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1] 발달장애여성의 삶과 섹슈얼리티

지배적인 성규범 안에 갇힌 장애여성의 성적 권리 찾기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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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운동과 연구들 안에 ‘성폭력’은 중요한 화두가 되어오고 있다. 발달장애인 성폭력 관련 국내외 연구들은 발달장애인이 가지는 인지적인 능력과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의해 성폭력이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발달장애인의 성폭력이 지속되는 원인은,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성인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관계망이 좁고 사람을 의심하거나 위험을 인식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으므로 가해자의 간단한 거짓말에도 너무 쉽게 속임을 당하고, 경제적인 자원이 없으므로 작은 돈이나 음식에도 쉽게 유혹되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들이 처한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 가해자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성폭력을 가할 수 있다.

이렇듯 발달장애인의 취약한 인권실태와 차별적 현실은 성폭력을 증가시키고, 지속되게 하고 있다. 2007년 현재 본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의 성폭력피해 상담 사례 건수에서 발달장애인(여성)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성폭력피해 지원활동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발달장애여성이 성적인 폭력의 대상을 넘어 관계 안에서 주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방안과 이를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구체적인 활동들을 펼쳐 나가는 것은 상담소 활동의 커다란 몫이다. 특히 성폭력특별법 8조 ‘장애인에 대한 간음’ 조항(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 자는 형법 제297조 강간 또는 제298조 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은 발달장애인의 성폭력사건 해결을 위해 제정된 법조항이지만, 발달장애인의 주체적인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사회적 논리를 만든다는 난점이 있다고 상담소는 주장해 왔다. 조문의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라는 부분이 ‘장애=항거불능’의 도식을 낳고, 이를 긍정하게 될 때 장애는 무력함을 나타내게 된다. 이러한 틀 내에서 장애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존재할 여지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안인가? 성폭력 법조항의 ‘항거불능’을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 나아가 ‘성적 자기결정권’, ‘성적 주체성’이라는 말이 발달장애여성을 어떻게 수식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이렇다 할 깔끔한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해법들: 누구의, 어떤 욕망인가

서구에서나 우리나라에서 발달장애인의 성이 중요하게 부각되며 가장 먼저 관심을 끈 것은 아마도 ‘성적 욕구의 해소’인 듯하다. 성적 욕구를 먹거나 자는 행위들과 같은 생물학적 필요로만 볼 때, 성적인 것도 단순히 ‘해소’하면 되는 문제가 된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것이 성 구매나 ‘섹스자원봉사’ 혹은 ‘섹스활동보조’ 등으로 명명되는 성적 대리인인 것이다. 영화 ‘핑크팰리스(서동일 감독)’는 50대의 장애남성이 일생의 소원인 성관계를 해보기 위해 성구매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또 다른 영화 ‘아빠(이수진 감독)’는 발달장애를 가진 딸의 성문제(성 욕구) 해결을 위해 아빠가 딸의 섹스파트너가 되어 준다는 이야기이다.

성을 생물학적인 필요로만 보고, 성관계를 단지 성기중심적인 행위로 볼 때, 장애인 성의 ‘해결책’은 이와 같은 것이 된다. 이러한 성에 대한 생물학적이고 성기중심적인 견해들에도 불구하고 발달장애여성에게 피임이나 임신 등에 대한 올바른 정보는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영화 ‘아빠’가 보여준 대안은, 여성의 성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강요되고 있는지를 입증해준다. 영화에서 아빠는 딸의 자위행위를 도와주기도 하고 딸의 남성 성파트너를 돈을 주고 사는 등 시도를 하다가 결말에 가서 스스로 딸의 성적 파트너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것은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에서만 성을 실천할 수 있고(자위마저도 남성이 개입되어야 한다) ‘여성’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믿음이며, 근본적으로 여성을 남성과의 관계에 의존적인 주체로 가두어 두려는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된 성적 욕망의 서사를 보여준다.

‘장애’라는 이름으로 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은 결코 단일할 수 없다. 장애라는 이름 아래 겪는 억압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으므로, 하나의 이름으로 명명될 때 그것은 장애 안의 또 다른 억압의 빌미로 작용한다.

위 사진:11월12일에 시설생활 발달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하였다. (사진 출처 : 장애여성 공감 홈페이지)

발달장애/여성/성, 복잡한 낱말퍼즐

발달장애여성에게 성은 일차적인 성적욕구의 해소(뿐 아니라) 보다 더 복합적인 문제들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에게 정상적인 사회적 삶과 성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결혼이라는 또 다른 ‘해결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구에서도 ‘정상화 원칙(정상화원칙은 1950년 경 이후 서구에서 발달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제기된 이론이다. 이는 가능한 ‘일반적인’, ‘주류’ 사회의 규범과 양식에 가깝도록 발달장애인의 생활조건과 양식을 구조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러한 정상화원칙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은 결혼과 정상가족 형성, 이성간의 연애, 남녀 성역할 등을 수행할 때 ‘정상화’ 된다 )’과 함께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결혼하여 살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는 것으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부모나 보호자들에 의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혼을 하고 있다. 이는 삶의 유형의 다양한 결들을 결혼과 이를 통한 제도적 가족의 틀로만 한정하는 ‘가족주의’와 특히 결혼제도 안에서 취약한 여성의 위치를 간과한 채, 기존의 규범 안에 장애인을 포함하여 ‘정상화’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발달장애여성들이 결혼제도 안에서 남편의 장애유무나 정도에 상관없이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혹은 둘 다를 경험한다는 사실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돌봄과 가사노동이 여성의 몫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와 젠더, 계급, 연령, 장애 등에 따른 차별적 문화가 ‘정상적 양육’이라는 규범을 확산시키는 속에서, 발달장애여성들은 더욱 평가절하되고 무시 받을 뿐 아니라 폭력의 상황에 놓인다. 또 남편과의 성관계가 아내의 ‘의무’인 결혼제도 내에서 발달장애여성들은 성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욕구나 의사를 표출하기가 상대적으로 더욱 어렵다.

피임방법은 일반적으로 성 중립적인 영역으로 간주되나, 이미 그것은 성차별적으로 구획되어 있다. 상당수 발달장애여성의 보호자들은 딸이 성폭력이나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자궁적출수술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루프나 일부 경구용 피임약 등 여성의 건강을 해치고 영구적 불임을 초래하기도 하는 피임법이, 많은 비장애여성들이 그러하듯 발달장애여성들에게도 강요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모자보건법(모자보건법은 의학적, 우생학적 사유 등이 있는 경우에 의사가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 제2항에 따르면 우생학적 낙태 정당화 사유는 본인 또는 배우자가 ‘유전적 정신분열증, 유전적 조울증, 유전성 간질증, 유전성 정신박약, 유전성 운동신경원 질환, 혈우병, 현저한 범죄성향이 있는 유전성 정신장애, 기타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현저한 질환’이 있는 경우이다.)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출산할 것이라는 비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발달장애여성의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발달장애여성들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낙태를 한다.

성행위와 성적 즐거움이 오로지 남녀의 성기결합으로만 간주되고, 남성의 발기와 사정에 의해 행위의 시작과 끝이 결정되는 것으로 묘사되는 우리사회 성문화는 또 어떠한가. 이 속에서 여성의 성적 즐거움과 표현이란 온전히 존재하기나 할 수 있는가? 포르노와 성매매 등 남성중심 성행위가 당연시되고 남성들의 ‘권리’로까지 명명되는 문화 안에서 여성들이 주체적인 성행위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이라도 할 권리는 있는가? 더욱이 발달장애여성은 성행위에서 쾌락을 기대하지 않고, 또 불편함이나 고통이 있더라도 전혀 불평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 여성으로서 행위와 욕망의 주체가 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은 발달장애여성들을 더욱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함을 짐작할 수 있다.

비장애/이성애/남성중심으로 짜여진 규범은 ‘정상가족’ 안에서 비장애 남녀가 지속적으로 성기삽입 섹스를 통해 성적 욕망을 충족하고 재생산 하는 것을 유일한 선택이라고 믿게 하고 강제한다. 장애인의 성을 ‘정상화’ 한다거나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항간의 일부 논리들은 ‘장애인’이라는 단일한 이름하에 그것의 비교대상을 기존의 성규범으로 놓고, 가치절하 되었던 장애인의 성이 그것과 동등한 반열에 올라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내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더 많이 질문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장애인의 성’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말이다. 지배적인 성적 규범 안에서 장애여성으로서 성적인 권리를 찾는다는 것은, 차별적이고 협소하게 구획된 기존의 욕망의 언어를 넓혀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발달장애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삶과 욕망에 대해 자유롭게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하는 우리들의 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지성 님은 장애여성 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81 호 [기사입력] 2009년 12월 02일 16: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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