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거리로, 차라리 잘됐다고 하자

[인권영화제를 허하라 ①]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최성규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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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주> 1996년 표현의 자유를 기치로 닻을 올린 인권영화제가 다시 거리로 나섭니다. 국가의 사전검열은 형식상 폐지되었으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여전히 인권영화제를 정부의 규제 대상으로 두고 있습니다. 인권영화제는 상영관을 허락하지 않는 현실에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표현의 자유,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외치며 거리에서 여러분을 만나려고 합니다. 인권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인권오름>은 인권영화제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온, 그리고 인권영화제를 기다리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3주에 걸쳐 들어봅니다.

얼마 전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역대 최다 상영작과 최다 관객 기록을 수립하면서. 그리고 12회를 맞이하는 인권영화제는 상영 등급 분류를 요구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때문에 길거리에 돗자리를 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영화제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전주 영화제에 다녀온 얘기를 잠시 해야겠다. 전국에서 몰려든 전주영화제 관객들이 전주 시내 숙박업소와 음식점을 접수하면서 역대 기록을 갱신해 가는 동안, 아무런 준비도 없이 원정을 떠난 나는 끊임없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만큼 치열한 예매경쟁과 스케줄 관리에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 결국에는 시간마다 남아있는 표를 받아 입장을 하고 잠자리는 밤새 영화를 본다는 상영관에서 해결했다. 그 중 자정부터 6시간 동안 상영하는 심야프로그램은 원정여행의 최고였다. 아무 사연도 없이 신체 절단과 피로 범벅돼 흘러간 6시간. 잔혹한 영상보다 잠을 잘 수 없게 했던 건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었다.

위 사진:최다 관객 기록을 수립한 전주국제영화제

하루의 피로가 몰려오는 늦은 시간, 그것도 빡빡한 상영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사람들이면 더욱 피곤할 만도 하건만 상영관 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면서 느닷없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적절한(?) 장면에서 관객들은 열광을 했고 영화가 끝날 즈음엔 스포츠 응원단과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1,500명의 관객이 모두 심야 호러 매니아? 서로들 황당해 하면서도 따라서 박수를 치고, 졸다가도 깨서 즐거워하는 그 모습은 매니아 집단이라기보다는 심야-호러-금기-일탈로 이어진, 영화제 관객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그건 컬트(Cult)였다!

인권 영화는 컬트 영화?

컬트 영화(Cult Movie)의 ‘컬트’라는 말은 종교적인 예배, 숭배, 사이비 종교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 영화계에서는 소수 애호가들로부터 선택되어 열광적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작품이나 그 같은 현상을 지칭한다. 1960~7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심야 소극장을 중심으로 하나의 영화에 공감하는 하위문화가 성행했는데 종교, 규범, 사회윤리, 금기 등을 깨뜨리는 체제 전복적인 소재를 담은 B급 영화에 열광하는 소수의 문화적 현상을 두고 ‘컬트문화’라고 한다는 것이다.

영화 산업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국내외 영화제들이 생겨나고 회를 거듭하고 있지만 인권 영화제의 인지도는 타 영화제에 비해 너무나 낮은 실정이다. 국가에 의한 사전 검열, 물리적 제재로 탄압받던 인권영화제는 이제는 자본의 교묘한 탄압으로 더욱 방해를 받고 있다. ‘표현의 자유 쟁취’, ‘인권감수성 확산’, ‘대안영상의 발굴’이라는 인권영화제 정신에 따라 기업과 정부의 지원을 거부하면서도 전회 무료상영을 지켜오고 있는 영화제의 재정적 어려움은 불 보듯 뻔하다. 거기에 문화 향유권을 보호하고, 사회공공성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라는 등급 심의제는 오히려 인권영화가 위험하다는 판결을 내린 셈이 되었다. 자본의 질서, 무한 경쟁의 시대에 때로는 금기가 되는 인권.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조용히 가두어지고, 작고 조용한 공간에서만 허용된 해방의 시간은 안타깝게도 컬트와 닮아 있다. 각종 규제와 장벽을 뚫고 한국사회에서 인권영화를 보는 일은 컬트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인권 영화제는 인권 운동이다

지역 영화제는 서울에 비해 그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 지역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시민사회단체가 힘겹게 준비해오고 있지만 인지도나 관객 수는 서울에서 열리는 인권영화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인권을 상품화하려는 지자체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려는 조직위원회의 노력은 단순히 영화제 살림을 꾸려가는 일일 수만은 없다.

일례로 지난해 광주 시청자 미디어 센터에서 열린 제12회 광주인권영화제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 인권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면서 제작했던 메인 현수막의 색깔을 두고 문제가 불거진 사건이 있다. 붉은 색을 사용한 현수막이 미디어 센터를 이용하는 노인, 어린이들에게 선정적이고 이념적이어서 거부감을 준다는 이유였다. 현수막을 다시 파란색으로 교체해야만 영화제를 치룰 수 있다는 센터 측의 태도는 너무나 강경했고 표현의 자유와 미디어 공공성 확보를 위해 만들어진 시청자 미디어 센터는 오히려 앞장서서 사전검열의 칼을 휘두르고 있는 꼴이었다.

수원인권영화제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직접 행동이 있어왔다. 제10회 수원인권영화제 조직위원회는 경기도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기문화재단의 편협한 문화적 잣대를 비판하며 지원금 전액을 거부하고 규탄행동을 벌인 바 있다. 경기 민언련의 언론문화 강좌 프로그램을 강사진의 이념성이 문제가 된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행사를 방해했던 것. 이에 수원인권영화제 조직위원회는 관련 기금을 전액 반납하고 시민들의 후원으로만 행사를 치러내고 운영하는 독립적 체제로 전환했다.

위 사진:각종 탄압 속에서도 인권영화제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이 인권영화제를 만들어왔다.

저항의 행진이 다시 상영관을 접수하는 날을 상상한다

인권영화제가 다시 거리로 나가게 된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주식회사’ 시대를 맞이해 인권의 총체적 위기가 드러나고 있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시장화하겠다는 새로운 정부는 국민 건강을 담보로 쇠고기 장사를 하고, 땅을 파헤쳐 운하를 만들어 배는 산으로 보내겠다고 한다. 상품이 되지 않는 영화제, 경쟁을 방해하는 인권은 위험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고, 영화제뿐만 아니라 통일, 민중 등의 단어가 들어간 행사는 잇달아 불허 방침을 내고 있다. 등급 심의제의 핵심은 그런 가치들이 청소년들에게 꼭꼭 숨겨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요즘 같아선 뉴스에도 등급을 매겨야 할 판이다.

넘쳐나는 상영관에도 설 자리를 잃은 인권영화제를 차라리 환영한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심야 상영관에 갇혀서도 금기를 깨고 환호했던 진정한 컬트 정신이 필요한 때다. 그리고 뛰쳐나오길 기대한다. 스크린 속 영상과 극장 구경을 하러 가던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거리에서 열광하고 감동하는 퍼포먼스가 되는 일을 차라리 잘됐다고 하자.

영화는 빛이다. 빛을 막은 곳에서도 그대로 빛날 뿐이다.

덧붙이는 글
최성규 님은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03 호 [기사입력] 2008년 05월 13일 16: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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