각각의 주제를 정하고 핵심문제를 알리고자 했으나 누구(혹은 무엇)를 기소할 것인지에 대한 불분명함, 정부와 자본의 논리에 대한 반박의 미흡, 생존권의 문제를 넘어서는 권리의식의 전달에는 부족했다. 결국 민중법정의 내용자체가 반빈곤운동의 핵심과제와 요구를 제시하는 것임에도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법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반빈곤운동의 요구에 있어서도 논리의 구체화 및 대상의 명확함 등이 필요하다.

또한 보다 대중적인 참여의 부재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법정 준비과정에서 빈곤문제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자신의 문제를 정리하며 반빈곤운동의 주체로 범죄집단을 기소하자는 의의가 있었던 기소인단 모집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으며, 노점상 철거민 대중의 참여도 크게 확대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포럼은 총회를 통해 10월 17일 ‘세계 빈곤철폐의 날’의 민중행동을 결의했다. 빈곤을 심판하는 민중법정에서 민중의 권리를 선언하고 이를 실질화하기 위한 민중행동을 제안한 것이다. 민중법정을 통해 빈곤의 다양한 모습을 공유하고 빈곤의 주범을 심판하고 민중의 권리를 선언한 소통과 연대의 첫걸음은 민중행동으로 나아가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반빈곤운동의 다양한 투쟁공간에서 빈곤심판 민중법정은 계속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유의선 님은 빈곤사회연대(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72 호 [기사입력] 2007년 09월 19일 0: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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