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깔깔 : 납량특집] 초 대

일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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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고 문

옛날에는 호환, 마마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에는 무분별한 불법비디오 시청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경고문 기억나시나요?

‘한 편의 비디오가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음’은 알면서,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일들이 우리 모두의 미래를 끔찍하게 바꾸어놓고 있음’에는 왜 눈감아버리는지! 이번 ‘와글와글 깔깔’은 납량특집입니다. 공포 속에서 여러 가지 상징과 은유로 인권침해가 넘쳐나는 이 아니꼬운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센스~!!! 읽으면서 한번 찾아보세요.

이 글은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현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으니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읽지 마삼~


초 대 장
고.요.한. 연.회.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모월 모일 여기로 이 초대장을 들고 오십시오.
060809-9352646




‘연회? 연회라면 사람이 많겠지? 사람이 많은 곳은 질색이다. 하지만 연회가 고요하다? 마침 휴가이고 딱히 할 일도 없다. 그렇다면 ‘고요한’ 연회에나 한번 가볼까?’

짙은 초록의 무성한 나무들. 눈부신 금관 장식의, 커다란 문 앞에 도착한다. 문 앞에 서자 초대장 번호를 입력하라는 기계음이 들린다. 철컥 - 문이 열린다.

연회가 한창입니다, 라며 집사로 보이는 중년의 한 남성이 나를 향해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곡이 연회장에 흐른다. 와인잔이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음악에 실려 긴장을 풀어준다. 높고 둥근 천장, 화려한 샹들리에는 반짝인다. 이마에 붉은 점이 있는, 까만 정장의 한 남성과 눈이 마주친다. 와인잔을 들며 웃음을 건넨다. 나도 조금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에는 실크 부채로 입을 가린 여성과 살짝 눈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어느새 나는 연회의 일부가 된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뒤를 돌아보니 집사다. 그가 묻는다, 어때요? 즐겁나요? 처음부터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던 듯 그냥 사람들 속으로 사라진다. 왠지 공허함을 느끼며, 연회장을 다시 둘러본다. 문이 눈에 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거대한 고목 같은 잿빛 문이다. 나는 그 문으로 다가가 밀어본다.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힘껏 민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문이 움직였다. 하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문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연회장을 빠져나간다.

그 문 밖으로 발을 내딛자, 끼기긱...쿵 - 문이 닫히고 피아노 연주곡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향긋한 와인 냄새와 고급스런 향수 냄새들도 더 이상 나지 않는다. 그저, 어둡고 긴 터널 같은 복도가 쭉 뻗어있다. 복도 양옆으로는 똑같은 문들이 나열되어 있다.

문 하나에 귀를 대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순간 우악스러운 힘이 나를 벽으로 사정없이 밀어붙인다. 방어할 틈도 없었고 벽에 붙어 움직일 수도 없다. 그 순간 목덜미로 날카로운 금속이 닿는다. 그 금속의 차가운 기운은 정수리까지 타고 올랐다. 머리끝이 쭈뼛 곤두서고 척추에서 발끝까지 경직된다. 싹둑싹둑 날카로운 가위소리가 들린다. 잘린 내 머리칼이 사방으로 날린다. 싹둑. 싹둑.. 사지를 움직일 수 없다. 가위소리가 멈추고 누군가 상체를 기울인다. 귓가에 축축하고 서늘한 입김이 느껴진다, 어때? 단정하니까 좋지?

오싹해진 나는 그를 힘껏 밀치고 뛰쳐나왔다. 어두운 복도를 정신없이 달리다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그 바람에 또 다른 문이 열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방패를 들고 켜켜이 서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조용히 나가려고 뒤돌아 손잡이를 돌려보지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철컥 - 손잡이 돌리는 소리에 검은 정장들의 시선이 온통 나에게 집중된다. 무거운 공기에 휩싸인 참을 수 없는 정적. 검은 정장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방패를 건넨다. 벌벌 떨면서 방패를 받는다. 검은 정장들은 방패를 바닥에 대고 모서리를 뾰족하게 갈기 시작한다. 끄억 끄억.. 금속으로 날카롭게 바닥을 긁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그리곤 저쪽부터 날카롭게 갈던 방패로 앞에 있는 인간모형을 가격하기 시작한다. 단번에 인간모형이 두 동강 난다. 이에 의기양양해진 검은 정장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차가운 미소를 흘린다. 마치 3류 사무라이 호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검붉은 피만 사방으로 튀기지 않을 뿐. 일정한 간격으로 둔탁한 소리가 반복되고 잘려나간 인간모형의 상반신이 바닥 위로 쌓인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만약 인간모형을 가격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내가 저 인간모형처럼 두 동강이 날지 모른다. 나는 두려움에 떨며 어쩔 수 없이 방패로 인간모형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인간모형은 절단되지 않은 채, 하체에 간신히 매달린 상체가 대롱대롱 흔들렸다. 검은 정장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그들은 한꺼번에 몰려들어 방패로 나를 찍으려 한다. 안돼!!! 방패를 막기 위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치켜들었다. 방패는 순식간에 손가락을 파고들었다. 나는 아픔도 잊은 채 뒷걸음질 치며 미친 듯이 뛰쳐나왔다.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한 손으로 잘려나간 손을 움켜쥐고 무작정 달렸다. 고립 속에서 당했던, 금속의 섬뜩함과 날카로운 방패의 공포가 나를 조여 왔다. 양옆에 늘어선 문들이 나를 집어삼킬 듯하다. 이...죽음의 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복도 끝 희미한 불빛을 향해 힘껏 내달렸다.

드디어 탈출! 눈앞엔 초록 잔디가 펼쳐졌고, 아직 끝나지 않은 연회장의 흥겨운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연회는 계속되고 있었다. 연회장의 저들은 과연 누굴까? 순간 온몸의 기운이 빠지면서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바닥이 진동하며 온몸이 떨렸다. 지축을 흔드는 폭발음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이어졌다. 그 신음소리 중에는 분명 여성과 어린이의 것도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느 때처럼 연회에 참석하고 있던 사람들. 갑자기 묵직한 뭔가가 머리를 치고 앞으로 떨어졌다. 사람의...팔이었다. 아직도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온몸을 털며 일어났다. 초록 뒤뜰은 검붉은 피로 흥건했고, 사람들은 모두 피범벅이 된 채 고통으로 아우성쳤다. 마치...전쟁 같았다. 순간 고막을 찢을 듯한 폭음이 가로획을 그으며 나를 덮쳤다. 그리고 기절했다.

끼익 끼익.. 규칙적인 소리가 나의 신경을 긁었다. 나는 서서히 의식을 되찾았다. 주위는 밝고 쾌적했다. 콧속으로 스미는 짜릿한 알코올 향기에 안도감을 느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나를 살피고 있다. 이마에 선명한 붉은 점. 연회장에서 본 그다. 눈이 마주치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저희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간호사가 다가왔다. 간호사는 나의 초대장을 내밀었다. 060809-9352646 맞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굳어진 얼굴로 의사에게 말했다.

업무상 착오가 있었습니다. / ...? / 이 환자는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이 없습니다. / ... / 하지만 이대로 둔다면 생명이 위태로울 텐데요. / ...

나는 고개를 들어 내 몸을 살폈다. 내 몸은 반 토막이었다. 두 다리를 덮어야 할 담요는 침대 매트에 평평하게 깔려 있었다. 울부짖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말없이 뒤돌아 나갔다. 간호사는 내 몸에 연결된 기계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어쩔 수 없네요, 치료는 여기까지입니다. 나는 묻고 싶었다. 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이며, 왜 이런 끔찍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끼익 끼익.. 간호사는 기계를 끌며 병실 문을 열고 나갔다. 불이 꺼졌다.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머릿속과 심장이 요동쳤다.


칙칙! 커피 끓는 요란한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난 사실 초대장을 받은 적이 없다.
나는 늘, 소설보다 참혹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아니꼬운 세상에, 일침회]는 재치있는 풍자와 익살스런 해학 담긴 수다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아니꼬운 세상에 일침을 가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인권오름 제 16 호 [기사입력] 2006년 08월 09일 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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