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보자 폴짝] “일등 천국! 꼴찌 지옥!”

어떤 학부모 단체들의 탐욕스러움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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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인 미림이는 밥을 먹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버릇처럼 한 숨을 쉬는 날이 많아졌다. 초・중・고 학생들의 학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본다며 전국의 초등 3, 초등 6, 중등 3, 고등 1학년 학생들에게 한꺼번에 똑같은 시험을 보도록 하겠다는 과학기술교육부의 발표 이후, 미림이의 생활은 더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중학교가 만들어진다느니, 영어 몰입 교육을 해야 한다느니 여러 가지 교육 정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학교 끝나면 학원에 가서 공부하다 파김치가 돼 집에 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일제고사를 준비한다며 학원은 대비반까지 만들어 공부 시간을 더 늘렸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던 “공부해서 남 주냐?”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도 더 심해졌다. 교장 선생님은 시험이 끝나고 나면 전국 학교마다 등수가 매겨지게 되는데, 우리 학교가 좋은 학교로 소문이 나기 위해서는 성적이 잘 나와야 하는데 큰일이라며 월요일 조회 시간 내내 푹푹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위 사진:"일등 천국! 꼴찌 지옥!"


“너는 몇 점짜리 사람이야?”

일제고사를 보기 전날에도 미림이는 학교가 끝나고 학원으로 향했다. 답답한 마음에 오랜만에 놀이터에 잠깐 들러 미끄럼틀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봤다. 저 하늘의 구름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시계를 보니 늦었다. 서둘러 둥그런 통으로 된 미끄럼틀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걸까? 이쯤 타고 내려왔으면 발이 땅이 닿아야 하는데, 어디론가 계속해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게 아닌가. 무사히 도착한 곳에는 학교 명찰을 달고 한 줄로 서서 뭔가를 기다리는 미림이 또래의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미림이는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맨 앞에는 완장을 두른 어른들이 소개를 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학교를 무척 사랑하며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모인 학부모들이라고 했다.

그럼 일제고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미림이는 손을 번쩍 들고 물어봤다. 그러자 ‘사랑’이라고 크게 쓰인 완장을 두른 어른 한 명이 잔뜩 무게를 잡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얘야, 세상은 말이지 두 명만 모여도 서로 싸워서 승자를 가려야 해. 그래야 누가 더 잘난 사람인지 알게 되지. 일제고사가 바로 그런 거란다. 지금까지는 공부 잘하는 애들과 못하는 애들이 한데 있어서 공부 잘하는 애들이 피해를 봤어. 하지만 전국 성적을 알게 되면 우수한 학생들은 국제중학교 같이 새로 만든 학교에서 따로 뽑아서 교육을 시킬 수 있어. 이런 아이들이 있어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은 거란다.” 그렇다면 자기처럼 시험을 위한 공부에 별로 흥미가 없어서 성적이 좋지 않은 친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학교마다 등수가 매겨지게 되면 몇 점짜리 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까? 미림이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국가에 대한 ‘사랑’도 점수를 매겨야 하니?”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새롭게’라고 쓰여 있는 완장을 두른 어른이 다가와 미림이에게 ‘일등 천국, 꼴지 지옥’이라는 도장을 이마에 찍어야 이곳 시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림이는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무작정 다른 아이들을 헤치고 도망쳐 달리고 있는데, 누군가 미림이의 손을 잡아챘다. 옆집에 살고 있는 민수오빠였다. 어떻게 여기 있냐고 묻자 민수는 지난번 설문 조사 때문에 이곳으로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보겠다’고 했거든. 그랬더니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면서 교육을 받으라는 거야. 그래서 도망쳤지.”

위 사진:[출처 : 참세상]


민수와 미림이가 다른 친구들 무리에 숨어 숨을 죽이고 있는데, 완장을 두른 어른들이 그 옆을 지나가며 하는 말이 들렸다. “학교에서 우리 때처럼 무조건 국가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치라고 가르쳐야 하는데 교사들이 문제라니까. 쯧쯧!” 그럼 중학교 1학년인 민수 오빠가 총이라도 들고 나가서 싸우겠다고 했어야 하나? 사실 요즘처럼 첨단 무기를 사용하는 시대에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이 아닌 사람들이 뭘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평소에 뭘 해야 하는지 찾아보는 게 더 필요한 질문이 아닐까? 미림이는 지금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자꾸 볼을 꼬집어봤지만 돌아오는 건 아픔뿐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욕심을 버리세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미림이와 민수의 이야기가 모두 지어낸 거냐고요? 이야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탐욕스러운 어른들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랍니다. 실제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이나 ‘뉴라이트학부모연합’ 같은 단체에서는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서 차별하는 일제고사를 반대하여 시험 보는 날 야외 체험학습을 가려고 했던 학생들을 막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학생들은 아무런 판단력이 없으며, ‘나쁜’ 교사나 부모들의 꼬임에 넘어간 것이라며 아이들을 무시하고 있어요. 마치 경쟁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떠들면서 시험 성적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고, 앞자리에 끼지 못한 아이들이 받는 상처에는 별 관심이 없답니다.

위 사진:'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은 일제고사를 반대하며 시험을 거부했던 청소년들에게 학교로 돌아가라며 기자회견을 했어요. 청소년들에게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왜 자꾸 외면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출처 : 참세상]


지금은 누구나 시험을 보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중학교에 국제중학교가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지 보이지 않나요? 동무들과 같은 초등학생들도 지금보다 더 공부에만 매여 살아야 하겠죠. 하지만 자신들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몇몇 학부모 단체들은 국제중학교가 없어서 많은 아이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거라고 핑계를 대며 찬성을 하고 있어요. 또 많은 선생님과 학자들이 참여해서 만든 교과서까지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내용을 바꾸라고 하고 있어요. 학생들에게 ‘무조건’ 국가에 대한 사랑을 강요한다면 그거야말로 ‘독재’겠죠. 역사에서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 쓰는 것이 부끄러운 역사가 아니라 그걸 숨기려는 게 오히려 부끄러운 것이겠죠.

동무들 주변에는 어떤 어른들이 있나요? 미림이와 민수가 탐욕덩어리 어른들의 손아귀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 보아요.
덧붙이는 글
* 영원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26 호 [기사입력] 2008년 10월 29일 10: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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