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의 인권이야기] 우린 대체 어떤 관계야?

동성 결혼, 그보다는 가족구성권을 기획해보기

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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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것만큼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찬성하는 명제가 있을까요?

사랑은 마치 황금열쇠와 같습니다. 무척이나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심지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조차도 한 방에 날려 버릴 정도예요! 성소수자의 억압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별 반응이 없던 사람들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남녀가 무슨 상관입니까?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든,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든 다 똑같은 사랑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전까지 ‘성소수자 반대’를 드높이던 청중들도 잠깐 동안이나마 수긍할 정도니까요. 그렇습니다. 사랑은 정말 ‘요술’입니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차별은 없고 낭만이 흥건합니다.

사랑도 독점이 되나요?

“우리도 (이성애랑 똑같이) 사랑하게 해 주세요!” 이 요구는 성소수자 운동의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결혼제도와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이성애자에게만 독점되어 있으니, 동성애자들이 이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 건 정말 부당한 일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 ‘내가 욕망하는 대상이 누구냐’라는 구별 때문에 윤리적, 사회적인 편견에 시달려야 하고 권리에서 배제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지요. 사회에서 인정하는 최고의 친밀한 관계인 ‘사랑’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남성 아니면 여성이 ‘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남성과 여성이 짝을 지어야만 ‘사랑’의 관계가 인정되고 그것도 결혼을 통해서만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니 사랑은 독점되어 있는 현실이지요. 그러니 이런 현실에서 마땅히 ‘평등한 사랑’에 대한 주문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친밀감에도 위계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랑만이 존재하는 흥건한 낭만 속에서 살진 않습니다. 연인 관계 안에서만 살고 있진 않으니까요. 쉽게는 가족, 친구, 동지 등의 관계도 떠올릴 수 있지요. 가족관계도 모두 똑같은 거리를 가진 건 아니어서, ‘나’를 중심으로 촌수의 거리에 따라 그 사람들이 나의 인생에 관여할 수 있는 정도도 제각각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지향이 아닌 현실에서) 다르고, 이모와 고모가 다르며 삼촌과 외숙모, 형제, 자매들에 대한 친밀감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호명되는 이름에 따라, 인정받는 위치에 따라 나의 인생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부모와 형제자매입니다. 그 다음은 촌수를 따라 가곤 하지요. 우리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친밀감의 정도는 더욱 천차만별이고요.

위 사진:지난 4월 24일 "대안적 가족제도 마련을 위한 기초자료집"이 발표되었다. 자료집은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이 발간했다. (출처 : 발표회 웹 홍보물)

그러나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친밀감과는 별도로 사회적으로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확정되어 있습니다. 나와 내가 새롭게 구성한 의미 있는 관계들, 친밀감은 이 안에서 너무나 무력합니다. 단순히 나와 동성 파트너와의 관계만이 아닙니다. 평생을 같이한 친구나 지기일 수도 있으며, 나와 가치관을 공유하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 계획을 가지고 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들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성소수자에게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나눈 커뮤니티의 친구들, 노후를 약속하며 오랜 시간의 삶을 공유하는 또 다른 가족들이 있습니다만, 이런 관계들을 호명할 이름도, 친밀감을 설명할 언어도, 사회적 지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친밀감들은 (환상으로 존재하는) 온전한 이성애자로 위장하는 나의 삶에서 모두 누락되어 버리고 인생의 중요한 국면에서 배제되기 일쑤입니다. 정말 외롭고 서글픈 일이죠. 내가 그를, 그녀를 혹은 그(녀)들과 인생을 공유하고 싶다는데 그들에게 마땅히 부여할 친밀감의 위치가 없다니요! 서로의 인생에 깊숙이 관여해 주기를 바라는 의미 있는 존재들과의 관계를, 우리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다양한 친밀감이 공존하는 문화와 체계에 대한 권리

기존의 (일대일) 이성애혼과 그것을 둘러싼 친족관계들은 우리 개개인에게, 성소수자를 포함하여 새로운 관계를 기획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요된 친밀감 안에 살기를 요구합니다. 특히 강력한 젠더 이분법에 근거한 가족체계는 내가 어떤 사람에게는 돌봄을, 어떤 사람에게는 경제적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는 친밀감의 기대 내용마저 정의하곤 하지요. 어머니가 둘이라거나 아버지가 둘이라거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닌 육아의 주체는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이렇듯 성별화 되고 혈연 중심으로 짜인 강고한 가족체계 안에서 성소수자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관계들을 기획하고 구성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성전환 중인 누군가가 가족 안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 아버지, 오빠, 누나 등의 호칭은 다른 의미들을 가져야 하지요. 결국, 성소수자가 이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동성 결혼, 혹은 파트너와 사랑할 권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삶에 의미 있는 존재들을 만들어가고 선택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와 체계를 만드는 것인 셈이죠. 다양한 친밀감과 그 관계들이 인정받을 권리, 성소수자의 무지갯빛은 독점적인 ‘사랑’을 넘어선 다양한 친밀감의 영역에 대한 새로운 기획을 제안하고 있는 겁니다.
덧붙이는 글
수수 님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01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29일 1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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