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요의 인권이야기] 돌봄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시작된다

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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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세상에 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옛날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산소 옆에서 3년을 지켰다고 한다. 자식이 태어나면 아이가 자라서 자기 몸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 부모가 아이 옆을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 돌보는 기간이 3년이라서, 그 은혜를 되갚는 의미라고 한다. 들은 이야기라서 정말인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다. 그렇기에 이렇게 자랐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돌봄’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집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독립이후 집에서 엄마가 해 주던 밥, 빨래, 청소들이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어쩌면 그동안 당연히 내가 해야 될 부분을 엄마에게 미루었던 것이다. 원래 엄마는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왔다. 아니 한번 생각도 해 보지 못할 만큼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혼자 나와 살면서 쾌적한 방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가 부지런히 청소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밤늦게 피곤한 몸으로 집에 와서 더러운 방을 보고도 귀찮아서 그냥 자버린다. 이럴 때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이들이 우렁각시가 필요하다. 누구나 고된 노동에서 지친 자신의 몸을 재충전해야 하고, 그런 편안한 안식처는 그냥 제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 사진:[그림: 윤필]

나는 현재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다. 생계비를 벌기 위해 이 일을 선택했다. 내가 이런 일을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어휴~좋은 일 하시네요.” 칭찬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이 말은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나는 ‘좋은 일’이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시급이 최저임금보다 높아서 이 일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편의점이나 커피숍에서 알바를 하면 최저임금을 겨우 받는다. 사실 대구는 워낙 저임금 상황이라서 시내에서 알바로 최저임금을 받기가 정말 어렵다. 그런 상황에 활동보조인 일은 최저임금을 훌쩍 뛰어넘는 시급 6천 원이고, 복지부에서 주는 거라 떼일 염려도 없다. 이런 이유로 이 일을 하는 대학생들도 많다. ‘봉사 일’이라는 이미지와 저임금 현실 사이에서 활동보조인은 일을 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나는 ‘활동보조인 모임’에 나가고 있다. 사실 이 일을 하고는 있지만, 나는 ‘활동보조인’이라는 정체성에 큰 의미를 두지 못했다. 단체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활동보조 이용시간과 대상 제한, 자부담 비용 부과 등 사회서비스의 구조적인 문제로, 장애인의 생존․권리로만 접근해 왔다. 그리고 주변에서 활동보조인이 자주 바뀌는 걸 보게 되는데, 나 역시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모임에 나와서 들어보면 중년의 활동보조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나와 비슷하다. 시급은 높지만 시간이 적어서 가족생계에 충분하지 않다. 결혼으로 단절된 경제활동을 다시 하는 입장에서 별다르게 큰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쉽게 떠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여러 고민들 중에 가장 큰 것은 ‘봉사’로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의 노동의 권리를 억누르게 하는 것이다. 물론 돈을 벌기도 하고 좀 더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이 일을 선택하셨지만,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장애인을 돕는 일을 하면서 나의 권리를 요구한다는 것이 자칫 이기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사회복지사들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활동보조 일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다. 사람을 직접 대하는 서비스 업무라는 것이 힘든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활동가로서 장애인의 요구를 함께 외치고 싸우고 가장 절박한 요구로 활동보조제도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듣고 있다. 활동보조제도 자체의 구조적 문제점을 알면서도 그 속에서 직접 일하는 나는 시급노동자로서 ‘나의 노동’의 문제도 점점 크게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지난달 대구지역에서는 ‘돌봄노동 집담회’가 열렸다. 노인요양보호사, 간병사, 활동보조인, 보육교사로 일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서로 일하는 장소는 달라도 ‘돌봄노동’이라는 공통분모로, 어색하지만 왠지 모를 기대감이 섞인 표정이었다. 시급과 노동시간이 적기 때문에 급여의 양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고,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현실과 그 속에서 느끼는 고민들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또한 돌봄을 받아야 할 수많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기에 다시 희망을 안고 이 일을 묵묵히 해 나갈 것이라는 당찬 포부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집에서 돌봄노동을 하는 엄마를 보지 못했듯이 이 사회 역시도 우리 돌봄노동자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존재하지만 인식되지 못하는 나의 노동, 알면서도 외면받아 오던 우리 엄마들의 노동, 힘들어도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의 노동이 만나고 있다. 이제 우리들의 목소리가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아요 님은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242 호 [기사입력] 2011년 03월 16일 12: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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