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실의 인권이야기] 이주노동자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 ‘영화’

독립영화, 상업영화, 이주노동자영화제

정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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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주노동자들의 생활과 노동 그리고 사랑을 다룬 영화들이 제법 만들어지고 상영되고 있다. 그 가운데 올해 다섯 번째를 맞게 된 이주노동자영화제가 있다. 주제는 ‘그림자에서 인간으로(from Shadow to Human)’로, 서울 상영회를 시작으로 지역상영회를 하고 있다. 지난주 안산은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의 대강당을 빌려 무료로 상영하였다. 서울상영회의 화려함이나 퍼포먼스, 많은 관객들과는 대조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높다는 국경 없는 마을인 원곡동의 관객 참여율은 그야말로 소수였다. 삼분의 일도 채 차지 않은 관객을 두고 영화는 상영되었고, 서울상영회 때 작품을 보지 못한 나는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들을 한편한편 지켜보았다.

위 사진:다섯 번째를 맞게 된 이주노동자영화제 포스터


이주자들 스스로 만든 단편 영화들 속에 결혼이민자여성의 시집살이와 한국살이의 어려움이 녹아 있었고, 이주노동자들의 일상과 노동현장에서의 고단함이 담겨 있었다. 스스로 감독이 되고, 스스로 주연이 되면서 만들어 낸 영화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영화라는 형식을 빌어서 표현되었다.

결혼이민자가 되어 낯선 곳에서 적응해 가는 일이 단순한 문화차이를 넘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켜 과는 과정인가를 ‘파마(perm)'라는 영화는 머리모양의 바꾸기, 옷차림 바꾸기 등을 통해 보여주었다. 말로 표현해 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베트남이주여성의 눈물을 통해 대변되었다.

그런가 하면 ‘어둠속의 등불’에서는 지난해 네팔로 추방당한 스탑크랙다운의 보컬인 미누 씨와 멤버들의 열정적인 영상이 담겨있었다. 십여 년 전, 안양의 축제에서 ‘여행을 떠나요’를 불렀던 모습, 명동성당 농성현장에서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노래로 고발하던 모습, MWTV(이주노동자방송국)에서 프로그램진행자로 함께 했던 모습이 망막의 기억을 통해 교차되며 지나갔다. 순간 나는 그가 정말 보고 싶었다.

미등록인 채 살아오면서도 특별히 단속의 두려움 없이 활동하던 그가 정권이 바뀐 지 얼마 안 되어 우리 앞에서 사라진 날, 이주노동자를 배제해 온 우리 사회의 숨겨진 기제들이 이제는 드러내놓고 시행될 것임을 알리는 전조였다. ‘G20’의 안전한 개최라는 명분 속에 지금도 이주노동자들을 몰아붙이는 강제단속은 미누의 강제추방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런데 이주자들의 삶을 주제로 한 영화제에 안산지역 민간단체(NGO) 관계자들이나 활동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본 영화여서였을까? 아니면 주최자로 참여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초대 받지 않아서 일까? 그도 아니라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서? 아니 꼭 와야 하는 건 아니라서?

사실 정말 이 영화를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은 지역에 사는 평범한 한국인들일 것이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마트에서, 버스에서, 공원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다수의 한국인들, 바로 그들과 나누고 싶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영화제’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 때문에 오히려 이주자들 자신과 관련시민사회단체 그리고 관심 있는 몇몇 지인들의 참석만으로 이루어지는 한계점이 이번 영화제에서 드러났다.

그래서 이러한 한계점들을 극복하고 대중들과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나누고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상업용 극장을 통해 이주노동자 관련 작품이 상영되었다. 작년에 상영된 영화는 ‘반두비’나 ‘로니를 찾아서’ 그리고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이었고, 올해에는 ‘방가방가’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다.

작년에 상영되었던 영화들이 너무나 진지해서 무거웠으나 가슴으로 공감하기에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주제였다. 반면 올해 상영되고 있는 ‘방가방가’는 그야말로 코미디영화로서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미친 듯이 웃도록 만들었지만, 모든 걸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방가방가’는 정말 부담 없이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절망 그리고 희망과 기대를 온 몸으로 느끼는 최고의 영화였다. 너무나 고립된 축제로 그들만의 리그처럼 끝나버릴 위험성을 최소화하면서도 관객에게 심한 죄책감을 주지 않고, 그러면서도 비꼬는 현실의 타당함이 웃음 속에서 수긍 할 수 있고, 부담 없는 공감이 가능한 영화 그래서 더 현실감 있는 영화이다.

불쌍하고 가난한 고된 노동자라는 이미지 속에 갇혀 버린 이주자들을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노래하고 춤추고 일하고 사랑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들임을 자연스럽게 보여 줄 수 있는 영화 만들기, 그것이 바로 긍정의 힘으로 이주노동자를 바라보게 하며 그들의 행위 주체성(agency)을 드러내는 생동감 있는 영화작업이지 않을까? 서발턴(subaltern, 하위주체)은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물은 스피박의 질문이 말할 수 없다가 아니라, 말하도록 어떻게 판을 짤 것인가의 문제로 이해한다면, 여전히 영화의 관점이 한국인의 시각이 주체화 되고 이주노동자가 하위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영화적 판을 새로운 방식으로 짜보는 것이다. 그래서 하위 주체로 구성되어지는 현실 조건을 극복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작업으로서의 영화 만들기가 점점 많아져서, 이주자 스스로 만든 영화가 상업적 공간에서 일반관객들을 웃고 울리는 영화가 되는 꿈을 꿔보는 것이다.

지구인의 정류장이라는 대안적 미디어 운동을 하는 공간에서 만들어진 김이찬 감독의 ‘이별에서 살으렵니다’(이주노동자영화제상영작)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 아치게렐이 잘려나간 양팔을 봉합한 이후로 쉼터 생활을 오래하면서 체류비자 기한을 넘겼을 때, 그에게 감독이 단속이 두렵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추방을 한다한들 지구 밖의 다른 별로는 보내지 못한다며, 단속을 해봐야 고향으로 돌아가기 밖에 더하겠냐며 크게 웃는다. 그 웃음이 내게 감전된다. 나도 웃는다. 우리의 경계 밖으로 쫒아내 봐야 이주자들에게는 고향(집)으로 가는 길일뿐이라는 역설을 이해하기 때문일까?

덧붙이는 글
정혜실 님은 파키스탄 남성과 살면서 딸과 아들을 둔 아내이자 엄마이며,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한국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다문화가족협회」 공동대표입니다.
인권오름 제 222 호 [기사입력] 2010년 10월 12일 22: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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