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_세상] “전세금 오른 덕에 독립했어요!”

서운함과 설레임 사이에서, 집에 대해 말하는 나동혁 씨

여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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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이면 나동혁 씨는 집에서 나온다. 혼자 사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집을 나와 살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독립은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제가 나가 사는 것을 불안해하셔서 그럴 수 없었죠. 학교 다닐 땐 아르바이트해서 생활비를 보탰고, 1년 전 취직한 이후부터는 거의 전부 대고 있으니까요. 혹시 나가 살게 되면 생활비 보내는 일을 소홀히 할까 봐 은근히 걱정하시는 거죠.”

이런 부모님이 나 씨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던 건 3월 중순 입주할 임대아파트가 비좁아서다. 1급 장애인인 어머니 덕(?)에 어렵사리 입주하게 된 25평 아파트에 직접 가보니 다섯 식구가 살기에 벅찬 공간이었다. 그날 아버지가 나 씨를 불러 어쩔 수 없이 ‘네가 나가 살아야겠다’ 하시더란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나 씨는 그러마고 했다. 내심 독립생활을 바라기도 했고, 제 방을 갖고 싶어 하는 누나와 여동생도 마음에 걸렸다. 나 씨 짐을 빼고도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지금 집에서 일부러 버리고 가야 할 것이 꽤 된다. 휠체어를 비롯해 어머니 짐만 해도 많기 때문이다.

전세금 4천, 집주인의 괘씸죄?

나 씨가 임대아파트를 알아본 건 지난해 9월경. 지금 집에서 2년 더 살려고 했는데, 집주인이 느닷없이 전세금을 4천 만 원이나 올려 달라고 했다. 2년 만에 4천 만 원을 모아놓을 수 있는 집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 씨는 정말 이 나라가, 세상이 미쳐가고 있구나, 생각했단다. 최근 전·월세가 크게 오른 데다 집주인에게도 밉보여 이런 일이 생겼다고 나 씨는 보고 있다.

작년 여름 나 씨 가족은 소음과 여름 한철을 보냈다. 집주인이 지금 나 씨 가족이 살고 있는 집 양쪽으로 집 두 채를 더 지었는데, 그 과정에서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 씨나 다른 가족들이야 소음을 피해 잠시 외출하면 그만이지만, 종일 집에서만 누워 있는 어머니가 문제였다. 게다가 나 씨 집은 맨 위층으로 그 집에서 가장 무더운 곳이었다. 여름 내내 어머니는 고통을 호소했다.

집주인은 이런 상황에 대해 미안한 기색도 내비치지 않았다. 건물 짓는 거야 합법이니 그로선 사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 씨가 오랜만에 누나, 동생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래층 사는 집주인이 쫓아 올라왔다. 집주인은 다짜고짜 왜 이렇게 시끄럽냐며 버럭 화를 냈다. 공사장 소음 때문에 그렇잖아도 잔뜩 감정이 쌓여 있던 터라 나 씨도 가만있지 않았다. “공사장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는 안 들리냐”며 맞선 것이다. 마늘 찧는 소리가 아래층까지 울릴까 봐 평소 옥상에서 절구질하는 아버지를 떠올리니 그 순간 나 씨는 더 화가 났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얼마 뒤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했다.


나 씨 가족은 나 씨와 나 씨 누나가 버는 돈으로 살고 있다. 여동생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월급이 최저생계비도 안 돼 생활비를 내놓을 형편은 아니다. 일용직 건설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연세가 많아 일을 놓으신 지 오래되었고, 어머니는 9년 전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누나보다 내 월급이 더 많은 이유

나 씨는 논술학원 강사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수감되었다가 출소한 뒤, 10년 만에 학교를 졸업하고 1년 전부터 정식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월수입은 들쑥날쑥하다. 입시철 무렵엔 제법 벌다가 그 시기가 지나면 6, 70만 원 겨우 벌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가족이 먹고살고 있는데, 나 씨가 독립하면 월세에 생활비가 따로 드니 생활이 더 빠듯해질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 씨가 의아했던 것 중 하나는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한 누나나 먼저 사회생활을 한 동생 월급이 자기보다 훨씬 적다는 점이다.

“우리 셋의 월급을 비교해 보면 거의 3, 4배씩 차이가 나요. 제가 누나보다 3, 4배, 누나가 동생보다 2, 3배 많고 그래요. 너무 단순화시켜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란 걸 세 사람의 월급명세서를 보면서 느낀다니까요. 전 명문대를 나왔고, 누나는 중하위권 대학을 나왔고, 동생은 야간 전문대학을 졸업했거든요. 전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고 있는 거죠.”

나 씨가 첫 독립생활을 할 집은 보증금 3천에, 월세 40만 원인 반지하방. 함께 살 친구들과 이 집을 찾기까지 며칠 동안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처음 집을 구하러 찾아간 동네는 집값이 싸기로 소문난 은평구 지역. 그런데 막상 가보니 실상은 달랐다.

“재개발, 뉴타운 지역이라 부동산이고 뭐고 모두 매매 물건만 나와 있더라고요. 부동산중개소 10군데를 들러서도 월세방 하나 볼 수 없었어요. 그래서 포기하고 다른 지역에서 알아봤죠. 저희 집 일만으로도 전·월세가 많이 올랐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여러 곳을 둘러보니까 더 와닿더라고요.”

“집은 여관이 아니잖아요”

생활비도 빠듯해지고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돼 서운한데도 난생처음 아늑한 제 독립공간을 갖는다는 점에서 나 씨는 자못 설렌다.

“진정한 제 공간이 생겨서 기대가 커요. 어떻게 꾸밀까 요즘 많이 고민해요. (웃음) 제 스타일이 살아나게 꾸미고 싶거든요. 이전부터 마음껏 꾸밀 수 있는 방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물론 그 집에선 이사를 자주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사를 자주하면 집을 꾸밀 욕구가 안 생기거든요. 그럼 방을 잠이나 자다 나오는 곳으로 막 대하게 되죠. 근데 집은 여관이 아니잖아요.”

그뿐일까. 나 씨가 좋아하는 자전거를 신나게 탈 수 있는 자전거도로가 근처에 있는 집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잦은 이사에 치이고, 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집주인들에게 치이고, 그것을 방관하는 정부에 치인 그는, 집이 소유가 아닌 (오래 동안 거주할 수 있는) 임대 개념으로 자리잡히길 절실히 바라고 있다.
인권오름 제 92 호 [기사입력] 2008년 02월 26일 22: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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