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자, ‘인권’을 이야기 하다

[그대 건강권은 안녕한가③]

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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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건강시대’이다. 각종 미디어들은 다양한 건강 관련 프로그램과 기사들을 쏟아내며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건강에 좋다는 습관과 음식들을 소개해준다. ‘웰빙’, ‘친환경’이란 단어는 시장에서 곧 ‘몸에 좋은 것’이란 말로 등치되어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가 하면 뚱뚱한 사람이 아니라 해도 식습관 개선과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지 못하면 자기관리가 부족한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이런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건강한’ 생활양식을 통해 예방ㆍ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소위 성인병이라고 불리는 만성질환이 그것이다.

결과가 나쁜 만성질환자…고약한 환자들

만성질환은 불명확한 원인과 복합적인 위험요인들이 작용하여 걸리게 되고 보통 3개월 이상의 오랜 경과를 취하며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지만 완전히 낫기는 어려운 병들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병에 걸리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치명적인 합병증을 막기 위한 관리가 중요시 된다. 흔히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뇌졸중, 관절염 같은 병들을 일컫지만 그 외 소화성 궤양, 희귀 난치성 질환 등 그 종류는 수십 가지에 이른다.

헌데, 만성질환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비교적 최근의 경향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의료체계는 감염성 질환과 같은 급성질환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도록 발달되었으며 유엔이나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국제기구들도 주로 HIV/AIDS나 말라리아, 결핵 같은 전염성 질병 문제의 해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현실에서 만성질환에 걸린 환자들에 대한 접근은 여전히 진료실-치료 중심적이며 투약, 일방적인 교육과 상담방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하다보니 복잡한 처방, 경제적 어려움, 환경적 조건 등으로 인해 생활양식의 개선과 건강 결과의 개선을 이뤄내지 못한 만성질환자들은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 ‘고약한 환자’로 취급받기 일쑤이다.

끊어내기 어려운 만성질환과 빈곤의 악순환

빈곤한 계층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에 비해 건강수준이 낮고 의료이용도 더 낮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특히 만성질환은 빈곤과 끈끈한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빈곤으로 인한 물질적 결핍 및 정신적 스트레스는 흡연, 음주, 불규칙한 식사 등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을 유발하며 유해한 환경(주거, 위생, 노동 등)을 초래한다. 이는 만성질환의 유발ㆍ악화요인으로 작용하며 의료서비스 이용의 접근도가 낮은 계층에선 더욱 합병증의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병원 치료와 비의료적 생활관리가 함께 요구되는 만성질환자들은 많은 의료비 부담을 지게 되면서 식품, 위생, 의료서비스 등을 구매할 수 없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당뇨환자가 발에 생길 감염을 막기 위해선 발모양에 맞추어 밑창이 변형되는 신발을 신는 것이 좋다며 권유받지만 당뇨치료에 좋다는 생선 하나 사먹기도 빠듯한 가난한 만성질환자들에게 특수 신발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적인 건강 돌봄이 필요

하기에 만성질환자들의 실질적인 건강개선을 위해선 ‘진료실 치료’ 중심의 접근보다 ‘지역사회 건강 돌봄’ 중심의 접근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물론 최근에는 보건소처럼 지역에 기반을 둔 의료기관을 통해 만성질환자 관리가 진행된다고 하지만 실제 환자의 역할이 과소평가 되어 피동적인 교육의 대상에 머무른다거나 통합적인 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거, 위생, 간병, 사회적 지지 등 건강한 삶의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들이 입체적으로 함께 이뤄지고 환자들은 질병 치유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을 지닌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된다. 그들이 건강을 개선하고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보건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지역건강 공동체를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만성질환자들의 민주적 참여와 역량강화

한편, 만성질환자들의 건강개선을 위해선 ‘스스로 돌보기(self-care)‘의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 만성질환 관리의 대부분이 병원 밖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뿐더러 환자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의 고취가 건강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만성질환자들의 자력 의지와 자기 결정권을 긍정하고 지지하기 위한 정책 참여 및 상호보완적인 의사-환자 관계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선 만성질환자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치료방향 결정에 환자의 역할을 증대시켜야 한다. 하지만 의료의 상품화와 건강 불평등이 심각해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시장에서 소외된 계층의 민주적 참여 구조는 미비하다. 더욱이 만성질환자의 경우, 의사의 조언과 조력을 받으면서도 치료프로그램을 원칙적으로 환자 스스로 실행해야 하기 때문에 참여의 배제로 인한 자존감의 위축은 스스로 건강에 관한 욕구를 실현시킨다는 건강권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의 역할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존중이 곧 스스로 돌보기에 대한 권장으로 해석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일수록 사회구조적인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 만성질환은 자기 관리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스스로 돌보기에 대한 권장은 광범위한 사회적 박탈과 여타 사회적 문제들을 개인의 나태함과 불철저함으로 돌리는 기제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의료의 수혜자가 아닌 선택과 참여의 주체로, 그것이 최고의 처방

이제는 만성질환자들을 단순히 치료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이들을 둘러싼 여러 가지 사회적 처지와 환경들을 고려한 통합적인 지원을 제공받는 건강 주체로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보건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인권기준의 제공이 필요함에 대해선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의료의 수혜자가 아닌 참여와 선택의 주체로 세우는 인권적 접근은 만성질환자들을 질환자라는 이유로 위축되고 소극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존엄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처방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성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16 호 [기사입력] 2008년 08월 13일 12: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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