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의 인권이야기] 나의 두려움 사용법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미래를 꿈꾸지 않고 지금, 여기,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실천지침

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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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우리를 두렵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두려움은 '화폐, 곧 돈과 돈을 벌기 위한 노동'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를 낳게 된다. 그래서 실험해 보고 싶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재를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2009년 1월, 나는 삶의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었다. 임금노동 생활자를 포기하기로 한 결정이었다. (그때까지 다니던 여성노동운동단체에서도 임금을 받아 생활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고정수입 없이, 혹은 최소화하면서 삶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렇게 너무 많은 노동과 장시간 노동하기를 그치자 나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 년...나는 몇 가지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자칭 '사적인 고민을 공식화하기'에 대한 나의 몇 년 동안의 고민과도 닿아 있다.

삶을 재생산하는 노동에 익숙해지기
나는 나의 의식주를 얼마나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정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돈을 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계에서 모범적인 구성원으로 살아왔던 탓이다. 한때 나는 돈이 있으면 나의 자존감도, 독립심도 높아질 것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부끄러운 기억이다. 돈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다. 자본주의에서 돈(화폐)은 상품 뒤에 숨겨진 노동을, 그 노동의 경험(고통과 자부심)을 가린다. 그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을 가려버리고 마치 돈이 곧 물건을,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노동자는 경영지원부서의 책상위에서 숫자가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일회용품이 되고, 고객에게는 무인판매기가 된다. 이런 생각은 나를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을 직접 경험할 필요성을 일깨웠다. 말로 머리로 이해하는 것 말고 내가 실제로 경험하기. 그래서 아주 서툴지만 나는 노력중이다. 밥 해 먹기, 옷 만들기 모임도 하면서. 집짓는 것도 배워볼 생각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어설프지만 잘 하는 것, 효율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사회에서 나 같은 사람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길 위에서 생각하기
바쁘게 살았을 때는 그랬던 것 같다. 늘 종종거리며 거의 뛰다시피 걷는다. 주변에 있는 일과 사물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누군가와 부딪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걷는다. 아니, 그럴 여유조차 없다는 것을 잊는다. 차를 타는 것은 더 그렇다. 모든 지나가는 것들은 그저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사물과의 관계에서 '느낌'이 제거된다. 자신에 대한 느낌조차도 잊는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타인과의 관계도 스쳐지나갈 뿐, 금세 잊어버린다. 로드킬. 길 위에서 나와 세계를 죽이지 않고 '느낌'을 복원하는 방법. 천천히 나와 내 주변을 음미하며 걸어가기. 그리고 길 위에서 생각하기.

위 사진:출처 http://cafe.daum.net/epbazaar


사적인 고민을 공적인 일로 만들기 - '재밌는 일' 만들기
노동은 삶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하나의 부분이다. 그러나 노동이 기쁨과 보람이 아니라 의무가 되었을 때, 그것은 이미 생기를 잃은 껍데기일 뿐이다. 그 생각은 나에게 '재밌는 일 만들기'를 고민하게 했다. 시간과 효율을 따지면 시도할 수 없는 일들. 그리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은평구 응암역에서 하는 '벼룩시장과 캠페인'이다. 물건도 팔고, 각자 하고 싶은 얘기도 하고, 그 수익금으로 비정규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기도 한다. 칼도 갈고, 우산도 고치고, 면 생리대 만드는 법도 알려주면서 동네에서 더불어 함께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외박'(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510일 파업을 기록한 영화)공동체 상영하기다. '외박DAY'라는 이름으로 응암역 근처에 있는 이라는 대안청소년문화공간에서 하루 종일 영화상영도 하고 감독과의 대화도 하고 음악공연도 하고. 그야말로 작은 축제를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했었다. 다른 공간에서도 가능하면 해보고 싶다. '벼룩시장과 캠페인'도 '외박DAY'도 끝나고 나면 너무 피곤하지만 또 너무 재밌어서 생기 없을 틈이 없다.

이 모든 아이디어들은 내가 임금노동 생활자를 포기하면서 떠오른 것들이다. 삶에서 '느낌'을 제거하지 않고 그것에 더 깊게 개입하기. 올 한해도 나는 이 지침을 따라 지금, 오늘, 현재를 살아갈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양미(빨간거북) 님은 서부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89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02일 17: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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