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기획] 죽음을 기억하라 (5) 청춘을 삼킨 입시

전누리
print
[편집인주] 모든 죽음은 산 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어떤 죽음은 산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런 죽음은 죽은 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긴다. 생물학적 죽음을 수반하지는 않더라도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회적 죽음도 있다. 죽음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을 부르는 한국사회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죽음이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인권오름>은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죽음 가운데 점점 잊히고 있지만 산 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한국사회 인권의 현실을 점검한다.


1989년 10월 13일, 서울 면목고 3학년 김 아무개 씨는 수업 중 교실을 박차고 나왔다. 지옥에서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교사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잠실대교로 향한 그는 한강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기 전 유서를 남겼다.

어른들은 그들이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보지 않고 그렇게 죽어간 학생들만 욕했습니다. (중략)
저는 지금 막 교실을 뛰쳐나왔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지옥에서 부르는 소리 같았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묵묵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이 친구들은 감정도 없는 사람 같고 다 똑같아 보입니다. 전혀 개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 친구들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어른들이 밉습니다. (중략)
반 학우들아, 너희들은 죽더라도 대학에 가서 죽어라. 나는 단지 죽음을 너희보다 빨리 불렀을 뿐이다. 잘 있거라.


80년대 전두환 정권은 본고사 금지, 내신성적 반영, 과외금지 등의 교육정책을 발표했다. 내신성적 반영은 대학입시를 위해 학생들에게 높은 내신성적을 받을 것을 요구했고, 과외 금지정책에 따라 허용된 보충·자율학습은 단위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시행되어 학생들을 좁디좁은 교실 속에 가두어버렸다. 학생들의 목을 옭아맨 교육정책은 평균 2~3일에 1명씩, 1년에 1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자살하는 문제를 만들어냈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중학생의 유서를 통해 영화가 만들어질 만큼 사회의 이슈가 되었다. 바로 그런 사회에 면목고 학생 김 아무개 씨는 물음을 던졌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죽어간 학생들을 욕하지 말고, 사회의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보라고 물었던 것이다.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는다

공부힘들어서 자살하는 사람들.. 다 남이야기 같았어. 하지만 아니야.
공부공부공부공부. 좁디좁은교실에 선풍기4대 히터2대. 40명이 넘는 아이들.. 같은곳에서 각기 다른재능을지닌 아이들이 오직 한가지만 배우고 있었어. “대학가는법”.
슬펐어.
……내가죽는다고 변하는건 아무것도없을거야. 선생님들의 강력한 몽둥이도,,선생님들의 강력한 두발규제도,,선생님들의 공부공부소리..사회의 공부공부공부공부,,,
……난 사실 평범한 여중생일뿐이야.
노래부르길좋아하고, 그림그리길좋아하고, 수다떨길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놀기를 좋아하는,
하지만 사회는 내게 그걸 바라지않아.
같은머리 같은옷 그리고 같은공부.
쫍디쫍은 교실에 아이들을 구겨넣고, 선풍기4대와, 히터2대. 그리고선생님..
(2007년 4월 자살한 어느 중학생의 유서)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나는 27시간30분 공부하고 20시간30분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2002년 11월 자살한 어느 초등학생의 유서)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회는 그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소리 없는 죽음을 통해 재차 물음을 던졌다. 사회는 침묵했다. 침묵 속 경쟁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른바 스카이(SKY)라고 불리는 ‘명문대학-수도권 4년제 대학-지방 4년제 대학-수도권 전문대학-지방 전문대학’으로 이어지는 대학 서열구조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한 경쟁은 치열해졌다. 당초 입시경쟁 속에 무너져 가고 있던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도입된 내신등급제와 수능등급제는 학생들을 경쟁의 사슬로 몰아넣었다. 애당초 대학의 서열구조가 존속한 상황. 내신등급제의 경우 조금이라도 더 높은 대학에 가고자 하는 경쟁은 해결될 수 없었고, 상대평가제와 맞물려 오히려 학급 안에서 친구들끼리의 살벌한 경쟁을 불러냈다. 수능 비중을 줄이고 공교육의 강화를 위해 도입된 수능등급제 역시 대학서열구조 속에서 어떻게든 학생들을 점수로 서열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고등학교를 삼킨 입시 경쟁은 중학교, 초등학교까지 삼켜버렸다. 중학교는 이미 높은 대학의 교두보가 된 특목고로 진학하기 위한 경쟁의 장이 되었다. 특히 서울의 경우, 특목고 뿐만 아니라 고교선택제의 시행으로 평준화가 해체되고 명문대학에 많은 학생을 진학시키는 명문고교에 들어가기 위한 고교입시경쟁이 부활될 것이 우려되고 있다. 그것뿐인가? 국제중의 진학을 위해서 혹은 조기 영어와 선행학습, 일제고사 부활로 인해 초등학생이 죽기 전에 남긴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이 절절하게 다가오듯이 초등학교 역시 입시경쟁의 틀 속에 빠져들고 있다. 수능, 내신, 논술도 모자라 특목고 입시와 영어교육 등은 점점 팽창하는 사교육시장의 추세와 맞물려갔다.

폭력을 쓰는 교육, 폭력을 가르치는 교육

이러한 입시경쟁의 구조 속에 학생에 대한 폭력은 자연스레 결합된다. 폭력은 입시경쟁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통제방법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경쟁을 위해, 일탈을 막기 위해 두발과 복장 등의 규율로 학생들을 획일화시키거나 학생들에게 자기 시간의 선택권을 부여하지 않고 오로지 입시만을 위한 보충·자율학습을 강요한다. 입시 경쟁에 뒤쳐지거나 입시 외에 일탈행위를 하는 학생에게는 이따금 체벌이라는 폭력을 가한다. 실제로, 지난 7월 4일 부산 배정중의 한 학생은 한문 성적이 낮게 나왔다는 이유로 오리걸음 체벌을 받다가 사망했고, 8월에는 창원의 한 고등학생이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했으나 학교 측에서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할 것을 강요해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다.

2007년 자살한 어느 고3 학생의 일기처럼 “문제 푸는 기계”가 되어 좀 더 높은 대학을 위해 바로 옆 친구를 밟고 올라가라고 가르치는 교육, 학생 자신의 삶의 결정권을 파괴하는 교육,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서로 연대해야 할 인간에게 경쟁을 위해 폭력을 가르치는 지금의 교육은 인간을 위한 교육이 아니다. 폭력을 위한 교육일 뿐이다. 그 폭력의 교육을 뿌리 뽑아야 한다. 이미 확인했듯이 지금 이 폭력과 경쟁의 교육은 수많은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위 사진:지난 11월 24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전국 공동행동의 날' 행사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입시경쟁이라는 판을 뒤집자

교육에서 폭력과 경쟁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우선 경쟁으로 범벅된 입시교육을 해소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의 입시경쟁교육은 하나의 두더지를 잡으면 또다른 두더지가 튀어나오는 ‘두더지게임’과 같다. 내신등급제 등 입시경쟁을 경감시키려는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어느 것 하나 이 폭주하는 입시경쟁을 해소하지 못했다. 부분적·단기적인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두더지 하나하나를 잡는 것이 아니라 그 판 자체를 바꾸어버려야 한다. 대학평준화 등의 정책을 통해 지금의 대학서열구조체제라는 판을 뒤흔들어야 한다.

또한 폭력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라는 공간을 학생들의 삶을 보장하는 인권과 자치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학생은 인간이 아닌 ‘피교육자’라는 이유로 두발규제, 체벌 등 수많은 폭력을 통해 인권을 유린당했다. ‘학생도 인간이다’라는 절절한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학생인권법이라 불리는) 초중등교육법개정안 등 학생의 인권과 자치를 보장하는 법률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교육부 차원에서는 단위학교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학생인권보장대책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10일, 2007년 수능 성적이 발표된 지 3일도 지나지 않아 경남 창원에서 쌍둥이 자매가 아파트에서 동반 투신했다.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아 고민을 했다는 그들은 이날 새벽 3시 50분 부모에게 “죄송합니다. 동생하고 행복하게 잘 사세요”라는 문자를 남기고 아파트 25층 창문에서 몸을 던졌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 죽음의 행렬을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그들이 죽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외면하지 말자. 폭력과 경쟁의 교육을 반대한 그들의 외침을 직시하자.
덧붙이는 글
◎ 전누리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83 호 [기사입력] 2007년 12월 12일 20:15:39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