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문헌읽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유엔 글로벌콤팩트(UN Global Compact)

어떤 '책임'인가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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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계좌로 비자금을 관리한다, 세금 안내고 재산상속한다, 바다와 생존권을 기름범벅 해놓고도 책임 안진다, 무노조정책으로 일관하며 우수경영상을 받는다, 비정규직과 하청기업 등에 대해서는 후려치기를 기본으로 한다, 뇌물을 떡값이란 단어로 바꿔놓는다, 차별금지법 등에는 반대하며 자선사업으로 이미지 화장을 한다, 죄를 짓고도 경제에 유해하다는 협박으로 벌을 모면한다….

눈치빠른 기업들이 만든 ‘자율 규정’

불행하게도 이런 일을 벌이는 거대 기업들은 우리의 생활, 우리의 인권 속에 너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더 큰 불행은 인권과 너무나 밀접한데도 그들을 손댈 방법이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만인의 권리를 주창하는 동시에 새로운 정치체(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했던 인권의 구조는 국가권력과 개인과의 관계에 주목했지, 기업과의 관계는 자율의 영역으로 제쳐두었다. 노동권 등이 인권의 자리를 치고 올라온 후에도 이를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로 대우하기 보다는 경제를 운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왜곡하는 일은 계속됐다. 국가권력보다 더 센 권력으로, 민주주의·인권·환경·평화 등 인간 생활의 주요한 가치를 종횡무진 농락하는 거대기업들을 상대하는 것은 인권 주체들의 고난이 수능시험이다.

그런데 눈치 빠르고 발 빠른 기업들이 먼저 나서서 ‘자율 규정’을 만들었다. 그것이 ‘유엔글로벌콤팩트’라는 것이다. “보다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지구 경제 창조를 돕기 위하여”라는 목표를 내걸고 국제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이다.

어떤 ‘책임’인가

여기서 먼저 주목할 것은 어떤 ‘책임’이냐는 것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책임’은 기업으로 하여금 국제적 및 국내적 인권규범을 지키도록 기업의 행동을 제한하는 규제를 강화하고 잘못했을 때는 정면으로 해결하게 하는 것이다. 피해보상을 하게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위법에 대해서는 처벌받도록 하는 등 정말 ‘책임’을 묻는 것이다. 즉, 기업의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민주적 통제 장치를 갖추는 것이다.

위 사진:유엔 글로벌 컴팩트 10개 원칙을 선언해놓은 홈페이지

그런데 글로벌콤팩트로 표현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선 ‘책임’의 의미가 다르다. 글로벌콤팩트는 순수하게 자발적인 활동이다. 글로벌콤팩트는 기업 활동의 규제와 평가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기업이 스스로 알아서 자신이 정한 윤리적 기준을 지키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알아서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믿고 지지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약속과 맹세를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이다. 대기업들이 글로벌콤팩트에 가입하는 것이 ‘다행스럽고 좋은 일’, ‘권장할 일’, ‘글로벌 스탠더드 또는 국제적 조류에 부응하는 일’로 보는 시각이 있고, ‘우려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있다.

전자의 입장에서 글로벌콤팩트를 지지하고 가입하는 덩치 큰 국내외 NGO들도 있고(글로벌콤팩트에는 협력자 자격으로 시민단체와 여타 비영리 단체들도 참여할 수 있다), 기업의 이미지와 홍보를 위해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기업 내부 연구소들의 독려도 많다. 반기문 신임 유엔 사무총장이 중요 의제로 다루자 글로벌콤팩트 초기에는 2-3개에 불과했던 한국기업(학교, 언론사, NGO 등 조직)의 참여가 최근에는 100개를 넘어섰다.

아직 채택되지 못한 ‘인권책임에 관한 규범’

우려스러운 입장, 나아가 적극 반대하는 입장에선 동기의 순수성에 대한 순진한 믿음을 비판한다. 글로벌콤팩트는 1999년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이 제안한 것이다. 전세계 보스들이 모이는 ‘다보스 포럼’에서 말이다. 그리고 2000년 7월 정식으로 성립했다.

1999년은 잘 알다시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시애틀 투쟁으로 뜨거웠던 해이다. 초국적 기업들의 인권침해를 규탄하고 대안의 체제를 요구하는 소리가 최고조를 이뤘다. 또한 같은 해 유엔에서는 ‘초국적 기업과 기타 사업체의 인권책임에 관한 규범’이 유엔소위에서 만들어져 유엔인권위에 제출됐다. 그러나 아직껏 유엔차원에서 이 규범은 채택되지 않았다. 기업에게 적용 가능한 국제법의 원칙들을 포괄한 ‘유엔규범’은 국제조약의 기초로 발전할 수 있는 밑재료이고 국가의 감독기능, 기업의 보상 등 ‘글로벌콤팩트’에 비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글로벌콤팩트는 초국적 기업들의 행태에 대한 고조된 비판과 기업의 책임을 추궁하는 ‘규범’을 피하기 위한 술수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채택되지 못한 유엔규범에 비해 글로벌콤팩트 규정은 아주 간략하고, 이행방법이나 자세한 원칙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기업이 투명성을 유지하고 공적책임을 추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업의 이익이 된다는 생각에서 자발적으로 할 것을 기대할 뿐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사회공헌’으로 왜곡하고 공익과 연계한 마케팅과 이미지 창출로 변질시키고, 기업의 지배구조나 인권, 특히 노동 분야를 무시하는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겠다는 순수한 맹세?

노조를 불인정하고 노조와는 대화하지 않으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시민단체와 대화하겠다는 얄팍한 발상에 충분한 속내가 있다고 여긴다면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일까? 실질적인 생활임금 보장이 아니라 최저임금만 지키면 혹은 아동노동만 착취하지 않으면 글로벌콤팩트 준수기업 인증을 찍어주는 방식(그것도 유엔로고가 찍힌)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KTX 여승무원의 직접고용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철도공사가 바로 이 글로벌콤팩트에 가입하고 있고, 일찍이 글로벌콤팩트와 연계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작성해온 대기업들이 그런 보고서에서 노조에 대해 언급조차 안하고 있다는 지적을 그냥 보아 넘길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겠다는 순수한 맹세를 믿고 말이다. 아무튼 그들의 맹세라니까 한번 읽어보자. 그리고 진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또 찾아보자.

유엔글로벌콤팩트 10개 원칙

인권
원칙 1: 기업은 국제적으로 천명된 인권의 보호를 지지하고 존중한다.
원칙 2: 기업은 인권침해에 공모하지 않을 것을 확실히 한다.

노동 기준
원칙 3: 기업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의 실질적인 인정을 지지해야 한다.
원칙 4: 기업은 모든 형태의 강제 노동을 철폐해야 한다.
원칙 5: 기업은 아동 노동을 효과적으로 철폐해야 한다.
원칙 6: 기업은 고용과 업무에 관한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환경
원칙 7: 기업은 환경 문제에 대한 예방적 접근을 지지해야 한다.
원칙 8: 기업은 환경에 대한 책임 강화에 솔선해야 한다.
원칙 9: 기업은 환경 친화적인 기술의 개발과 확산을 촉진해야 한다.

반부패
원칙 10: 기업은 금품 강요 및 뇌물수수 등을 포함하는 모든 형태의 부패에 반대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91 호 [기사입력] 2008년 02월 20일 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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