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숙의 인권이야기] 밤길이 위험하면, 니들부터 들어가!

여성들이 되찾는 밤거리, 달빛시위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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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밤길을 되찾아주자는 취지로 개최된 ‘달빛시위’는 벌써 다섯 번째를 맞이했다. 얼핏 듣거나 여성이 아닌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얘기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성들이 밤길 다니기를 스스로 어려워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만류한다는 사실을 안다. 여성들은 10대가 되기 이전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밤길을 다니다 성폭행 다닐 우려가 있으니 다니지 말라는 당부와 밤에 다닐 때는 옷을 ‘단정히’ 입으라는 주의를 듣곤 한다. 나도 수없이 가족들에게 들어왔던 말이다.

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까

물론 그러한 당부와 주의들이 여성들- 누구의 아내, 애인, 딸, 친구, 누나, 동생인 그녀들-을 위해 하는 말임은 안다. 하지만 왜 폭력피해자가 조심해야 하는 걸까? 경찰이 하는 폭력예방 캠페인도 가해를 막는데 주력한다. 그래서 무기소지를 막고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교육을 한다. 그런데 왜 성폭력에 있어서는 유독 가해자들을 교육시키거나 가해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보다는 피해자들에게 행동을 조심하라며 ‘옷을 입을 자유’, ‘특정 시간에 걸어 다닐 자유’마저 제한하는 걸까?

위 사진:한국에서는 여전히 성폭력 사건에 대해 여성의 책임을 묻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건 아마도 약자들의 행동을 통제하기가 더욱 쉽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며, 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기득권을 가진 남성 가부장 권력이 작동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여기에는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해 가해진 낙인인 ‘성폭력을 유발한 자’라는 가부장적 시선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보호가 아니라 자유를 원한다

보호는 언제나 통제를 조건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주노동자들을 추방하기 전에 잠시 가둬두는 곳의 이름이 바로 ‘외국인 보호소’이다. 많은 여성들이 10대 시절에는 아빠와 오빠로부터 ‘어떻게 행동하고 어디를 다녀야 하는지’를 들으면서 그들이 여성들을 보호해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자라왔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본 현실은 그들도 나약한 ‘인간’이며 그들도 ‘성폭력’을 무의식중에 저지르는 ‘학습된 남성’이라는 것이었다.

성폭력은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며 나아가 불평등한 사회적 지위의 권력관계 또는 국가 간 권력관계 등에 의해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이다. 폭력이 저질러지는 구조를 보지 못하면 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 가부장적 질서가 온존하는 사회에서 가부장적 구조를 비판하고 그에 맞서는 행동을 하지 않은 채 기획되는 행동만으로는 성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우월한 남성과 열등한 여성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에서 ‘보호’해주겠다는 선의는 보호가 아니라 ‘열등한 여성을 재생산하는 통제’로 작동한다. 그러하기에 “선의니까 이해해”가 아니라 그 ‘선의 뒤에 감춰진 구조적 폭력’에 대해 그들과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선의가 바로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과 통제’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또한 보호해주겠다는 논리로 우리가 누려야 할 자유를 제한하지 말라고 얘기해야 한다. 1979년에 만들어진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 5조 (가)에는 ‘일방의 성이 열등 또는 우수하다는 관념 또는 남성과 여성의 고정적 역할에 근거한 편견, 관습 및 기타 모든 관행을 없앨 목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문화적 행동양식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평등을 주장했던 1993년 비엔나 선언(여성폭력철폐선언)은 성폭력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인권의 보편성, 불가양성과 상호의존성을 여성인권에도 적용한 것이다. 선언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공적 혹은 사적 생활에서 발생하는 여성에게 신체적 성적 혹은 심리적 해악이나 고통을 주거나 줄 수 있는 성별에 기초한(gender-based) 폭력행위,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하겠다는 협박, 또는 강압 또는 자유의 박탈”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청에서 나온 성폭력 대응요령에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여성들이 성범죄에 표적이 된다’고 하며 책임을 전가하는가 하면 ‘여성이 자유롭게 옷을 입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대처방법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심지어 몇 년 전 천안에서 여고생 납치사건이 나자 경찰은 ‘여성은 밤에 다니지 말자’는 현수막을 걸며 성차별적인 캠페인을 당당하게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성차별에 근거한 성폭력 원인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권리를 차별적으로 제한하는 관행이다. 그래서 달빛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은 남성권력을 향해 외쳤다. “밤길이 위험하면, 니들부터 들어가라!”

위 사진:달빛 시위에 모인 여성들.

학습된 공포와 무기력을 깨뜨리는 주체적 실천이 필요하다

촛불 시위가 밤늦게까지 계속되자 집회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추근거림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일부 여성들은 “성추행 때문에 시위를 일찍 끝내야 되지 않겠냐”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녀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사실 나도 아직까지 야밤에 낯선 곳으로 택시를 혼자 타고 갈 때는 무서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여성들이 움츠린다고 성폭력이 해결될까?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당해온 수많은 성폭력은 밤에만 있지 않았고, 나의 옷차림과 무관하게 가해자의 목적과 의도에 의해 발생했다. 물론 성폭력에 대한 공포는 성폭력 피해자 외에도 주변으로 확산된다. 또한 이러한 공포와 무기력은 여성들을 ‘스스로는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학습시켜 남성권력이 통제하기 쉽게 만든다. 이처럼 무기력과 공포는 가부장 질서에 의해 학습되고 확대 재생산된다.

인권의 역사는 권리를 누리기 위해 백인 남성에 한정된 인간군이 아닌 사람들이 ‘인간’으로 진입하기 위해 온몸 부딪쳐 확장시켜온 투쟁의 역사다. 인권의 역사에서 성폭력이 인권침해라는 생각,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여성들의 권리가 인지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실제 여성에 대한 폭력 규정은 있었지만 성에 근거한 폭력, 성폭력은 매우 사적인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993년 비엔나회의를 거쳐 1995년 UN 북경 여성회의에서 여성의 성의 권리를 추가하였다. “여성의 인권은 성적, 재생산의 건강, 강제·차별·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하는 성과 관련한 사안에 자유로이 책임 있게 규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고 하였다. 이는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구체화한 것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기구의 역할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에 관한 선택의정서’의 주요 내용은 폭력에 희생된 여성들이 탄원을 할 수 있는 개인통보제도와 당사국이 심각하고 조직적으로 여성인권을 침해하는 경우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이를 조사할 수 있는 조사권이다. 이는 더 이상 성폭력을 사적인 문제로 보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기구가 나서서 여성차별적인 제도와 교육, 관행을 바꿀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부장적 남성지배문화가 어느 나라보다 강한 한국에서 이를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들을 집행하고 있지는 못하며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한국 현실에서 제도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여성들이 자기 몸에 대한 권리, 신체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싸움을 통해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의 힘에 대해 믿음을 갖고 무력감을 극복하고 자아존중감을 되찾기 위한 실천들을 줄기차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달빛시위는 ‘여성의 힘을 기르는’ 확실한 싸움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11 호 [기사입력] 2008년 07월 09일 15: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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