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학습한다는 것은 평화를 살아내는 능력을 기르는 것

[교과서를 던져라 ①] 도덕 교과서 뜯어보기 (2)

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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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폭력은 그 내용에서 상반되는 가치들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 가치들이 어떻게 작동되고 사회화 되어 가는 지에서도 크나큰 차이를 보인다. 폭력은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사고체계와 시스템이다. 폭력은 내용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어떤 것’이며 사회화 되는 과정을 보자면 일방적인 관계맺음이다. 고정되어 있는 가치는 다양한 생각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치가 취사선택되는 과정은 철저히 권력의 작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평화는 폭력처럼 명확하지 않다. 정해져 있는 유토피아의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경합하고 성찰하고 극복되는 과정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나 아무리 좋은 행동도 절대적 진리로 강요된다면 그것은 결코 평화라 이름 붙일 수 없다.

그러므로 평화는 고정된 가치체계가 아니라 다양성에 기반을 둔 과정이다. 평화는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화의 과정도 일방적인 전달이나 주입이 아니라 서로간의 쌍방향의 만남과 그를 통한 변화와 극복이다. 평화는 어떤 고정된 가치를 담은 언어로 정의내릴 수 없고, 그 자체를 살아내는 것으로 의미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평화를 학습(學習)한다는 것은 가치를 주입하거나 전달하는 것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사상이라고 하더라도 지식의 전달로 이루어진 것은 그저 머릿속의 지식일 뿐이다. 평화를 학습한다는 것은 평화를 살아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경합하는 과정으로서의 평화를 연습하는 것이 평화를 학습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미 모든 것은 정해져 있었다. 우리가 교과서를 펼치는 순간, 모든 가치판단은 정해져있고 그저 우리에게 흘러들어올 뿐이다. 물론 현재 시행 중인 7차 교육과정의 도덕·윤리과목 교과서는 과거의 교과서들처럼 노골적인 단어들로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들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표현이 좀 더 세련되었다 뿐이지 여전히 모든 가치판단은 교과서가 독점하고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미리 단정해버림으로써 다양한 의견들이 경합을 벌일 수 있는 과정을 삭제해버리고 있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 여러 가치들과의 다층적인 물음이 충돌되는 현장이 바로 평화가 살아가는 터전이다. 모든 가치가 정해져있는 도덕교과서는 특정한 가치를 다양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에는 효과적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평화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있다.

경합하는 과정으로서의 평화를 학습하기 위해서는 그 이데올로기의 내용이 아무리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이라고 하더라도 주입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완벽한 진리일 수 없다는 면에서 보더라도 이데올로기의 주입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이미 가치판단이 완료된 채 생각해 볼 기회도 주지 않고 그 가치들을 강제로 주입한다면 그러한 교육에서 키워지는 인간은 순종과 복종에 익숙한 인간형이 될 것이다. 특히나 도덕교육에서는 탈이데올로기 교육을 통해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도덕교육은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도덕교육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물론 도덕교과서가 내포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내용들도 문제가 많지만 이데올로기의 주입방식도 문제이다. 닥치고 암기를 강요하는 방식의 도덕교육은 평화를 학습할 수 없다.

삶과 괴리되어 있는 교과서

도덕교과서의 내용뿐만 아니라 수업의 진행방식 자체가 이미 일방향적인 전달에 용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네모난 각이 진 교실에서 학생들은 열을 맞춰 교사에게 주목하고 있어야 한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 자라날 수 있는 것은 권력에 순종하는 복종의 능력뿐이다. 교과서의 구성 자체도 많은 생각들이 토론되기 힘든 구성이다. 교과서에서 탐구과제로, 혹은 생각해볼 문제로 던져주는 것들은 다양한 생각들의 난장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 정해진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속임수이다. 평화롭지 못한 교실의 구성과 자유롭지 못한 교과서의 사상적 궤적은 도덕교과 수업을 통해 평화를 경험하거나 연습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평화가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유토피아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도덕교과서도 훌륭한 평화의 교재이다. 하지만 평화는 완전무결하고 깨끗한 어떤 곳이나 어떤 상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세상에서 실현하고자하는 노력이어야 한다. 삶과 괴리된 어떠한 생각이나 상상력도 사람들의 삶이 평화를 닮아 가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평화를 학습하는 것, 평화를 연습하는 것은 아주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덕교과서는 정말이지 ‘도덕교과서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다.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고 일상과 조응하지 못한 생각들은 결국 지난 세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가치체계를 유지할 뿐이다. 결국 도덕교과서는 일상이 충돌하고 극복되는 ‘평화의 장’을 서술하지 못하고 당대인의 삶을 억압하는 과거의 낡은 가치들을 옹호하며 사람들에게 그것을 강요하게 된다.

교과서의 이분법과 위선적인 중립

도덕교과서는 너무 쉽게도 세상을 둘로 나눈다. 이분법은 위험한 사고체계다. 복잡다단한 인간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을 이분법으로 단순화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왜곡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왜곡은 일반적으로 ‘우리’를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다. 이 때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단순화한 논리가 특정부분을 과대해석하거나 삭제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여지가 크고, 주로 ‘우리’에 대한 합리화의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더욱 무서운 점은 단순화가 작동하는 권력구조라는 점이다. 무수히 많은 측면들은 거세당하고 가장 강력한 두 가지의 특징만을 강요하는 것이 이분법이다. 이분법은 사회적인 소수자들의 존재에 커다란 위협이 되는 사고방식이다. 도덕교과서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도덕교과서를 통해서 평화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들을 삭제하는 방법만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적 서술방식은 중립을 가장한다는 것이다. 도덕교과서는 갈등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식으로 서술하면서 가치중립적인 몸짓을 취한다. 하지만 갈등과 충돌은 평화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성찰하지 않고 경합하지 않으면 굳이 갈등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위선적인 중립을 가장한 서술방식은 결국 이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학습시킬 뿐이다. 갈등하지 않고 단순하고 명쾌한 세상인식이 과연 누구에게만 좋은 일인지, 누구에게 평화이고 누구에게 폭력인지 굳이 어렵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거세당한 평화능력, 고통의 감수성을 공유하라

도덕·윤리교과서가 어떻게 평화가 아닌 폭력의 방식을 가르치는지 살펴보았다. 이미 모든 가치판단은 정해져 있고, 그 가치들을 강제로 암기하게 만드는 도덕교육. 이데올로기를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삭제해버리고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사고방식들과 이분법을 무의식에 아로새기는 도덕교육.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너와 나를 구분하고, 나를 합리화하고, 획일적인 사고를 전달하는 능력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다. 도덕교육이 권력에 대한 복종을 학습시키고 평화능력을 삭제할수록 학교는 평화를 연습하는 공간이 아니라 폭력과 억압을 연습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여러 방식의 삶에 대해서 공감하고 서로를 극복할 수 있는 지적인 자극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는 것. 도덕교육이 평화를 학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들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용석 님은 전쟁없는 세상(http://withoutwar.org)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03 호 [기사입력] 2008년 05월 13일 17: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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