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로 물구나무] 국립대 법인화, 이게 최선입니까?

2013년, 국립대생 H의 이야기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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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봄이다. 싱그러운 청춘들의 웃음이 캠퍼스에 가득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내 것은 없다. 군복무를 마치고 바로 복학을 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학비가 문제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학 등록금에 사립대는 엄두도 못 내고 선택한 곳이 지방 국립대였다. 대학 진학 후 나름대로 지방의 거점 대학이라고 자부하며 공부도 열심히 했고 방학동안 빡세게 아르바이트 하면 한 학기 등록금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2년 전만 해도 200만원이 안되던 등록금이 두 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예전에는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있냐고 스스로 물으면 정말 곰곰이 고민하다가 “국립대를 다녀 그나마 학비가 싸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유머도 먼 옛날 일이 되었다.



군대에 간 사이 서울대가 날치기로 법인화되더니 기다렸다는 듯 지방 국립대도 줄줄이 법인화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 몰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국립대 법인화 발표당시 “주요 거점대학 등 여건을 갖춘 국립대는 대학 구성원의 의견 수렴을 거쳐 단계적으로 법인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누구도 나를 비롯한 학생들의 의견은 묻지 않았다. 자율성을 주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법인화의 취지라고 했는데 그 자율성이라는 것은 단지 자본의 자유일 뿐이었다. 등록금은 매년 경이적인 상승률을 보였고 대학은 거대한 기업이 되어버렸다. 국립대의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사립대의 등록금 인상율도 요동치는 판국이다.

오랜만에 들른 캠퍼스는 여전히 설렜다. 그러나 친구들은 대부분 도서관에서 토익 책을 뒤적이며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된 삶을 살고 있다. 법인화 후 4년 만에 졸업한 친구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나처럼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등록금을 마련하고 있다. 휴학하며 안 해본 일이 없다. 몇 달 동안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겨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 수 있다.

문득 학생회관 쪽을 돌아보니 여기가 캠퍼스인지 쇼핑몰인지 구분이 안 된다. 유명 브랜드의 옷가게와 패스트푸드점이 즐비하다. 별콩 카페부터 각종 편의점도 입점해있다. 20년도 더 된 낡은 건물이지만 점포들은 모두 새로 들어왔다. 대부분의 상점은 다국적 거대기업이다. 법인화가 되면서 대학 스스로 수익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학생회관이란 이름의 쇼핑몰은 그 수익사업의 결과다. 덕분에 10년 넘게 학생 회관에서 문구점을 하시던 이 씨 아주머니와 서점을 운영하시던 김 씨 아저씨는 쫓겨나고 말았다.



우리는 이제 학교의 총장이 누군지 관심이 없다. 직선제로 선출되던 총장은 이사회가 뽑도록 바뀌었다. 이사회의 권한은 상상을 초월한다. 학과의 통폐합은 물론 재정에 관한 결정까지 이사회에서 결정된다. 교수들도 이사회 눈치를 보기 바쁘다. 그런데 이사의 절반을 교과부가 승인하며, 당연직으로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기획재정부 차관이 참여한다. 법인화 이후 국립대는 정부가 좌지우지 하는 학교가 되고 말았다.

한편, 법인화와 함께 정부는 고등교육 지원예산이 작다는 비판이 일자 국립대 재정회계법안을 만들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사용하던 기성회예산(기존 서울대는 23% 정도)을 정부회계에 포함시킨 것이다. 즉, 학생들이 내는 돈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처럼 속이는 것이다. 그 결과 통계적으로는 대학의 지원예산이 늘어나고 정작 대학은 기성회비를 정부의 눈치를 보며 쓰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던 자율성은 어디로 갔을까.

법인화의 결과 국립대에 시행되던 지원들이 대폭 축소되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법인화를 통해 “산학협력 활성화를 통한 민간 연구·개발 자금을 유치하고 기부금 등 대학 자체 수입을 확대”하라고 한다. 국립대에 집중적으로 이뤄져온 사업비 지원 방식도 바뀌었다. 국립대에 의무적으로 부여되던 사업비가 공개경쟁 형태로 바꿔 연구자 자체 역량으로 확보하도록 한 것이다. 법인화 이전인 2009년 교과부가 전국 대학에 지원한 사업비 현황을 보면, 사업비를 많이 지급받은 상위 50개 대학 가운데 국립대는 35곳(70%)이었다. 그러나 지원 방식이 바뀌자 국립대의 몫은 급격히 줄어들고 말았다.

서울대를 제외한 지방 국립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법인화로 인해 수익사업이 가능해지고 기부금 모금이 활발해지면 등록금 인상 요인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 국립대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전국 39개 4년제 국립대 가운데 기부금을 가장 많이 받은 서울대는 2~6위를 차지한 5개 지역거점 국립대(전남대, 부산대, 강원대, 경북대, 전북대)의 기부금을 합한 액수보다 약 100억 원 가량을 더 모았다.(실제 2009년 자료)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졌고 지방 국립대의 장점을 사라지게 했다. 지역 인재들은 서울권 사립대로 빠져나갔고 가난한 학생들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국립대의 설립목적은 지역 학생들이 값싼 등록금으로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지만 이는 오로지 ‘수익 창출’의 경제논리로 흐려지고 말았다.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인종,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교육기본법 4조의 내용이다. 그러나 교육이 신자유주의로 재구조화되며 점점 경제적 지위가 교육의 기회와 질을 결정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요즘 들어 자꾸만 2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서울대 법인화 법이 통과되며 내가 다니는 학교도 술렁였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실감나지 않았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와 상관없는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서울대 법인화는 거대한 흐름의 시작이었다. 서울대가 법인화되자 다른 국립대의 법인화는 일도 아니라는 듯 동시다발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만약 시작부터 열심히 싸웠다면 어떻게 됐을까. 돈이 교육을 지배하고 돈이 없으면 공부할 수도 없는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았을까. 2011년을 사는 당신에게 묻는다.

덧붙이는 글
하라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236 호 [기사입력] 2011년 01월 26일 11: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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