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교과서야 기다려라, 똥떡 프로젝트가 간다!

[교과서를 던져라 ①] 도덕 교과서 뜯어보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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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떡, 똥먹자, 도날드덕, 트럭…….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학교를 다녀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정답’을 맞출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도덕교과서의 제목을 변형한 거죠.

‘도덕’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알려주는 교과서입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위인들이 등장하여 금과옥조 같은 명언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러나 ‘도덕’은 다른 어떤 교과서보다 많은 낙서로 도배되어 있죠. 제목뿐만 아니라 도덕 교과서에 등장하는 훌륭한 어르신들의 초상도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원효대사가 스킨헤드족이 되고, 안창호 선생이 해적이 되고, 루소가 아줌마가 되는 정도는 가벼운 낙서에 속합니다.


낙서로만 그쳐서는 안 될 무서운 교과서

유독 도덕 교과서에 낙서가 많은 이유를 낙서하기 쉬운(?) 책의 구성 때문이라고 가벼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많은 학생들이 도덕 교과서의 내용을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학생들은 도덕 교과서의 내용을 비웃습니다. 학생들이 도덕 교과서를 비웃는 것을 도덕의 위기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실제로 법과 도덕보다는 폭력이 앞서서 사회를 이끌어온 탓에 생겨난 도덕불감증은 그런 어른들을 보고 자라난 학생들의 삶 역시 뿌리 깊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도덕 교과서를 업신여기는 이유는 오히려 단순합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도덕 교과서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고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학생들도 바보는 아니니 그걸 모를 리 없겠죠.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도덕 교과서 폐지를 주장하는 진짜 이유는 아닙니다. 학생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도덕 교과서의 내용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랑비에 옷 젖듯 제도 교육 12년에 걸쳐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들려는 도덕 교과서의 의식화 작업은 우리 사회에서 꽤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의 의식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고 있습니다. 당신은 절대로 아니라구요? 도덕 교과서 따윈 개나 주라고 눈을 감아버리는 당신, 그런 당신이 바로 도덕 교과서의 덫에 걸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도덕 교과서의 가장 무서운 힘은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새로운 모색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요?

도덕 교과서 폐지를 제안한 ‘똥떡 프로젝트’

교육공동체 ‘나다’는 몇 년 전 ‘똥떡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내년부터 8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마당에, 7차 교육과정 초반에 붙잡고 변비 앓듯 끙끙거렸던 똥떡 프로젝트, 즉 도덕 교과서 폐지 운동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니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똥떡 프로젝트의 첫 작업으로 2003년에 추진했던 책 출판은 서문만 ‘나다’의 회지에 실리고 나머지는 A4 백여 페이지의 투박한 글 뭉텅이로 남겨진 채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2004년에는 집회에 나가서 선전 작업도 몇 번 했던 것 같은데 이후로는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것도 우리의 노력이 아니었습니다. 2006년 초 전여옥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인사 청문회 때 “도덕 교과서 폐지를 주장하는 편향적인 교육단체”인 나다를 거론했을 때 그나마 사람들에게 조금 알려졌습니다.

그 사이 ‘나다’에서 일하던 누군가와 격론을 벌이기도 했던 김상봉 교수가 『도덕교육과 파시즘』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김상봉 교수는 책에서 도덕교육을 ‘노예교육’이라고 규정하고 “한국 사회의 참된 진보를 위해서는 우리의 정신을 부패시키는 노예적인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너무나 지당한 말씀이지요. 조금 더 살펴보자면, 도덕교과서가 국가주의를 강권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며 애국·애족을 “어머니 품에 안겨서 느꼈던 포근함이나 안도감”에 비유하며 국민을 보호하고 은혜를 베푸는 존재로 국가를 그려내어 그 자연스러움과 모호함에 기대어 국가주의를 정당화하고,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에 앞서 나라와 겨레를 먼저 생각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개인이나 집단의 희생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인 주장을 도덕교과서는 서슴없이 하고 있다고 밝힙니다. 덧붙여 국가의 의무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다시피 하고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기술되고 있다고 강변하며 도덕 교과서가 기대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혈연적 유대감(가족주의)과 국수주의에 가까운 자부심(자민족 중심주의)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청소년들을 “언제라도 민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전체주의적 인간으로 키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청소년이 삶과 교육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너무나 공감이 가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나다’에서 쓰고 싶었던 책은 청소년들이 신나게 읽으며 도덕 교과서의 허구성과 폭력성을 깨닫고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는데, 김상봉 교수의 학술적인 책은 도덕 교과서 비판의 주체를 지식인과 교사 집단으로 한정시키는 느낌이었습니다. 현장의 교사들이 도덕 교과서 폐지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긴 했지만, 7차 교육과정에서 잠깐 논의되었던 도덕 교과서 폐지의 발목을 잡은 것도 현장의 교사들이었습니다. 두발과 교복처럼 청소년들의 도덕마저 획일화시키려는 국가주의 교육보다 자신의 밥그릇이 먼저였던 거죠. 김상봉 교수는 책 마지막에 “국가가 더 이상 도덕 교과서 집필권을 행사하지 않을 때, 그리하여 모두가 모든 방식으로 도덕 교과서를 쓸 수 있을 때” 참된 도덕 교육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교사들이 청소년들을 교육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교사 모두가 쓰는 모든 방식이 수많은 폭력이 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요?

지식인과 교사 집단에 의해 도덕 교과서가 사라진다 해도, 씁쓸함이 남습니다. 읽으면 콧방귀만 나오는 수치스런 교과서 하나도 청소년 단 한 사람의 힘 하나 보태지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면 청소년이 삶과 교육의 주체로 설 수 있는 날은 도대체 언제일까요? 그런 교육현실이 도덕 교과서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아닐까요? 심지어 국가가 나서서 먼저 사라지게 만들어준다면 어떨까요? 무식한 교과서 하나가 사라지고 더욱 교활한 방식으로 다른 교과들과 교육 현장에 국가주의가 스며든다면, 도덕 교과서 폐지보다 훨씬 힘든 싸움이 올바른 교육을 꿈꾸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위 사진:교육공동체 '나다' 홈페이지.

청소년들과 좀 더 비웃고 좀 더 즐겨서

‘나다’가 힘도 없고 능력이 없어서 똥떡 프로젝트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분명히 비판 받아야 마땅하지만, 일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처음 ‘똥떡’ 얘기를 들려주었을 때 청소년들이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모릅니다. 비록 유치한 교과서라고는 하지만 그 속에 묻어있는 어른들과 세상의 권위가 허구라는 것이 까발려질 때 청소년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도덕 교과서를 뒤지며 말도 안 되는 부분을 함께 찾는 작업도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도덕 교과서를 찢어발겨 하늘로 뿌릴 때 청소년들의 환호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똥떡 프로젝트는 분명 너무나 매력적인 작업입니다.

도덕 교과서가 8차 교육과정에서 살아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도덕 교과서 폐지 운동은 단순히 도덕 교과서 한 권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주의 교육의 상징인 도덕을 공격함으로써 교육판 전체를 도마 위에 올리려는 기획이었습니다. 위에서 말했지만 도덕이 슬그머니 사라지면 국가주의는 다른 교과서들로 스물스물 숨어들어갈 것입니다. 좀 더 노골적인 상징을 좀 더 많은 청소년들과 좀 더 비웃고 좀 더 즐겨서 그들 스스로가 ‘똥떡’을 넘어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같이 싸울 수 있는 청소년 동지들이 조금씩은 나다를 찾아오는 요즈음, 8차 교육과정의 똥떡이 마냥 기다려집니다.
덧붙이는 글
변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103 호 [기사입력] 2008년 05월 13일 17: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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