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1] 이명박 시대 법치의 실체

인권을 밟고 선 '비즈니스 프렌들리'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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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시위의 자유를 축소하는 조치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한국사회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옭아매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알아서 충성하는’ 봉건적 조직 문화풍토가 배어있는 행정부에서는 더욱더 그 변화가 심하다. 출범 전부터 행정부 곳곳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 대한 검증도 없이 대통령의 입맛에 맞게 변화하려는 태도가 짙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떼법 문화 청산’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그동안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해온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는커녕 집회시위 자유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경찰, 검찰, 법무부가 운영안을 내놓는 것은 당연지사다.

새 정부는 폭력과잉진압으로 문제가 된 어청수 경찰청장이 취임하기도 전에 경비부서와 수사부서 등으로 ‘법질서 확립 태스크포스‘를 구성하여 ‘대치 중심’에서 ‘검거 중심‘으로 방향을 바꾸겠다고 하였다. 경찰청의 “폴리스라인 넘는 시위대 전원 사법 처리”, “’체포전담조‘ 투입” 발표에 이어 법무부가 3월 19일 발표한 경찰에 대한 ’과감한 면책보장‘ 등은 시민의 자유권을 축소하는 퇴행적이고 역행적 조치이다.

위 사진:코스콤 농성장 폭력침탈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집회시위의 자유는 시민의 기본권

경찰청이 발표한 ‘체포전담조’는 일명 백골단으로 폭력을 사용해 시위대를 검거했던 전력이 있어 김대중 정부 시절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폐기한 제도이다. 검거를 목적으로 한 부대이다 보니 검거율을 높이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게 되고, 그로 인해 시위대와의 물리적 충돌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집회참가자들이 시위에서 검거될 수 있다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나 행위를 자유롭게 하지 못할 것이기에 집회, 결사의 자유의 기본권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찰의 공무집행에 대한 ‘과감한 면책보장’은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들에게 법의 이름으로 인권침해를 자행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진압 경찰에 대한 과감한 면책’은 , 경찰들에게 무리한 폭력진압을 부추겨 집회참가자들의 신변을 위협하는 조치이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20일 성명을 통해 시위진압 경찰에 대한 면책은 폭력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발상으로 최소한의 민주주의 인식도 결여된 것으로 “이미 방패나 곤봉과 같은 무시무시한 경찰장구를 사용한 경찰의 폭력이 ‘정당행위’라며 불문 처리되고, 무리한 시위 진압 과정에 농민과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법무부의 '상습시위꾼 엄정처리‘ 방침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집회참가자들을 상습시위꾼으로 규정하여 엄정 처리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당사자만이 집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한정하여 우회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또한 시민들은 엄정처리방침 때문에 자신의 의사 표현이 정당하더라도 규제 대상이 될까 두려워 집회 참가를 스스로 억제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집회시위 관련 조치

• 1월 10일 평택미군지기 확장저지 집회를 강제 진압했던 어청수를 후임 경찰청장으로 내정
• 1월 14일 폴리스라인 넘는 시위대 전원 사법 처리 발표, ‘대치 중심’에서 검거 중심‘으로 방향 전환 시사
• 2월 11일 어청수 경찰청장 14대 경찰총장에 취임
• 2월 18일 대통령직 인수위 앞에서 집회하던 전국대학생 교육대책위원회 대학생 연행
•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이라며 경찰들 코스콤 비정규직 농성장 노동자들 감금
• 3월 11일 코스콤 비정규직의 농성장 철거 과정에서 경비용역업법 위반한 용역의 철거과정을 경찰 외면
• 3월 19일 김경한 법무장관 업부보고 시, 떼법 문화 청산을 위해 ‘무관용 원칙’ 및 집회·시위에 진압 경찰 과실에 대한 ‘과감한 면책’, ‘체포전담조’ 운영 발표
• 3월 27일 28일 대학생 등록금인하 집회에 ‘체포전담조’ 투입 발표

‘상습시위꾼 엄정 처리’가 아니라 ‘집회금지 조항’부터 개정해야

집회 시위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기본권이다. 집회시위는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수단이며 권력을 가진 정치세력 및 기업에게 반대의사를 집단적으로 표명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또한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권익과 주장을 표명하여 국민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의사를 형성하는 민주적 공동체를 만드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집회시위 제한은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 존재할 때로 한정할 것을 국제규범은 권고하고 있다.

현행 집시법 5조와 12조의 집회금지조항은 자의적인 면이 많아 불법집회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폭력집회가 많은 게 아니라 경찰이 자의적으로 금지한 집회가 많을 뿐이다. 경찰청 발표대로 불법, 과격시위가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진압 경찰 면책 보장’, ‘체포전담조 운영’이라는 최근의 발표는 사실상 정부가 시민에게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집회를 제한하는 다양한 조치가 아니라 현행 집회금지 조항의 포괄적 규정을 최소한도로 줄일 수 있도록 개정하는 일이다. 명확하지도 않고 현존하지도 않은 위험을 근거로 한 그동안의 과잉금지는 이제 시정되어야 한다.

경찰력을 앞세운 정부정책 강행의지 표현

이명박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불법집회를 들먹이며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를 꾸준히 내놓는 이유는 한반도 대운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과 같이 반대여론이 높은 정부정책을 강행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반대집회를 펼칠 것이 뻔하니 이에 대비하는 장치라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세계인권의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집회시위의 자유는 권력과 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꼭 필요한 권리였다. 대다수 민중들이 글을 모르던 시기 민중들은 언론출판보다 집회시위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지금처럼 언론이 돈 있는 소수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집단적인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집회시위의 자유는 더욱 중요하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국회의원 뽑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다수의 생각을 반영하고 여러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집회시위는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집회를 통해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공론을 형성하는 것은 권장해야지 막아야 할 것이 아니다.

인권 위에 선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

경찰과 법무부가 밝혔듯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기업을 위해서다. 친기업적 법률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각종 규제를 풀겠다고 한다. 대통령이 보기에 노동자들의 시위는 모두 ‘떼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법무부는 “사회적 관심이 노사분규의 발생과 타결에만 집중되고, 주기적 분규 발생 기업에 대한 사회적 제재에 무관심”하다며 단체행동을 제한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 위반에 대한 제재 등 사법처리수단을 만들고 불법파업 주동자에게는 형사재판에서까지 손해배상을 물도록 하겠다고 한다. 단체행동권은 우리나라에 한정되지 않은 전 세계 시민들의 기본적 권리인 노동권임에도 불구하고 ‘떼쓰는’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현 정부의 인권의식은 천박하다.

반면 기업에게는 행정법규 위반 벌금형을 과태료로 대폭 전환함으로써 기업부담을 완화하고 양벌규정을 폐지하는 혜택을 제공하는 등 형평성 없는 법 제정과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법과 질서를 지키면 GDP 1%(8조 원)를 높일 수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이윤 보장을 위해서 시민의 인권은 침해해도 된다는 발상이어서 더욱 우려스럽다.

위 사진:법의 이중 잣대를 보여주는 3월 19일 법무부 업무보고 내용

이명박의 성장지상주의 계산법을 따르더라도 재벌을 규제하고 경제사범을 철저히 관리하는 게 오히려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 97년 IMF 위기 시절 부실한 경영을 해온 재벌기업들에게 쏟아진 국민의 세금인 공적 자금이 150조 6천억 원(2001년 10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발표)이었으며 회수율은 26%인 41조 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도 충분하다. 2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한다면 재벌이 설비투자보다 공기업 민영화 등 기업 인수에 돈을 사용할 것은 뻔하다. 이렇게 되면 97년처럼 중견기업들의 경영안정성은 낮아지고 연쇄부도가능성은 높아져 경제손실액은 더욱 커질 텐데도 필요한 규제를 없애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법치는 인권 보호 장치임을 잊지 말아야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법과 질서의 존중, 즉 법치란 무엇인가. 법치(法治)란 말 그대로 ‘법에 의한 통치’이다. 권력에 의한 자의적인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법에 의해 통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법치는 봉건제 시절 왕과 귀족의 무한 권력이 횡행하여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던 구습을 벗어나하기 위해 근대 민주사회로 오면서 제기된 것이다. 모든 법이 선이라거나 절대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세계인권선언이나 정치적·시민적 권리에 관한 규약(이하 자유권 규약)에서도 죄형법정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법 앞의 평등 등 ‘법’은 권리 표현을 위해 제한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자유권규약 21조나 22조는 법률에 의한 집회 결사의 자유 제한을 허용하지만, ‘국가의 안전·공공의 안녕·공공질서 또는 공중건강과 도덕의 보호, 또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의 보호를 위해 민주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 이외의 어떠한 제한도 이 권리의 행사에 가해지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법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 모두 법치가 아니며 법에 의한 권리 제한 조치조차도 매우 ‘제한적’이어야 한다.

이명박 시대에는 인권을 보호해야 할 법치가 ‘권리 침해의 합법화’를 위한 것으로 왜곡되고 있다. 기업의 이윤이 우선시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하는 법 운영을 위해 법치를 들먹이는 것은 법치주의의 악용이며 아전인수이다.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을 바탕에 두고 기본권을 보장하며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이 전제되어야 한다.

끝으로 법치를 왜곡하는 대통령과 정부에 형식적 법치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전한다. “히틀러의 만행은 당시 합법적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Never forget that everything Hitler did in Germany was legal).”
인권오름 제 97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02일 4: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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