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시대의 망령, 지문날인제도

[기획] 선거 놀음에 파묻힌 인권 법안 (16) 주민등록법 일부개정안

윤현식
print
잊혀가는 지문날인 폐지 법률안

2007년 7월 임종인 의원은 ‘주민등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현재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자치위원회에 회부되어 있다. 이 법안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현행 주민등록법 제24조제2항 중 “주민등록증에는 성명·사진·주민등록번호·주소·지문·발행일·주민등록기관을 수록한다”라는 문장에서 ‘지문’이라는 구절을 삭제하는 것이다. 실제로 1997년 주민등록법 개정 전까지 주민등록법에는 ‘지문’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었다. 1968년 이래 1997년 개정까지 전 국민 지문날인제도는 법률에 그 단어조차 명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되어 왔던 불법적 행위였다. 그러던 것이 전자주민카드문제가 불거지면서 지문날인반대운동이 일어나자 부랴부랴 법률정비를 하면서 1997년 주민등록법 개정과정에 처음으로 ‘지문’이라는 단어가 삽입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임종인 의원의 법률안은 형식적으로는 1997년 이전의 상태로 주민등록법을 되돌린다는 의미를 가진다. 더불어 실질적으로는 기본권에 충실하도록 법률을 재정비함으로써 일상생활의 기저에 남아있던 권위주의정권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현행 주민등록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직권말소제도가 그렇고 주민등록번호제도가 그렇다. 이처럼 많은 문제가 병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문날인제도만을 가지고 개정안을 낸 것은 이 법률안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문날인제도의 폐지는 권위주의의 청산을 위한 첫걸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더불어 장래의 인권보호, 특히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제도정비의 틀을 마련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현재 행정자치부는 1997년 이후 일단 중단되었던 전자주민등록증 사업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추진하는 전자주민등록증 사업의 계획에 따르면 지문정보를 아예 전산화해서 카드 자체에 내장하거나 또는 중앙전산처리장치를 통해 전산적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외교통상부는 테러방지 및 미국비자 면제국을 목표로 생체여권(외교통상부는 전자여권이라 불러달라고 한다)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추진하는 생체여권에는 지문정보가 내장되고 이 지문정보는 각국의 출입국 기관 및 수사기관에 의해 이용될 수 있다.

위 사진:지난해 2월 행정자치부가 공개한 전자주민등록증 견본


이미 한국 국민의 개인정보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 널리 유출되어 있다. 중국 등지에서 한국인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는 버젓이 공개된 장소에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한국의 정부는 국외에 유출되어 있는 한국인의 개인정보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전자주민등록증의 안전성은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고, 생체여권 역시 저장된 개인정보가 쉽게 유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형편에서 전자주민등록증이나 생체여권 등의 사업은 국민의 개인정보를 담보로 행정의 편의만을 추구하는 위험한 사업이 될 뿐이다.

지문날인제도를 폐지하는 법안이 가지고 있는 무게는 이러한 현실에서 더욱 무거워진다. 정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무분별한 국민의 생체정보 남용에 제동을 거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편의주의에 밀려 항상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던 인권이 무엇보다 중요한 선결과제의 위치로 환원되는 계기가 바로 지문날인제도의 폐지에서부터 시작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모두의 문제는 어느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소관 상임위인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이 법안이 회부된 지 만 4개월이 지나는 동안 어떠한 논의도 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조차 아무 생각 없이 열 손가락 지문날인을 했다는 것만으로 이 문제가 인권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인권운동을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모두의 문제는 어느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라는 점이다. 인권침해가 장기간에 걸쳐 사회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포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때, 사회구성원들은 이를 인권침해로 인식하기 어렵게 된다는 이야기다. 지문날인제도는 사회 전 구성원들에게 똑같은 형태로 지난 40년 간 시행되어 오면서 이것이 인권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우리들의 머릿속에 인식되어 버렸다. 국회의원들 역시 예외는 아니리라.

지문날인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이 사회가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보여준 적나라한 사례는 2005년 5월, 헌법재판소가 전 국민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를 합헌이라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6대 3 다수 의견으로 청구인의 소원이 모두 기각된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도저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라고는 보기 힘든 논리로 지문날인제도의 합헌성을 인정했다.

청구인의 헌법소원 취지는 열 손가락 지문날인제도의 근거가 되고 있는 주민등록법 등이 합헌인지 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은 그러한 법률이 있으므로 합헌이라는 엉뚱한 논리로 지문날인제도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물론 다수의견은 “법이 있으므로 합헌”이라는 기상천외한 논리 외에,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지문날인제도가 존속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상황논리까지 전개했다. 다수의견은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서 아직도 체제대립이 상존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그러한 사정에 있지 아니한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국가안보차원에서 국민의 정확한 신원확인의 필요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안보에 지문날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정에서 송인준, 주선회, 전효숙 3인의 재판관이 낸 소수의견에는 지문날인제도가 가지는 문제점이 정확하게 드러나 있다. 즉, 고도정보화사회에서 지문정보는 국가나 기업, 개인이 이를 집적하고 이용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개인의 사생활침해위험이 높고, 그 기능성으로 말미암아 개인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에 제약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더구나 다수의견이 황당한 논리로 피해나갔던 기본권의 법률유보라는 점에서 현행 지문날인제도는 법률에도 근거가 없고,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한 것이므로 위헌이라고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지문날인제도가 도입된 역사적 상황을 돌이켜보면 소수의견의 문제제기가 왜 타당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전 국민 지문날인제도가 도입된 것은 1968년이었다. 반공방첩태세의 강화를 주장하며 수시로 계엄령과 긴급조치를 남발하던 박정희정권은 이 때 주민등록법 전면 개정을 단행하면서 주민등록번호제도와 지문날인제도를 도입했다. 자신의 지문이 국가기관에 수집되어 수시로 이용됨으로써 언제든지 자신의 행위가 국가에 의해 낱낱이 파악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국민의 행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부도덕한 정권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고픈 권위주의 정권의 속내는 이렇게 발현된다. 지문날인제도는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이 주장하는 ‘국가안보차원’에서 도입된 것이 아니라 ‘정권안보차원’에서 도입된 것일 뿐이다.

왜 지문날인제도가 문제인가?

의무적인 전 국민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는 현재 한국 이외에 어느 나라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만 17세에 채취한 열 손가락 지문정보가 경찰에 제공되어 전산화되고 임의로 경찰에 의해 이용되는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특정사유 없이 강제로 지문을 날인하도록 하는 것은 대상자들을 예비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 과잉금지원칙 등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더불어 현행법 어디에도 주민등록증발급을 위해 날인한 지문정보를 경찰이 취합하여 전산처리하고 임의 이용하도록 한 것이 없다. 법률유보의 원칙이 실종된 것이다. 또한 지문정보는 개인의 고유한 신체정보로서 기술발달과 더불어 각종 신원인증 등에 이용되는데 바로 그 때문에 보호에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민감한 정보가 된다. 다시 말해 지문정보는 한 번 유출될 경우 개인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유발할 수도 있는 개인정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지문날인제도는 헌법으로 보호되는 개인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고 개인의 존엄성에 대해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제도가 장장 40년 가까이 엄존하고 있다. 게다가 이 제도는 상당수 국민들에게 아무런 이의제기도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히려 이 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불순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자들로 매도되기까지 한다. 국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음으로 인해 안심할 수 있는 시민의식 지체현상의 근저에는 이렇게 자신의 민감한 신체정보를 기꺼이 국가에 헌납하도록 만든 권위주의 정권의 강력한 국가주의 망령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한국은 일본에 대해 재일동포에 대한 강제지문날인제도를 철폐하라고 강력히 요구한 바가 있다. 자국민에게는 시행하지 않는 지문날인제도를 한국국적 재일동포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것은 차별행위이며, 이들을 예비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등의 비판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2003년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여 그동안 1년 이상 거주목적 입국외국인에 대하여 일괄적으로 시행해왔던 지문날인제도를 폐지하면서도 정작 자국민에 대한 강제 지문채취는 그대로 존속시키고 있다.

출입국관리법 개정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괄적인 지문날인제도가 인권침해행위라는 것을 정부 스스로 시인했다는 점이다. 입국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제적인 지문날인제도는 인권침해행위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정부는 이 비판을 피함으로써 “국가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하여” 출입국관리법에서 지문날인조항을 삭제했다. 범죄 등의 특정한 이유 없이 사전관리차원에서 지문날인을 강제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용인될 수 없는 인권침해행위였던 것이다.

이처럼 지문정보는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함부로 채취하고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국민들은 만 17세에 지문정보를 제공하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만 비로소 성년의 관문을 통과한 것처럼 인식해 왔다. 지문을 찍지 않으면 사회가 무너질 것이라는 공포감을 지속적으로 주입당해 왔다.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사람을 보면 혹시 빨갱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도록 교육받아 왔다. 국민들은 자신의 지문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채취해서 멋대로 이용하는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구심을 갖지도 못한 채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가 자신을 국민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한국국적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하는’ 지문날인제도는 결국 모두의 인권을 침해하면서도 어느 누구의 문제도 아닌 것처럼 제 본질을 숨기는데 성공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문날인거부운동을 전개했음에도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바로 이처럼 지문날인제도가 “누구의 문제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 현실에 있었다. 그 와중에도 지문날인 거부자들이 헌법소원까지 청구하는 사업을 진행했으나, 2005년 합헌결정을 받으면서 운동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지금 지문날인제도의 철폐는 입법의 문제가 되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문날인제도 철폐는 필연이다!

국민의 인권보다는 행정편의를 앞세우는 정부와, 도대체 지문날인제도가 인권침해행위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정치권에 대해 더 이상 어떤 기대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의 인권의식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인권에 대한 각성이 지속되면서 구시대에 만들어졌던 낡은 반인권적 제도들이 하나씩 둘씩 모습을 감추어가고 있다. 지문날인제도 역시 종국에는 그 제도가 가지고 있는 반인권적 성질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윤현식 님은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78 호 [기사입력] 2007년 11월 06일 23:20:08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