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희의 인권이야기] 자발적 문화를 위한 공유지를!

정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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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선 꽃꽂이가 중요하다. 각종 문화센터에 즐비한 꽃꽂이 교실, 십자수 등 기능주의에 기초한 문화활동은 국내 공공문화기관에 가득하며 그나마 공공문화시설과 프로그램이 있으면 다행이지 대부분 지역의 공공문화기관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조건 자체가 문제인데, 실례로 책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 하루 평균 한국인 독서량은 고작 8분이라고 정부는 광고하지만 정작 책 읽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가? 책값은 날로 오르고,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 빌리는 거 너무 힘들다. 아니 일단 도서관 자체가 별로 없다. 미국만 해도 도서관 하나당 인구수는 국내 1/10 수준이며, 1인당 장서 수는 4배가량이다. 또 공연이나 뮤지컬은 둘이 보면 대략 10만 원이 넘는데 이거 너무 비싸다. 그리고 왜 공연은 꼭 보기만 해야 할까. 끼를 발휘할 수 있는 시절은 학예회까지일 뿐 삶이 너무 팍팍한 현실이다. 또 어릴 적 미술대회 나가서 상 받으면 뭐할까. 사회 나오면 대부분 다 헛것. 그리고 문학소녀라는 말은 있는데, 왜 문학아줌마라는 말은 없을까. 시와 소설이 나이 가리는 것도 아닌데 할 수 있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다. 하지만 문화시설 건립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위 사진:삶과 밴드활동을 유기적으로 그린 아일랜드 영화 ‘원스’의 한 장면


비대해진 문화 환경을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주의 문화 환경은 주지하듯 문화의 경제화와 빈곤화를 동시에 추동해왔다. 문화산업의 비대화와 사회적 집중도 강화 속에 문화의 정치적, 경제적 예속이 가속화된 상황인 한편, 민중의 문화적 삶은 빈곤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조사한 보고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2006년 문화산업백서에 따르면 국내 문화산업(출판, 만화, 음악,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디지털 교육 및 정보 등 10개 분야) 매출액은 전년 대비 7.8% 증가한 53조 9481억 원으로 경제성장률(4.2%)의 2배 가까이 성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2006년 문화향수실태조사’에 따르면 ‘텔레비전을 보거나 쉰다’는 전형적인 여가활용 형태의 가시적인 변화는 드러나지 않았으며, 영화와 문학행사 참여를 제외하면 국민의 문화 활동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6년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서도 외부의 창작활동규제에 대한 문화예술인의 만족도는 이전(2003년) 조사 결과보다 11.1%가 줄어든 45.2%로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2005년 통계청 ‘3/4분기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주5일 근무제 실시 이후 소득 최상위 10%와 하위 10% 계층간 교양·오락비 지출 격차가 무려 10배 이상 벌어졌으며 현재까지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기간 문화산업은 빠르게 규모를 키워왔지만 창작활동에 대한 사회적 억압 및 문화의 빈곤화는 심화됐다고 볼 수 있다. 즉, 문화 환경은 확장되었으나 이를 가로지르는 실체는 자본을 위해 운동하는 문화산업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자발적 문화 실천은 후퇴한 것이다.

기업과 정부에서 문화에 대한 집중력이 강해지는 이유는 문화의 경제적, 정치적 속성 때문이다. 경제적 속성은 스타시스템과 상품마케팅에서 문화가 활용되는 경우처럼 주로 문화의 외부효과에 집중돼 왔다. 하지만 이제 자본은 음악, 영화, 캐릭터, 게임 산업에 공세적으로 진출하고 조직관리에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제는 광고음악 자체를 상품화한 삼성애니콜의 애니밴드란 기획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산업에 대한 자본의 공세적인 진출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저작권 보호 강화, 스크린쿼터 등 자본 규제 해제, 공공문화기관 민영화 등 시장주의 정책을 통해 강화되어 왔다. 한편, 정부는 고전적으로는 관변 축제지원 그리고 최근 청개천 개발이나 서울시의 디자인시티조성 계획, 문화도시 등 문화사업 지원에 적극 나서며 문화 환경에 대한 정치적 기획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정치적 기획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한편에선 집회시위 통제 강화, 파업 현장에서의 노동자 표현의 자유 억압, 인터넷 실명제, 통신비밀보호법 등 민중의 자발적인 표현에는 제동이 걸린다.

위 사진:문화연대 문화교육센터의 생활문화교육 ‘생태공동체 마을 만들기’


여가시간에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7.3% 정도일 뿐이지만 실제 국민 평균 25.6%가 여가 시간을 텔레비전 시청으로 보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문화적 조건에 기인한다. 공공문화시설의 부족과 기능중심의 프로그램 그리고 문화산업의 비대화와 시장주의 속에서 달리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돈 없어도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며 여기서 수다 떨고 노래하고 연극하고 춤출 수 있어야 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매일 밥을 먹듯 매일 사색하고, 토론하고, 감상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문화적 공공기반이 필요하며 문화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특히 공공성과 다양성의 보장은 추상적 주체로서의 국민 일반이 아닌 노동자, 청소년 등 구체적 주체의 생활 세계에 기초한 문화적 권리를 증진할 수 있는 정책 방향과 설계가 요구된다. 일례로 노동자의 문화적 권리 증진을 위해서는 노동자와 문화기관의 동선을 연결하고 작업장의 문화 환경에 개입할 수 있는 정책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 주체의 문화적 감수성과 역량을 지원할 수 있는 학교와 공공문화시설에서의 문화교육과 다양한 작가들과의 연계 시스템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들 삶 자체가 문화적으로 배제된 상황에서 오히려 문화 활동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꺼려하는 게 민중의 현실이니 말이다. 특히 현재 민중의 문화적 역량마저 UCC 등 웹2.0처럼 다시 자본을 위해 활용되고 있으니 보다 민중의 삶을 조명하며 이들의 자율적 문화 실천을 위한 운동의 기획이 더욱 요청되는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정은희 님은 문화연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85 호 [기사입력] 2008년 01월 02일 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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