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을 받는 사람이라는 식의 관계는 답답할 수밖에 없어요.”

[기획] 인권운동, 임파워먼트를 만나다 (4-끝) 이주노조를 만나다

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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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는 인권운동. 그러나 현안 대응이나 정책 생산에 매몰되다 보면 정작 인권의 주체인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많이, 자주 만나서 허허로움이 달래지지도 않는다. 인권운동사랑방 건강권 팀은 ‘임파워먼트(empowerment)’ 워크숍을 열어 어떻게 ‘사람’을 만나면 좋을 지에 대해 하나의 실마리를 내어놓았다. <인권오름>은 ‘임파워먼트 워크숍’과 그 준비 과정에서의 인터뷰를 소개해, 정답이 아닌 ‘질문’을 독자들과 나누려고 한다.

인권은 이념을 막론하고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옹호해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되었다. 이렇게 인식되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목숨을 건 외침과 힘겨운 싸움이 있었고 그 고되고 외로웠던 길에 바로 이주노동자들도 서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이정원 교육선전차장과 샤디스(가명) 이주활동가를 만나 오르막 내리막 구불구불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위 사진:2003년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이주노조 건설의 계기가 됐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은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거치면서 이루어낸 조직적 성과라고 들었는데, 1년 넘는 농성투쟁 과정에서 어떤 점들이 이주노조를 건설하게끔 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시기에는 언어 문제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나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안타까운 건 일부 지원단체나 종교단체가 이주노동자들을 대등한 관계 대상으로 설정하기보다는 지원을 받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처음의 관계를 고착시킨다는 점이에요. 이런 관계는 당사자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어떨 때는 큰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반영이 되지 않고, 운영이나 결정구조에서 배제되기 일쑤거든요.

반면 농성 같은 경우는 달랐어요. 물론 많은 한국인 활동가들이 연대해서 결합했지만, 주요한 투쟁의 전술이나 방향들을 이주노동자들이 집단적 토론을 통해 많은 부분 결정했고, 농성단의 핵심 지도부를 포함한 조직 구조에서 이주 동지들이 주요한 리더쉽을 만들어냈어요. 게다가 평등노조 이주지부뿐만 아니라 네팔 투쟁단, 여러 나라 공동체 등 광범위한 이주노동자 집단이 함께 농성에 참여하고 이끌어왔기 때문에 노조 결성 이후에도 내부적으로 다문화에 대한 이해, 타종교와 국적을 가진 조합원에 대한 배려 같은 조직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어요.

결국 고용허가제가 통과되고 농성단이 고립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투쟁을 지속하자고 함께 결정하고 남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농성이 끝나고 나서도 투쟁에서 축적된 역량이나 경험들을 어떻게 더 발전시키고 광범위한 대중의 각성으로 이어갈 것이냐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대답이 이주노조라는 조직으로 표현된 거죠.

위 사진:이주노조 창립총회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제공자(한국인활동가)-수혜자(이주노동자)’의 관계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재구성하여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불합리함에 저항하기 위해 노조라는 형태로 세력화했다는 점에서 임파워먼트의 중요한 사례일 것 같아요.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상시적인 단속과 추방의 위협은 사회적 발언과 실천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서 임파워먼트를 어렵게 만들 것 같아요.

단속이라는 위협은 단순히 외부적 탄압이 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이주노동자 활동의 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노조 지도부가 잡혀가고 강제 출국되는 경우에 받는 타격도 크지만 노조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한쪽에서 열심히 주변 이주노동자들을 조합원들로 조직화해도 다른 한쪽에선 또 다른 조합원들이 지속적으로 단속당하고 출국되는 상황이 이어져오는 거예요. 하다못해 교육국에서도 체계화되어 있는 꾸준한 교육 사업들을 진행하고 싶은데, 당장의 현안들이 그들의 목을 겨눈 칼날로 다가오는 현실에서는 버거운 게 사실이에요.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주체적 특수성과 관련한 어려움들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점들이 있을까요?

우선은 문화적, 언어적 소통이 어려워요.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자기 목소리 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는 얘기도 하고 싶어요. 무슨 무슨 포럼이나 정부·지역 차원의 토론회 같은 데 결합하다 보면 발제부터 토론까지 한국인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에는 어떻게든 이주노동자 한 명이라도 발언의 주체로 세우려고 노력하고 그런 방향에 공감하는 분위기도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토론회가 평일 낮에 열려서 소수의 이주 활동가들밖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이주노동자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고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죠. 더불어 불필요하게 전문적으로 기획하는 경향도 문제라고 봐요. 이를테면 정책의 세세한 내용이라든지 하는 문제는 비단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한국인 활동가들에게도 접근하기 어려운 내용이거든요.

이주노동자라는 정체성 안에는 다양한 층위의 이해와 차이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마다 처한 처지가 다른 건 물론일 테고, 국적별, 문화적 이질감도 있겠죠. 그러다 보면 이주노동자 개개인이 각성하고 조직적으로 세력화하더라도 이주노동자 전체의 이해를 담아내는 요구나 활동은 각 이주노동자 집단 안의 차이들 때문에 위력적으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위 사진:저마다 처지가 달라도 "노동자는 하나다." (출처 : 이주노동자 방송국)
현상적으로 그런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이주 노동자 내부의 다양한 집단을 다르게 대함으로써 이들 사이의 분열을 조장한다는 점이에요. 이주노동자들을 분리시키는 객관적인 요인들이 너무 강해요. 일단 언어적 장벽들은 쉬운 문제가 아니에요. 또 정부가 특정 국가들을 ‘MOU(인력송출양해각서) 국가’로 묶어서 계속 인력을 받아들이면서도 아프리카 같은 나라들은 완전히 배제하는 식의 분열을 만들어 내는 거죠.

‘중국 동포’와 이주노동자 사이도 마찬가지에요. 그들 사이의 차이들보다 공통점이 더 많아요. 문제는 정부가 이 두 집단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거예요. 정부에 공동으로 저항하면 ‘중국 동포’에게만 양보하는 식으로 말이죠. 실제 들여다보면 많은 것을 양보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다보니 특히 ‘중국동포’ 집단과 이주노동자 집단 사이의 이질성이 큰 것처럼 비춰지고 여기에 민족 문제가 더해지면서 그 격차는 더 두드러져 보이죠. ‘중국 동포’들의 경우, 실질적인 문제인 한국 국적의 회복이라든가, 소위 선진국 동포들과는 다른 차별대우, 그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가 자연스럽게 두드러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주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자기들보다 조금 더 나은 처지에 있는데다가 자신들은 한국 민족의 일부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더 거리감이 느껴지는 거죠.

2003년 명동성당 농성 시기에는 ‘중국 동포’들을 비롯한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단일한 사회적 발언과 투쟁을 했었잖아요. 명동성당 농성 사례처럼 단일한 이주노동자 진영이 만들어져 실천을 벌였던 사례가 그 이후엔 없었나요?

명동성당 농성은 특수한 조건이 만들어졌던 이례적인 사례였죠. 당시 그곳에는 매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어요. 자기 공장에서 다른 나라 노동자들을 만나는 경우가 아니면 평소에 만날 일도 없어서 자기 나라 공동체 수준을 넘어서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들 모두가 갖는 단속에 대한 강력한 불만 때문에 집결할 수 있었던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졌던 거죠. 심지어 그 당시에는 ‘중국동포’와 같이 시위를 하기도 했어요.

또 이주노조의 경우에는 ‘중국 동포’들이 투쟁을 하면 그것을 지지하는 입장을 낸다거나 내부 소식지에 싣는다던가, 정부의 분열정책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죠. 여수 보호소 참사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사망자가 ‘중국 동포’였지만 그 공동행동에 참가하기를 주저한다거나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하진 않아요.

위 사진:여수 보호소 참사 당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분노하고 저항했다.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처지가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서로의 상황과 조건을 이해하고 공동의 연대방안을 모색하려는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자칫 당사자주의가 가질 수 있는 배타성과 폐쇄성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긴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언어나 노조 인력난에서 기인하는 문제들도 있긴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 활동가, 노동자들 간의 공감과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사례로 대구의 삼우정밀이라는 한국인 노조가 유니온숍을 쟁취하여 이주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는데, 이 길고 긴 우여곡절의 과정에는 사측의 방해와 협박 속에서도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중간 연결고리의 역할을 해온 한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노조 내부에서도 조직사업 같이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더 잘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한국인 활동가와 이주노동자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이주노조에서 기억에 남는 임파워먼트 사례를 소개해 주세요.

최근에 노동 상담을 통해 만나게 된 한 필리핀 여성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입사 당시에 근무시간이나 수당과 관련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실제로 일을 시작하니까 계약내용이랑 다른 거예요. 그런 계약불이행에 대해 문제의식이 생겼죠. 그러던 와중에 회사가 퇴직하는 이주노동자들한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도 못 받게 되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생겼어요. 그러다가 주변 동료를 통해 우리를 만나게 되었죠. 당시 노조는 ‘당신의 문제의식은 올바르고 한국의 노동법에 비춰 봐도 사업주의 행위는 부당하기 때문에 문제제기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퇴직금을 못 받은 사람들이 노동부에 진정 넣고 퇴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하면 도와주겠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토론을 하면서 ‘매번 개인적으로 진정만 하게 되지 않겠느냐, 공장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 뭔가를 할 수 있다면 사업주로부터 약속을 받아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얘기가 나왔고, 이 여성도 공감했죠. 그리고 퇴직금에서 시작된 문제였지만 일하는 동안 느꼈던 여러 가지 부당한 대우들을 얘기하게 되면서 기왕이면 그 모든 요구들을 같이 모아서 우리의 목소리를 사업주에게 전달하자고 제안했어요.

하지만 더 진전시키진 못했어요. 사업주가 낌새를 챘는지 그 여성의 근무시간을 야간에서 주간으로 바꿔버렸거든요. 야간에 만나던 동료 노동자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려 했던 거죠. 그렇지만 노조는 그 여성과 계속 관계를 이어가고 있고 그 분도 여러 방식으로 노조 활동에 참여하고 있어요. 이주노조 후원 주점 때는 밤새 공장 일을 하고 다시 아침부터 음식을 만들어서 주점에서 팔기도 하고 나눠먹었어요.

열악한 처지의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는 건 어렵겠지만 임파워먼트 실천들을 더욱 많이 만들어가면서 제한된 조건들을 밀어붙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렇죠. 그래서 제도의 폐지가 아닌 작은 부분의 개선이라도 힘들고 어렵지만 계속 요구하고 싸우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불어넣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노조를 지원하는 노무사 분들이랑 ‘이주노동자 가이드북’ 같은 지침서를 상반기에 만들려고 해요. 실천할 수 있는 권리구제 절차라든지 지원요청 방법을 소개하고, 개개인의 경험들을 일반화시켜 자기 사업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발전시켜 보려고 하는 거죠.
인권오름 제 99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15일 21: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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